사설·칼럼 강남시선

[강남시선] 성찰의 시간

김태경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4.01 18:23

수정 2021.04.01 18:23

[강남시선] 성찰의 시간
우파의 바람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사회민주주의 전통이 강한 유럽은 말할 것도 없다. 트럼프주의를 최대 2025년까지 연장한 미국이 그 중심에 우뚝 섰다. 미 대법관 구성을 보수주의자 우위로 채운 트럼프의 행동이 트럼프주의가 앞으로도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란 점에서 경각심을 높이고 있다.

지난 4년간의 트럼프주의는 전 세계가 극단주의 시대로 진입했다는 징후다. 분열과 증오의 소용돌이가 정치를 비상사태로, 비정상의 장으로 탈바꿈시켰다.
우파 진영의 약진은 그릇된 대중들의 욕망을 통해 추동된다. 진보세력의 앞날에 먹구름이 끼고 있는 것도 그래서다. 한국사회 진보세력은 소위 상아탑에서 나온 진보담론이 헤게모니를 장악하면서 현실과 괴리되고, 정의를 독점하려는 욕망의 용광로다. 다양한 현장에서 경험한 구체성과 비전, 이를 달성하려는 의지와 신념은 바람에 휘날리는 깃발 신세로 전락했다.

설익은 정책들이 양산되고, 편협한 전문성을 앞세운 테크노크라트에 포위됐다. 정책 수립 및 운영의 미숙함은 여전하다. 제도권 진보세력인 더불어민주당은 집권 초기 구상했던 정책들의 난맥상으로 집권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야당도 대안세력으로 성장하기는커녕 시대정신에 부합하지 않는 퇴행적 모습만 반복하고 있다.

집권세력의 위기는 집권 초기 개혁의 동력을 못 살린 게 패착이다. 전략의 부재나 비전이 없어서가 아니다. 자신들의 당면한 개혁과제를 기득권 세력의 눈치를 보느라 실기하고, 이를 적당주의로 모면하려 한 얄팍한 심사 탓이다. 부동산 문제도 진정한 의지가 있었다면 왜 해결을 못했을까. 간단한 방법이 있는데도 이를 회피하고 구색맞추기 식으로 정책을 남발한 결과다. '보유세 인상'이라는 강력한 해법은 외면하고, 변죽만 울렸다. 중상위권만 바라보는 집권당의 리버럴한 계급성향이 키운 결과다. 우파가 부의 불평등을 감수하더라도 성장에 집착하는 이유는 대중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잘 알고 있어서다. 현 시점에서 진보에 필요한 덕목은 생각은 좌파로 하더라도 행동은 우파로 해야 한다는 현실론이다.

개혁의 관건은 물적 토대 확보가 우선이다. 변증법에서 양에서 질로의 전환은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도깨비방망이가 아니다. 충분한 수준의 양적 토대와 역량이 확보돼야 가능하다. 진보는 더 이상 변화와 개혁을 원하지 않는 것 같다. 권력에 취해 보신주의와 적당주의라는 외피를 걸치는 데 만족한 걸까. 그동안 침묵을 고수하던 일부 지식인들이 제 세상 만난 것처럼 활개를 치는 현상도 이런 맥락이다. 우익세력의 막말은 외면하고, 진보의 도덕성과 태도를 문제 삼으며 말로만 진보를 외치는 것은 그들의 못된 버릇이다. 다만 이 같은 도덕정치의 강조는 앞으로 누가 집권을 해도 정부를 구성하는 데 엄청난 진통을 겪을 것이 불가피하다. 정치의 품격을 높이는 것은 도덕성이다. 도덕성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편협하게 적용하면 정치는 불구의 신세가 된다.


검찰 개혁 과정에서 불거진 공정성 논란도 재정의가 필요하다. 존 롤스가 주장한 공정으로서의 정의는 이론일 뿐 정의를 추구하거나 실천하는 데 있어서 무능하다.
문제는 완벽한 정의 추구가 아니라 부정의를 어떻게 하면 막을 수 있느냐에 달렸다.

ktitk@fnnews.com 김태경 정책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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