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특별기고

[특별기고] 건강가정기본법과 한국 가족의 현실

임광복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4.04 18:00

수정 2021.04.04 18:00

[특별기고] 건강가정기본법과 한국 가족의 현실
우리 사회에서 가족 구성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인구총조사를 보면 부부와 미혼자녀로 이뤄진 가구 비율은 2000년 48.2%에서 2019년 29.9%로 감소한 반면, 1인가구는 2000년 15.5%에서 2019년 30.2%로 증가했다. 자녀 없이 부부만으로 구성된 가구 비중 역시 2000년 12.3%에서 2019년 16.7%로 증가했다.

가족 형태와 구성이 급변하고 있음에도 가족정책의 근거가 되는 현행 건강가정기본법은 우리 가족의 현실과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즉 건강가정기본법 제3조에서는 '가족이라 함은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뤄진 사회의 기본단위를 말한다'며 법률혼, 혈연 중심의 협소한 가족 정의를 내리고 있다. 또 '모든 국민은 혼인과 출산의 사회적 중요성을 인식하여야 한다(제8조). 가족구성원 모두는 가족해체를 예방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제9조)'라고 명시하고 있다.
법률혼, 혈연으로 이어지지 않았거나 출산하지 않거나, 이혼이나 사별 등으로 가족이 해체된 경우는 문제로 삼는 것이다. 이 조항들은 전체 가족의 복리증진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다. 가부장 중심의 위계질서를 더욱 공고히 하며, 가족 해체 예방이라는 미명하에 가정 내 억압적 위치에 있는 이들, 여성과 아동·청소년이 고통을 떠안게 되는 차별적이고 구시대적인 법이다.

또한 '건강가정기본법'은 '가정'이라는 대상 앞에 '건강'이라는 가치개념을 포함하는 용어를 덧붙여 해석상 '건강가정'과 '비건강가정'의 이분법적 분류를 가능케 한다. 이는 곧 다양한 가족에 대한 차별을 초래하게 된다.

건강가정기본법은 가족 변화를 반영해 가족정책의 근거가 되는 기본법으로서 특정 가치를 계도하는 것이 아닌, 가족정책의 기본법으로서의 위상에 걸맞은 내용을 갖고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가족정책의 중심이 출산장려금을 늘리고 신혼부부 주택 공급을 늘리며 결혼을 장려하는 등 결혼과 출산에 있었다면, 결혼제도 밖에서 일어나는 임신과 출산 그리고 결혼이 아닌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해 살고 있는 개인을 위한 정책을 마련하고 예산을 배분하는 것이 훨씬 더 한국 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독일에서는 혼인 외 자녀에 대한 개념이 오래전 삭제됐고, 프랑스에서는 혼인 관계가 아니어도 동반자로서 권한과 의무가 부여되고 있다. 이제 저출산 극복 중심의 가족정책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가족 내부의 평등과 이를 위한 실질적 변화를 지원하는 기본법 제정 및 사회적 가족 등 실질적인 돌봄과 친밀성을 실천하는 다양한 관계를 지원하는 법을 제정해야 할 것이다.

지금 국회에서는 일부 동성애 반대론자들의 반대로 개정안이 여가위로 상정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되면 동성혼이 합법화될 것이라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거짓' 주장이다. 동성혼 합법화를 위해선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민법 등 혼인을 규정하는 법령의 개정 등 별도의 입법이 필요한 사안이다.


동성애 반대 단체들의 주장에 떠밀려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에 뒷짐지고 있는 국회는 조속히 개정안 통과를 이뤄내기를 바란다. '2021 업무보고'를 통해 여성가족부는 "다양한 가족 형태를 지원하고,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부디 약속한 대로 모든 가족에게 도움이 되는 기본법, 평등하고 포용적인 여성·가족 정책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해본다.

전영순 전 한국한부모연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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