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검찰·법원

공공장소 일상복 몰카, 성범죄 두고 '엇갈린 판결'

김성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4.06 09:11

수정 2021.04.06 10:47

올해 초 대법원 레깅스 몰카 '유죄'
최근 서부지법 카페 몰카 '무죄' 판단
늘어난 길거리 몰카 분쟁, 법적 기준은?
[파이낸셜뉴스] 공공장소에서 여성의 신체를 몰래 촬영하는 남성을 성범죄자로 처벌할지에 대해 법원이 엇갈린 판단을 내놔 관심이 모인다.

올해 초 대법원이 레깅스를 입은 여성을 동영상으로 촬영한 혐의(성폭력처벌법 위반)로 기소된 남성에게 무죄를 선고한 항소심을 파기해 돌려보낸 뒤 불과 3달 만에 이에 반하는 판결이 나온 것이다.

“청순한 외모에 굵은 허벅지를 보고 영감이 떠올랐다”며 카페에서 여성을 몰래 촬영하려 한 남성에게 최근 항소심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한 사건이다.

공공장소에서 이뤄진 몰래 촬영을 단순 초상권 침해를 넘어 성폭력처벌법에 저촉되는 범죄로 다뤄야할지 여부를 놓고 일선 수사기관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레깅스를 입고 등산하는 여성들과 관련한 유튜브 콘텐츠 화면. 외부에서 일상복을 일상각도로 촬영하는 건 성폭력처벌법 대상이 아님에도 레깅스에 한해 성폭력처벌법으로 처벌하는 건 부당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온라인 갈무리.
레깅스를 입고 등산하는 여성들과 관련한 유튜브 콘텐츠 화면. 외부에서 일상복을 일상각도로 촬영하는 건 성폭력처벌법 대상이 아님에도 레깅스에 한해 성폭력처벌법으로 처벌하는 건 부당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온라인 갈무리.

■공공장소 나온 '성적 수치심' 대상 복장
6일 경찰에 따르면 최근 공공장소에서 여성의 신체를 촬영하는 남성들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로 입건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기존엔 특수한 소형 카메라를 쇼핑백이나 화분 등 준비한 소품에 숨기거나 여성 뒤에 바짝 붙어 치마 아래에서 촬영하는 수법 등만 성폭력처벌법으로 다뤘지만, 최근엔 일반 각도에서 촬영한 이들까지 폭넓게 입건하는 추세다.

당초 수사기관이 다루는 몰래 촬영 범죄는 특수한 방법으로 특정 신체부위를 찍는 것에 한했다. 성폭력처벌법 제14조가 적용되는 사례는 대개 잠자리 등을 몰래 촬영하거나 알몸 등을 촬영하고 유포하는 경우 등이었다. 공공장소의 경우에는 달라붙어 치마 밑을 찍거나 수영장 등에서 노출부위를 촬영하는 등이 처벌대상이었다.

하지만 공공장소에서 통상의 각도로 촬영을 한 것을 두고 허락을 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법이라고 주장하는 사례가 늘면서 법 적용의 기준이 분명해질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 때문에 지난 1월 대법원 판례가 주목받은 이유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8년 5월 버스에서 하차를 위해 서 있던 여성 A씨의 뒷모습을 남성 B씨가 휴대폰 동영상으로 8초간 촬영하며 빚어졌다. 당시 하의에 레깅스만 입고 있던 A씨는 B씨의 행위를 알아채고 경찰에 신고했다. B씨는 성폭력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유죄, 항소심은 무죄를 선고해 대법원의 판결에 눈길이 쏠렸다. 대법원은 항소심 판결을 파기해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레깅스가 일상복이 됐다는 항소심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몸에 밀착해 굴곡이 드러나 카메라이용촬영죄의 대상이 되는 신체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또 “기분이 더럽다”는 여성의 증언을 처벌요건인 ‘성적 수치심’으로 폭넓게 해석했다.

이 같은 판단에 여성계는 찬사를 보냈지만 일각에선 초상권 침해를 넘어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삼는 게 가혹하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특히 거리에서 촬영대상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촬영하는 방식이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사진계와 예술계에선 “작업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무단으로 타인을 촬영하는 건 초상권 침해로 민사상 손해배상청구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와 별도로 성범죄로 규율하는 게 타당하냐는 비판이 나온다. fnDB
무단으로 타인을 촬영하는 건 초상권 침해로 민사상 손해배상청구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와 별도로 성범죄로 규율하는 게 타당하냐는 비판이 나온다. fnDB

■평상복 여성 카페서 무단촬영 '무죄' 판결
서울서부지법에선 카페에서 여성을 몰래 촬영하려 한 남성에게 무죄를 선고한 판결이 나와 눈길을 끈다.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서부지법 형사항소1-3부(정계선 부장판사)는 지난달 말 성폭력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C씨(43)에게 1심과 같이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검찰에 따르면 C씨는 지난해 2월 카페에 앉아있던 D씨(20·여)를 휴대전화로 촬영하려다가 D씨의 항의로 미수에 그쳤다. 당시 경찰에서 C씨는 “청순한 외모에 굵은 허벅지를 보고 아이디어가 생각났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1심과 항소심은 C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부적절하고 불쾌감을 유발하는 행동일지라도 촬영된 부분이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부위가 아니라는 판단이다. D씨가 입고 있던 옷이 일상복이고, 노출이나 굴곡이 두드러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지난 1월 대법원 판례가 레깅스에 한해서만 노출과 동등한 성폭력처벌법상 불법촬영의 목적물인 신체에 해당한다고 법원이 판단한 것이란 분석이 가능하다.

어디까지가 성폭력처벌법상 처벌대상인지가 불분명한 가운데, 일선 수사기관에서도 의견이 엇갈리는 형편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보통 몰카라고 하면 아래서 찍거나 몰래 찍거나 해야 하는데 길에서 모르는 여자를 찍으면서 아예 대놓고 찍는 경우가 있다”며 “만약에 친구를 찍듯이 전신을 찍거나 하는 걸 가지고 몰카라고 하면 난감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경찰 관계자는 “레깅스 판결이 나오면서 하나의 가이드라인이 되고 있는 것 같다”며 “사진작가들처럼 거리에서 아무나 찍는 걸 다 범죄라고 할 수는 없지만 특정 여성의 신체를 노려서 찍었고 (휴대폰을) 열어보니 다른 사진들이 여러개 나오고 하면 성폭력처벌법 적용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불법촬영 범죄 주요발생장소(2016-2019)
(건)
장소
역사 3247
주택 2853
지하철 2413
길거리 2329
버스 등 840
(국회)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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