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구본영 칼럼] 누가 윤석열을 호랑이 등에 태웠나

구본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4.12 18:00

수정 2021.04.12 19:42

여권 핍박이 정치체급 키워
내로남불 심판 보선에 탄력
내공·비전 보여야 완주 가능
[구본영 칼럼] 누가 윤석열을 호랑이 등에 태웠나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 오세훈·박형준 후보가 압승했다. 지난해 총선까지 전국 선거 4연승에다 180석 가까운 의석을 확보한 여권이었다. 내년 대선의 교두보인 이번 선거에서 참패하면서 거여(巨與)로 경사됐던 정치 지형이 어느 정도 평평해진 가운데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할 참이다.

신발 끈을 조이는 후보군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행보가 주목된다. 이미 각종 여론조사에서 부상 조짐이 보였던 그다. 이번에 문재인정부의 무능과 오만이 심판을 받았지만, 뚜렷한 야권 주자가 없는 터라 장외 우량주인 그의 주가는 더 높아졌다.


지난 4년 대선 트랙은 이낙연 전 총리와 이재명 경기지사 등 여권 잠룡들 쪽으로 기울었다. 부동산 실정, 조국 파문, 라임·옵티머스 사태 등 여권발 돌부리가 속출하긴 했다. 그럼에도 야권 주자들이 스퍼트할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여진에다 여권의 적폐청산 공세로 이들의 지지율은 답보를 면치 못했다.

그렇다면 누가 윤석열을 대권 주자로 우뚝 세웠나. 그에게 전 정권들을 치는 칼을 맡겼던 여권이 그 장본인이라면 역사의 아이러니다. 그가 '이명박근혜' 정권을 추상같이 단죄할 때는 그저 "우리 총장님"(문 대통령)이었다. 하지만 살아 있는 권력을 원칙대로 수사하려는 그를 여권이 막아서면서 정치권 내 위상은 되레 높아졌다. 그 사이 기득권이 된 여당과 무기력한 야권 사이에서 대안으로 부상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권이 그를 길들이거나 내치려 할수록 동정적 여론과 함께 그의 정치적 맷집도 커졌다. 재작년 조국 사태 이후 울산시장 선거개입 및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등을 놓고 벌인 그와 여권 간 갈등의 전 과정을 통해서다. 특히 추미애 전 법무장관이 지난해 윤 총장을 찍어내려 했을 때가 그랬다. 여권이야 검찰개혁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관객인 국민의 눈엔 정권 비리를 덮으려는 의도로 비치면서다.

그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투기 의혹이 폭로된 직후인 지난달 4일 "이 사회가 어렵게 쌓아올린 정의와 상식이 무너지고 있다"며 직을 던졌다. 이후 사태는 여당 소속 국회의원들과 지자체 인사들의 투기 의혹으로 번지면서 재보선을 앞둔 여권을 수렁으로 몰아넣었다. 선거 결과를 떠나 여권의 '내로남불'에 피로증이 쌓인 민심에 '공정과 정의'가 시대정신인 양 각인됐다면 '정치인 윤석열'에겐 날개를 달아준 격이다.

이쯤 되면 '칼잡이 윤 총장'을 대선주자로 키운 '8할의 공'도 여권에 있다고 봐야겠다. 미당 서정주가 시 '자화상'에서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다"고 했듯이. 그렇다고 그의 대선 가도가 탄탄대로는 아니다. 본격적 검증의 장이 서면 여권은 처가의 재산 축적 의혹 등 그의 아킬레스건에 메스를 대려 할 것이다. 혹여 타의로 호랑이 등을 탔다 할지라도 내년 대선까지 안전하게 달릴 수 있을지 여부는 순전히 그의 몫이다. 작금의 인기도 고건, 반기문 등 과거 유력 장외 주자들이 그랬듯이 포말처럼 꺼질 수도 있다. 그가 이렇다 할 정치적 내공을 보여주지 못할 경우다.


문 정부가 내세운 정의와 공정의 가치가 퇴색하는 바람에 용케 그가 "별의 순간을 포착"(김종인 전 국힘 비상대책위원장)한 형국이다. 그러나 실제로 별을 따려면 그의 전공인 법을 넘어 경제·안보까지 망라한 비전과 이를 구체화할 정책 리더십의 싹을 보여줘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그는 이제 출발선에 섰을 뿐이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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