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일반

나같은 여성이 파는 화장품 모두가 안된다 할 때 "된다"고 하신 하나님 말씀만 믿었다 [Guideposts]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4.13 17:21

수정 2021.04.13 18:19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다
IT코스메틱 CEO 제이미 컨 리마
방송기자 시절 난치성 피부질환 생기며 절망했지만
화장품 만들라는 메시지 듣고 사업 뛰어들어
처음엔 아무도 알아주지 않다가 고객들 사이에서 입소문
美 홈쇼핑채널서 겨우 따낸 10분에 민낯 노출하고 모든 것 걸어
이후 '아니오'는 '좋아요'로 바뀌고, 회사는 최고의 자리에
IT코스메틱 창업자이자 CEO인 제이미 컨 리마는 모든 사람들이 '안돼요'라고 말해도 주눅들거나 낙담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께서 '된다'고 말씀하신 걸 믿고 따랐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IT코스메틱 창업자이자 CEO인 제이미 컨 리마는 모든 사람들이 '안돼요'라고 말해도 주눅들거나 낙담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께서 '된다'고 말씀하신 걸 믿고 따랐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IT코스메틱이 세계적 브랜드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 홈쇼핑 채널 QVC에 제품이 소개되면서다. 제이미 컨 리마(왼쪽)는 직접 TV에 출연해 제품을 팔았다.
IT코스메틱이 세계적 브랜드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 홈쇼핑 채널 QVC에 제품이 소개되면서다. 제이미 컨 리마(왼쪽)는 직접 TV에 출연해 제품을 팔았다.
드디어 따냈다. 세포라(세계적인 프랑스 화장품 유통업체)의 구매 총책임자와 대면회의. "당신 같은 외모, 그러니까 그런 체형과 몸무게를 가진 여성이 파는 화장품을 다른 여성들이 살 것 같지는 않군요"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던 터라 세포라와의 회의가 성사된 것 자체가 엄청난 기회처럼 느껴졌다.

남편이면서 동업자인 파울로와 나는 미친듯이 회의 준비를 했다. 우리 제품을 사용한 여성들이 찍은 '비포 앤 애프터' 사진과 그들이 우리 웹사이트에 게시한 사진들을 추려내고, 파워포인트로 발표자료를 만들고, 샘플을 포장했다.

샌프란시스코로 날아가 세포라 사옥으로 들어갔다.

대체로 친절하고 호의적인 직원들과 달리 구매 총책임자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발표를 시작하라는 신호로 고개를 까딱했다. 15분 뒤 그녀가 발표를 중단시켰다.

"여성들 사이에서 이 제품이 그렇게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다면 제 귀에도 들렸겠죠. 그런데 전 들은 바가 없어요."

그녀가 말했다. 또 한 번의 거절. 왈칵 울음이 터져 나왔다. 정신을 가다듬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직 QVC(미국의 홈쇼핑 전문채널)가 남아 있잖아요." 남편이 나를 위로했지만, 그땐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았다.

내 외모. 피부와 체형. 그것은 우리가 IT코스메틱을 시작한 이유 중 하나였다. 나는 미용업계가 과도하게 보정된 이미지를 내보내는 방식에 진저리가 났다. 그것은 사람들의 불안심리를 이용한 신기루에 불과했고 나 같은 여자들은 달성하지 못할 그릇된 표준이었다. 그 사실을 힘들게 배웠다. 20대 후반 나는 텔레비전 기자로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주말 아침뉴스를 진행했다.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이 업이었던 셈이다. 그러다 장미 여드름이라고 하는 난치성 피부 질환이 발병했다. 얼굴에 커다랗게 붉은 반점이 생겼다. 어떤 땐 울퉁불퉁했고, 어떤 땐 사포처럼 까칠까칠했다.

나는 월급의 거의 전부를 쏟아부어 시중에 나온 파운데이션이란 파운데이션은 모조리 샀다. 돈이 다 떨어지자 무료 샘플을 받았다. 그런데 효과가 없었다. 아니면 화장이 너무 두꺼워 마치 가면을 쓴 것처럼 보였고, 팔자 주름을 따라 화장이 갈라지고 뭉치기도 했다.

절망에 빠져 있을 때 그 계시가 왔다. 하나님을 만난 순간이라고 해도 좋다. 절망의 시기에 우리는 가끔 하나님의 목소리를 가장 또렷하게 듣는다. 나는 아주 크고 명료한 목소리로 이런 메시지를 들었다. '네 피부에도 좋고 모든 피부 타입과 피부톤에 맞을 뿐만 아니라, 필요를 충족시키면서도 가면을 쓴 것처럼 보이지 않는 화장품을 만들어라.'

나는 사업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었다.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말이다. 슈퍼마켓에서 식료품을 포장하고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서빙을 하면서 워싱턴주립대학을 졸업한 뒤 뉴욕에 있는 경영대학원에 들어갔다. 그때 한 통계학 강의에서 지금의 남편인 파울로를 만났다. 우리는 결혼을 했고, 신혼여행 가는 비행기 안에서 IT코스메틱스에 대한 사업계획서를 작성했다. 우리는 영혼의 동반자이자 사업 파트너였다. 둘 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집 거실에 사무실을 차렸다. 나는 제품을 하루종일 내 얼굴에 바른 채로 테스트했다. 화장이 갈라지는지 확인하기 위해 갖가지 표정을 지으면서 집 안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리고 주변의 모든 친구와 가족을 대상으로도 테스트했다.

화장품 유통업체에 우리 제품을 납품해보려고 시도했지만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했다. 전부 퇴짜를 맞았다. 좋아, 아무도 우리 제품을 팔지 않겠다면 직접 팔면 되지. 남편이 '왕초보를 위한 HTML'이라는 커다란 책을 열심히 들여다보면서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나는 매일 사이트에 들어가 제품 판매가 어느 정도 되고 있는지 확인했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주문 0건. 그날도 그다음 날도.

"웹사이트에 문제가 있나 봐요." 남편한테 볼멘소리를 했다. 이틀 후 드디어 구매자 한 명이 생겼다. 꼭 크리스마스 아침 같았다.

"정말 멋지지 않아요?" 내가 말했다. 남편이 당황한 기색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여보, 그거 나예요. 웹사이트가 제대로 작동한다는 걸 당신한테 보여주려고 내가 주문한 거예요." 허탈하고 혼란스러운 기분으로 하나님께 나에게 원한 것이 정말 이 길인지 물었다. 의구심이 밀려들었다. 쉬지 않고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게 느껴졌다. "포기하지 말라. IT코스메틱을 믿어라."

우리는 그 말씀에 따랐다. 마침내 캐나다의 홈쇼핑 채널 TSC에 들어갈 기회를 잡았다. 거기서의 판매를 발판 삼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최고는 입소문이었다. 제품을 실제로 사용한 여성들이 눈에 띄는 결과를 얻는 것을 확인하니 감격스러웠다. 하지만 투자자를 찾는 데는 계속 실패했다.

미국 내 최대 홈쇼핑 채널인 QVC가 우리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나는 e메일을 보내고 전화도 하고 메시지로도 연락을 취했다. 그리고 샘플을 보냈다. 마침내 화장품 총책임자로부터 연락을 받았지만 우리가 원하는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우리는 'QVC나 QVC를 이용하는 고객들에게 맞지' 않았다. 완전히 짓밟힌 기분이었다.

그러나 우리에겐 아직 하나님이라는 마지막 수단이 남아 있었다. 나는 수백 종류의 제품을 시연하고 전시하는 화장품 박람회에 참가했다. 수십명의 사람들이 우리 부스를 들렀다. 항상 그렇듯이 그들은 우리 제품을 무척 좋아했다. 그때 곁눈으로 흘긋 보니 QVC 부스와 쇼호스트가 눈에 띄었다. 저쪽으로 가봐야 하는 건지 하나님께 여쭤보려는 찰나 그녀가 우리 부스를 향해 걸어왔다.

"우리 QVC 고객들이 이 컨실러(피부 결점을 감춰주는 화장품)를 정말 좋아할 것 같아요." 그녀가 우리 제품인 '바이 바이 언더 아이'를 들어보이며 말했다. "제이미, 제품 선택 권한이 나에겐 없지만 QVC 구매 담당자에게 당신의 제품에 대해 얘기했어요!"

남편과 나는 필라델피아에 있는 QVC 본사로 날아가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미리 거절당할지 모른다는 마음의 준비도 했다. 나는 '좋아요' 대신에 '아니오'를 듣는 것에 너무 익숙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좋아요, 제이미. 당신에게 기회를 드리겠어요."

우리 제품 6000세트를 판매하는 데 주어진 방송 시간은 단 10분. 이것이 QVC와의 계약 조건이었다. 10분 동안 6000세트를 판매하지 못하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 판매뿐만 아니라 배송 준비까지 해야 했다. 재고 생산을 위한 융자를 받기 위해 은행을 돌아다녔다. 한 소규모 은행만이 유일하게 우리에게 융자를 해주었다. 방송을 할 때쯤 우리 회사 계좌와 개인 계좌를 합쳐 남은 돈은 고작 1000달러뿐이었다.

방송이 시작되자 팔이 덜덜 떨리고 얼굴이 빨개졌다. "심호흡을 해봐요. 잘하고 있어요." 쇼호스트가 내 팔을 잡으며 말했다. 나는 뉴스 앵커 때 했던 화장을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에 나의 민낯, 연분홍의 장미 여드름을 전국 방송에서 가감없이 노출하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 제품이 어떤 효과가 있는지 보여줄 생각이었다.

시간이 흘렀다. 내 마음과 영혼을 바쳤다. 분주한 움직임이 포착됐다. 판매되고 있는 건가? 좋았어! 판매 숫자가 올라가고 있었다. 시간이 끝나기 직전에 '매진' 표시가 화면에 나타났다.

이후 모든 일이 순조로웠다고 말하고 싶지만, 실상은 일이 훨씬 더 많아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아니오'가 '좋아요'로 바뀐 것이다. 나는 QVC 방송에 셀 수 없이 많이 출연했고, 우리 회사는 화장품 브랜드로 업계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우리의 연락에 회신도 주지 않던 대형 유통업체들로부터 연락이 왔다. 여기에는 세포라도 포함된다. 이제 성공한 기업의 CEO가 된 나는 우리의 비전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평범한 여성들을 위해 존재하며, 모든 연령대와 피부톤, 신체 사이즈를 가진 모델들을 보유하고 있다. 내면과 외면의 아름다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2016년, 우리는 12억달러에 IT코스메틱을 로레알에 넘겼고, 나는 로레알 브랜드 100여년 역사상 최초의 여성 CEO가 되었다. 수많은 것들,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성공에 도움이 되었겠지만, 남편과 내가 거실에서 함께 일하던 초창기 시절부터 지금까지 더 높은 곳의 힘이 우리의 꿈을 붙들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늘 알고 있다.

박람회에서 우리에게 다가와 준 사람, QVC의 쇼호스트만 봐도 그렇다. 수년이 흐른 후, 우리가 국내 최대 화장품 회사가 되었을 때 나는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오, 제이미, 제이미 회사 컨실러 너무 좋아요. 지금도 매일 쓰고 있어요. 하지만 그날 내가 제이미에게 갔던 것은 그 때문이 아니에요."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어요. 그러니까, 가서 저 여성을 도와주라고 말이에요. 아주 단순한 이유였죠. 그래서 그렇게 했어요. 그냥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뿐이에요."

이 놀라운 여정에서 내가 배운 최고의 교훈은 바로 이것이다. 모든 사람이 '안돼요'라고 말할 때 하나님께서는 '된다'고 말씀하신다는 것을,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에 그냥 복종하면 된다는 것을 말이다.

글·사진=가이드포스트

'가이드포스트(Guideposts)'는 1945년 노먼 빈센트 필 박사에 의해 미국에서 창간된 교양잡지로, 한국판은 1965년 국내 최초 영한대역 잡지로 발간되어 현재까지 오랜 시간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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