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노주석 칼럼] '서울특별시장'이라는 자리

노주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4.14 18:26

수정 2021.04.14 18:26

야당 시장의 국무회의 등장
대통령 부하 아닌 반군역할
선출직 빅2의 위상을 기대
[노주석 칼럼] '서울특별시장'이라는 자리
4·7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오세훈 서울특별시장이 거의 '대통령급'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서울시장의 위상이 언제 이렇게 높아졌나 할 정도로 일거수일투족이 주목의 대상이다.

서울시 정책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입법 폭주'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잘나가던 180석 거대 여권의 뒷배를 가진 정부가 무색하다. 지지자들은 서울특별시장과 대통령, 서울특별시와 정부를 대결구도로 몰아간다. 이명박·박근혜 두 대통령도 지방선거에서 안방 서울을 내준 뒤 내리막길을 걸었다.


새 시장에 대한 기대를 뛰어넘는 시민의 욕구가 분출하고 있다. 마치 선거를 통해 시민혁명을 이룬 것 같은 기세다. 세상을 바꾼 주체는 국민이 아니라 시민이라는 시각이 엿보인다. 영국의 청교도혁명, 미국의 독립전쟁, 프랑스 대혁명이 '세계 3대 시민혁명'이라며 강변하는 듯하다.

대선을 눈앞에 둔 야당 서울시장의 힘이 느껴진다. 2006년 이명박 시장으로부터 직을 이어받은 오 시장의 첫번째 임기를 상기시킨다. 재선 후 여소야대로 바뀐 시의회와 구청장의 등쌀에 몰린 나머지 2011년 추진한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패해 사퇴했을 때와는 딴판이다.

오 시장이 13일 국무회의에 첫 참석, 발언하는 걸 보고 지지자들은 반색이다. 여당 일색인 정부 최고회의에 나타난 유일무이한 오 시장이 군계일학처럼 보이는가 보다. '대통령의 부하'로 여겨졌던 여당 서울특별시장과 달리 오 시장을 '반군의 사령관'쯤으로 여기는 인상이다.

서울특별시장의 국무회의 참석은 조선 개국과 함께 시작된 오래된 전통이다. 조선시대 서울특별시는 한성부, 서울특별시장은 한성판윤이었다. 정2품 한성판윤은 조정의 최고위 벼슬아치를 통칭하는 삼정승(영의정·좌의정·우의정)과 구경(좌참찬·우참찬·육조 판서·한성판윤) 중 한 명이었다. 런던, 파리, 워싱턴, 모스크바, 베이징, 도쿄 같은 유수 도시엔 없는 서울만의 독특한 전통으로 자리잡았다.

조선시대 서울은 하나의 도시라기보다 국가 그 자체였다. 서울이 곧 국가였다. 임금은 수도를 다스렸고, 한성판윤은 대행자였다. 한성판윤은 일반 도시행정은 물론 호적소송을 담당하는 사법권과 궁궐과 도성을 지키는 치안업무, 중국사신을 맞는 외교업무까지 맡는 대단한 자리였다.

오 시장은 제2011대 한성판윤이다. 1395년부터 1910년까지 한성판윤은 모두 1952명이었다. 재임기간은 3.6개월에 불과할 정도로 파리목숨이었다. 해방 이후 38명이 거쳐갔다. 오 시장이 잔여 임기를 채우면 6년4개월을 기록한다. 8년8개월을 재직한 박원순 전 시장에 이어 2번째다.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재신임받으면 최장수 기록을 갈아치우게 된다.

선출직 서울특별시장은 서울이 가진 상징성과 대표성으로 말미암아 대통령에 이어 사실상 '빅2'의 정치적 위상을 갖고 있다. 임명직 국무총리나 여당 당대표를 뛰어넘는다. 또 차기 또는 차차기 대선후보로서의 위상이 그 누구보다 뚜렷하다.

그러나 김상돈, 조순, 고건, 이명박, 오세훈, 박원순 등 6명의 민선 시장 중 대통령은 이명박밖에 배출하지 못했다.
세계 유수 도시 중에서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과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각각 파리와 모스크바 시장을 지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런던시장 출신이다.
10년 만에 되살아난 '오뚝이' 오세훈 시장이 성난 부동산 민심을 업고 청와대를 향해 직진할지 지켜볼 일이다.

joo@fnnews.com 노주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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