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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의 특별한 졸업을 축하해" 케이크 굽는 '번맨'의 선한 영향력 [Guideposts]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4.20 17:44

수정 2021.04.20 18:43

팬데믹 시대 고교 졸업생 응원한 제빵사 빌 하니쉬

대면 졸업식도, 댄스파티도 못할
지역 고3들 위한 작은 아이디어
SNS에 방송까지 타면서 일 커져
2개주 15개 마을서 주문 쏟아졌죠
코로나로 재정상황 어려웠지만
곳곳서 기부 물결 이어져
1200개 케이크 만들기 가능
저와 직원들이 오히려 힘 받았어요
'행복한 번맨'으로 불리는 제빵사 빌 하니쉬는 코로나19로 가게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에서도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고3들을 위한 졸업 축하 케이크를 저렴한 가격에 제공했다. 이런 사실이 SNS와 TV 방송 등을 통해 널리 알려지면서 주문과 격려가 폭주했고 하니쉬 베이커리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팬데믹으로 어려운 시기를 함께 버텨낼 수 있었다.
'행복한 번맨'으로 불리는 제빵사 빌 하니쉬는 코로나19로 가게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에서도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고3들을 위한 졸업 축하 케이크를 저렴한 가격에 제공했다. 이런 사실이 SNS와 TV 방송 등을 통해 널리 알려지면서 주문과 격려가 폭주했고 하니쉬 베이커리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팬데믹으로 어려운 시기를 함께 버텨낼 수 있었다.
한바탕 흩날리는 밀가루, 소용돌이치는 바닐라 버터크림, 밤낮없이 일하는 직원들, 밤새 납품업체에서 배송돼온 케이크 굽는 팬. 2020년 5월과 6월 사이의 6주 동안, 미네소타주 레드윙에 위치한 '하니쉬 베이커리 앤 커피숍'의 빌 하니쉬는 팬데믹 시기에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3학년생을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1998년에 내가 그랬듯이 학생들이 기억에 남는 졸업식을 꼭 치르기를 바랐어요." 작년 3월 코로나19로 레드윙의 학교들이 문을 닫자, 3학년들은 졸업 댄스파티 같은 중요한 이벤트를 놓쳤다. 빌은 학생들이 대면 졸업식도 하지 못할 것임을 알았다.

"졸업식이야말로 학업과 운동을 하면서 성장한 아이들을 지켜보는 일의 절정이죠. 레드윙처럼 작은 공동체에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크고 아주 중요한 행사랍니다."

베이커리 주인 혼자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우선 그는 전처 로빈 하니쉬에게 전화했다.



"로빈은 우리 케이크 장식사예요. 고등학교 3학년생이 집에서 졸업을 축하할 수 있게 학교 상징색으로 장식한 맞춤형 레이어 케이크를 주고 싶다고 했죠. 로빈은 아주 좋은 아이디어라고 했어요."

로빈이 동참했고, 빌은 4월 26일 일요일에 200명 정도 되는 레드윙 고등학교 졸업반을 축하해주겠다는 계획을 페이스북에 간략히 올렸다. '좋아요'와 용기를 북돋우는 댓글들이 달렸지만, 다운타운의 명소로서는 전혀 유별난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평소처럼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베이커리의 문을 닫았다.

그렇지만 화요일 밤이 되자 전화가 왔다. 사람들은 '자기' 학교에서도 졸업생을 위한 케이크를 갖고 싶어했다. 레이크시티, 위스콘신주의 엘즈워스, 미시시피주 전역의 학생들은 어땠을까? 빌은 아낌없이 베풀고 싶었으나 비품이 걱정이었다. 무료 케이크 수십개를 더 나눠줄 형편이 될까? 많은 식당이 그랬듯이 하니쉬 베이커리도 팬데믹 시기에 고군분투했고, 수지를 거의 맞추지 못했다. 커피숍은 폐점해야 했으며 원래 있던 직원 42명 중 극히 일부만 근무했다.

5월 5일에는 지역 CBS뉴스 채널이 빌의 페이스북 게시물을 선정해 트윈 시티즈(미네소타주의 미니애폴리스와 세인트폴) 전역에 그의 아이디어를 방송했다.

"바로 그때 일이 제 궤도에 올랐어요."

수십명, 그다음에는 수백명에게서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빌과 직원들이 과연 졸업식 때까지 모든 요청을 처리할 수 있을까?

빌은 언제나 제빵에 소질이 있었는데, 그는 제빵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라고 본다. 열다섯살 때 첫번째 직업이던 골프카트 승무원에서 해고된 후 곧 레드윙 시내의 베이커리에서 임시 일자리를 구했다. 머핀, 페이스트리, 빵, 케이크를 처음 접하면서 빌은 제빵이 그저 돈을 좀 더 버는 수단이 아님을 알았다. 그건 천직이었다.

"정말이지 무에서 수백 가지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 내는 거죠. 대단한 일이에요." 동료 중 일부는 훗날 빌의 직원이 되었는데, 그가 레드윙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케이크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스펀지케이크였어요. 말 그대로 스펀지를 쌓아서 만들었죠."

빌은 로드아일랜드주의 존슨앤웨일즈대학교에서 제빵 및 페이스트리 기술을 공부했다. "그 덕분에 제빵산업이라는 더 큰 세상에 눈떴죠."

그는 미시시피강을 따라 아래위로 유람하는 델타라인 증기선의 주방에서 일하기로 마음먹었다. 진짜 요리 모험이 될 수 있었다. "입사지원서도 준비했어요."

'보내기'를 누르기 전에 전화를 받았다. 야간 제빵사로서 레드윙으로 돌아오는 데 관심이 있었을까?

"언제나 제 사업체를 꾸리고 싶었어요. 레드윙으로 돌아온 덕분에 그 궤도에 들어선 셈이죠."
'행복한 번맨' 빌 하니쉬가 자신의 가게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행복한 번맨' 빌 하니쉬가 자신의 가게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7년이 지난 2007년, 빌과 로빈은 옛 레드윙 베이커리를 사들여 '하니쉬 베이커리'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 사업은 번창했고, 공동체의 흥미로운 인물이라는 그의 명성도 자자해졌다. 2009년에 어떤 DJ가 그에게 '빌리 더 번맨'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는데 그 이름이 그대로 굳어졌다. 빌은 마스코트 의상 제작을 의뢰하고 지역 퍼레이드나 행사에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번맨은 해마다 '닥터 수스(미국의 어린이책 작가)'를 기리며 한 학교의 '미국 독서의 날' 행사에서 쿠키 1000여개를 나눠 주었다. 레드윙의 크리스마스 퍼레이드에서는 초콜릿 칩 쿠키 3000개를 나눠 주기도 했다.

"동네 사람 모두 날 번맨으로 알죠. 머리글자를 넣은 번맨 번호판을 단 차도 갖고 있어요."

빌은 아이들이 고향의 특별한 점을 알지 못한다는 걸 알기에 고등학교 졸업반에게 케이크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아이들이 10주년이나 25주년 동창회에서 졸업을 떠올릴 때 제법 특별했다고 추억하면 좋겠어요."

온갖 곳에서 부모와 학교 관리자가 전화했는데 빌은 그것들에 능숙하게 대처한 후 앉아서 계산해 보았다. 보통은 케이크 하나를 28달러에 팔아서 수익을 내지만, 졸업케이크는 15달러에 팔면 본전치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뭐랄까, 매일 정신적인 도움을 요청했어요. 나는 좋은 일을 하면 선한 보답이 돌아온다고 믿는 사람이에요."

요청해온 모든 마을의 졸업반 학생들에게 케이크를 주고 싶지만, 팬데믹 때문에 재정상 그럴 수 없다고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래도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케이크를 원가에 제공하는 거였다.

놀랍게도 주문과 더불어 기부도 쇄도했다. 플로리다부터 캘리포니아에 이르기까지 미국 전역의 사람들이 물품비와 인건비를 내주겠다 했다. 빌은 지역 ABC채널에 특집으로 등장했고, 그다음에는 폭스뉴스에 출연했다. 레드윙의 졸업생을 축하해주려는 생각에서 시작한 일이 순식간에 졸업식 전 6주 동안 케이크 1200개를 구워 2개 주에 있는 15개 마을에 배달해야 하는 긴급사태로 커졌다.

세부계획은 쉽지 않았다. 어떤 학교가 5월에 케이크를 주문했는데, 다른 학교의 두어 부모가 다른 지역을 위해 6월 초에 케이크를 주문한다면? 빌의 운전기사가 하루에 얼마나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걸까? 빌은 학교에 전화를 걸었다. 개인 주문보다 단체 주문을 먼저 받기 위함이었다. 모두 흥분했고 더 많은 주문이 이루어졌다.

하니쉬 베이커리는 이제 일해야 했다. 충분한 주문이 들어온 덕분에, 이를 처리하기 위해 휴직 중이던 직원들까지 불러들일 수 있었다.

"때때로 내가 학교 일을 잊는 바람에 급히 서둘러야 했어요."

어느 아침에는 로빈이 코앞에 닥친 배송에 맞춰 케이크 60개를 장식해야 했다.

"우리가 그걸 다 해냈다는 게 당혹스러울 정도예요."

빌이 페이스북에 처음 글을 올리고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5월 19일, 하니쉬 베이커리는 미네소타주 케년의 와나밍고의 행복한 졸업생들에게 1차로 케이크를 배송했다. 5월 20일에는 다른 학교에 배달했다. 5월 22일에는 두 학교가 더 있었다. 5월 24일에도 또 다른 학교가 있었다. 그 후부터는 졸업 시즌이 끝나는 6월 11일까지 매일 배송이 끊이지 않았다.

빌은 케이크를 받은 졸업생을 둔 부모들로부터 동영상을 받기도 했지만, 케이크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을 직접 보는 게 역시 최고였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곳은 1시간15분 거리에 있는 소도시 블루밍 프레리였어요. 학생들은 가족의 차로 온 동네를 행진하면서 졸업했죠. 소방차를 포함해서 모든 게 있었다니까요!"

하니쉬 베이커리에 처음 연락했던 블루밍 프레리 졸업생은 학생들이 케이크와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자기집 마당에 사진 촬영용 부스를 설치했다.

"아마도 케이크가 몇 번은 받침판에서 완전히 미끄러졌을 거예요."

그렇게 말하며 빌은 웃음을 터트렸다.

졸업 시즌에 미친 듯이 몰아치던 일이 마침내 끝나고 빌은 손해를 자세히 살펴보려고 수치를 검토했다. 그 모든 미소를 배달하는 데 비용이 얼마나 들었을까? 기부금을 전부 더하고 나니, 케이크 하나에 15달러로 '딱 들어맞게' 본전치기를 했다는 걸 알았다.

빌과 레드윙의 쾌활한 제빵사들은 케이크 판매로 백만달러를 벌 마음이 전혀 없다. 그저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에게 기억에 남을 만한 졸업식을 선사하고 싶을 뿐이다. 그 덕분에 하니쉬 베이커리와 그 직원들이 이토록 어려운 시기를 버텨 냈을까? 번맨은 밝게 웃으며 말한다.

"그러면 금상첨화죠."
'가이드포스트(Guideposts)'는 1945년 노먼 빈센트 필 박사에 의해 미국에서 창간된 교양잡지로, 한국판은 1965년 국내 최초 영한대역 잡지로 발간되어 현재까지 오랜 시간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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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가이드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