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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관칼럼] ILO 핵심협약 비준, 노동존중사회 기반

홍예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4.21 18:08

수정 2021.04.21 18:08

[차관칼럼] ILO 핵심협약 비준, 노동존중사회 기반
반도체, 스마트폰과 같은 첨단기술 산업부터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BTS의 음악과 영화 '기생충' '미나리'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분야가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노동 분야의 평가는 대조적이다.

1996년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할 때 가입을 승인받는 대신 조건이 하나 붙었다. '노사관계 법령을 국제기준에 부합하도록 개정할 것'. 어떤 회원국에도 씌워지지 않은 굴레였다. OECD는 1997년부터 우리 노동법의 진전 상황을 모니터링했고, 11년이 지난 2007년이 돼서야 몇 가지 쟁점에 대해 추가 정보를 받기로 하고 모니터링을 종료했다.

비슷한 일은 최근에도 일어났다.
유럽연합(EU)은 우리나라가 한·EU 자유무역협정(FTA) 협정문상의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조항을 지키지 않고 있다며 2012년부터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했고, 2018년에는 공식적인 분쟁절차를 개시했다. FTA상의 노동조항을 근거로 진행된 우리나라 최초의 분쟁 사례였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세계보건기구(WHO),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처럼 유엔 산하기구의 하나로 노동분야의 보편 규범을 수립·전파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ILO 핵심협약은 한 국가의 노동기본권이 얼마나 잘 보장되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가장 보편적인 척도이다. ILO 회원국의 노·사·정은 1998년 ILO 총회에서 결사의 자유를 효과적으로 보장하고, 모든 형태의 강제적인 노동을 철폐하며, 아동의 노동을 착취하지 않고, 성별이나 출신 등에 따른 고용상의 차별을 금지할 것을 약속했다. 이 네 가지 분야에 해당하는 협약이 바로 '핵심협약(Fundamental Conventions)'이다.

이 중 '결사의 자유'는 다른 권리들을 보장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이고 실질적인 권리로 인정받고 있다. 노동자가 자유롭게 단체를 조직·가입하고 활동할 수 있어야 각종 기본권 침해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핵심협약의 중요성만큼 비준을 위한 진통도 컸다. ILO 협약을 비준하려면 협약에 부합하도록 노사관계 법·제도를 고쳐야 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의 논의, 전문가 검토, 공청회 등 수년에 걸친 노력 끝에 노동관계법이 개정됐고 핵심협약 비준동의안도 올해 2월 국회를 통과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는 그간 국제사회에 다짐해 온 약속을 이행하고, 핵심협약 비준국으로서 국제 무대에서 더 당당하게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입지를 마련하게 됐다.

또한 핵심협약 비준으로 FTA상의 분쟁 리스크를 줄일 수 있게 됐다. 최근 EU를 비롯한 선진국들은 FTA에 'ILO 핵심협약 등 국제노동기준을 존중하고 실현해야 한다'는 조항을 포함시키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핵심협약의 비준 및 이행은 노동을 넘어 통상과도 직결되는 문제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가 ILO에 가입한 지 약 30년이 지났다.
핵심협약을 비준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만큼 협약의 취지가 실현될 수 있는 기반도 단단해졌다. 오는 7월 개정 노사관계 법령이 시행될 예정이다.
단체의 설립, 가입과 운영에서의 자율성이 확대되는 동시에 자율과 책임이 조화를 이루는 노사관계 정착을 위해 노·사·정이 함께 노력해야 할 때다.

박화진 고용노동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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