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이구순의 느린걸음

[이구순의 느린 걸음] 금융위원장이 쏘아올린 가상자산

이구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4.27 18:32

수정 2021.04.27 18:32

[이구순의 느린 걸음] 금융위원장이 쏘아올린 가상자산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큰일을 해냈다. 지난 3년간 가상자산에 대해 아예 쳐다보려고도, 인정하려고도 않던 정부가 결국 가상자산을 방치할 수 없다는 인식을 갖게 했다.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가 27일 출근길에 "정부 입장에선 2030세대들이 여기(가상자산)에 관심이 많다는 걸 알고 있고, 이 문제를 그냥 방치해둘 순 없다"며 "지금보다는 투명성이라 할까 이런 부분들이 어느 정도는 지켜질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입장을 내놨다.

참 역설적이지만 은 위원장의 과도한 솔직함이 큰일을 했다. 은 금융위원장이 지난 22일 "(가상자산이 시장에) 좀 안들어왔으면 좋겠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라며 "(젊은이들이) 잘못된 길로 가면 어른들이 이야기를 해줘야 한다"고 국회 정무위원회 공식 석상에서 속내를 털어놓은 게 뇌관에 불을 붙였다. 게다가 "투기성 자산에 투자하는 국민들까지 보호할 필요가 없다"며 투자자 보호정책의 필요성을 부인하면서 2030들을 화나게 만들었다.
청와대 국민소통 게시판에는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자진사퇴를 촉구합니다'라는 청원이 게시돼 10만명 이상의 동의를 받고 있다. 각종 SNS에는 "누가 투자금 보상하랬냐"거나 "내가 판단해 투자했으니 세금 내놓으라고 하지 마라"는 등 불만이 터져나온다.

그러자 정부가 부랴부랴 나섰다. 국무총리 후보자가 정책의 필요성을 언급했고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정치권도 가상자산 정책을 논의하겠다고 약속을 내놓는다. 이제 정부와 정치권의 약속이 빈말이 되지 않도록 지켜보는 일이 남았다.

사실 은 위원장이 크게 틀린 말을 하지는 않았다. 가상자산에 대한 그동안의 정부 정책기조를 재차 확인하면서 너무 솔직했을 뿐. 2030들이 화를 낸 것은 시쳇말로 '꼰대 마인드' 때문 아닌가 싶다.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해 자기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그 마인드 말이다.

가상자산 시장은 그야말로 2030세대의 감성에 딱 맞는, 2030이 주도하는 시장이다. 시가총액 2위의 이더리움을 만들어낸 사람은 아직도 20대인 개발자 비탈릭 부테린이다. 24세에 이더리움을 만들었다. 국내 가상자산 투자자들도 절반가량은 2030이라고 한다. 블록체인·가상자산 기업가들도 2030들이 주류다.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자란 2030세대는 실시간-무제한-디지털 감성을 갖는다. 그러니 매도 후 이틀이나 기다려야 자금이 입금되고,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30분까지만 문을 여는 주식시장이 마땅찮을 수밖에 없다. 국경이 엄격한 것도 갑갑하다. 부동산도 느리고 복잡한 일반 거래보다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잘게 쪼개고 빠르게 거래하기를 원한다. 스마트폰 하나만 쥐고 있으면 전 세계 어떤 자산이든 원하는 시간에 거래할 수 있는데 굳이 금융당국, 부동산당국이 막아서는 것이 못마땅하다. 이런 2030의 감성을 '잘못된 길'이라고 못 박아 버렸으니 화를 낸 것일 게다.

정책논의를 시작하겠다고 나서는 정부와 정치권이 은성수 위원장 같은 실수 하지 않기를 바란다. 가상자산 산업을 기존 금융산업의 틀에 끼워맞추려는 것, 뭐든 안된다고 먼저 막아서는 것 안했으면 한다.
과거 경험이나 높은 지위를 내세워 가상자산 산업과 2030을 가르치려 들면 안된다. 이해하려 노력해야 그들이 보인다.
이해해야 꼰대를 면한다.

cafe9@fnnews.com 이구순 정보미디어부 블록체인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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