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이천화재 1년' 세르게이·드미트리의 첫 제사엔 보드카가 올랐다

뉴스1

입력 2021.05.01 07:46

수정 2021.05.01 22:10

지난 29일 천안추모공원에서 아들들의 유골함을 앞에 두고 오스베트라나씨(70·여)가 오열하고 있다. 2021.4.29/뉴스1 © News1 박동해 기자
지난 29일 천안추모공원에서 아들들의 유골함을 앞에 두고 오스베트라나씨(70·여)가 오열하고 있다. 2021.4.29/뉴스1 © News1 박동해 기자


지난해 5월1일 오전 경기 이천 창전동 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 마련된 경기 이천 물류창고 화재 사망자 합동분향소에서 스베트라나의 가족들과 지인이 조문한 뒤 분향소를 빠져나가고 있다. 2020.5.1/뉴스1 © News1 황덕현 기자
지난해 5월1일 오전 경기 이천 창전동 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 마련된 경기 이천 물류창고 화재 사망자 합동분향소에서 스베트라나의 가족들과 지인이 조문한 뒤 분향소를 빠져나가고 있다. 2020.5.1/뉴스1 © News1 황덕현 기자


지난 29일 천안 동남구 자택에서 스베트라나씨가 자신의 휴대전화로 셋째 아들 고(故) 남드미트리씨의 사진을 보고 있다.2021.4.29/뉴스1 © News1 박동해 기자
지난 29일 천안 동남구 자택에서 스베트라나씨가 자신의 휴대전화로 셋째 아들 고(故) 남드미트리씨의 사진을 보고 있다.
2021.4.29/뉴스1 © News1 박동해 기자

(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 지난달 29일 오전 9시 천안추모공원, 두 아들의 유골함을 마주한 스베트라나(여·70)은 "끄어억" 소리와 함께 곡소리를 토해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잘 못 눌러 거꾸로 한층을 내려와야 할 때만 해도 평온하던 그의 모습은 유골함과 함께 보관된 아들들의 사진을 보는 순간 무너졌다.

"아이고…아까워서 어찌해" 유골이 안치된 보관함의 유리창을 한참을 쓰다듬었던 스베트라나의 통곡은 함께 추모공원을 찾은 가족들의 위로에 가까스로 멈췄다.

스베트라나의 두아들인 세르게이와 드미트리의 첫번째 기일인 이날 모두 17명의 친인척이 추모공원을 찾았다. 가족들은 2~3명씩 나눠서 망자의 유골 앞에서 절을 올렸다. 손을 모으지 않고 벌리고 무릎이 땅에 닿지 않는 식으로 어색하게 절을 하는 가족들도 있었다.

엄마인 스베트라나는 가족 중 가장 마지막으로 아들에게 절을 올렸다. 절이라기보다 털썩 주저앉는 것에 가까웠다. 머리는 대리석 바닥에 닿을 듯했고 보관함을 쓰다듬던 오른손은 계속 떨렸다.

세르게이와 드미트리는 2020년 4월29일 한익스프레스 이천 물류센터 신축 공사현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목숨을 잃었다. 48세, 41세의 나이었다. 스베트라나는 3명의 아들 중 2명을 한날 한시에 한꺼번에 잃었다.

위암 투병을 하는 자신의 병원비를 내며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았던 착한 아들들이었는데 고통 속에 숨이 사그러져 갔을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문자 그대로 까맣게 탔다. 지금도 집안 곳곳에 아들들의 사진을 붙여 놓은 스베트라나는 "눈 뜨고서부터 잠들 때까지 매일 아들들 생각이 난다"라고 말했다.

스베트라나는 카자흐스탄 출신의 고려인이다. 그의 조부모는 일본에 의해 빼앗긴 조국에서 탈출해 연해주에 머물다가 스탈린의 고려인 강제 이주 정책에 의해 카자흐스탄으로 옮겨와 정착하게 됐다. "아무 것도 없는 들판에 버려졌다."

스베트라나가 한마디로 전한 조상들의 기억은 그들의 고단했던 삶을 추정하게 했다. 역경의 삶에서도 자신들의 뿌리를 잃지 않으려 했던 부모들의 노력은 스베트라나가 사용하는 다소 어색한 한국말과 '오씨'라는 그의 성씨로 남았다. 세르게이와 드미트리의 성은 '남씨'다.

100여년 가까이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지를 오가며 살았던 스베트라나의 친척들은 10여년 전부터 국내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돈을 벌기 위해서 선택한 이주였지만 고려인으로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조상들의 나라에서 자리 잡기를 원했다. 국내에서도 인천, 대전, 경주, 천안까지 일자리를 찾아 떠돌아야 했지만 부모들이 그랬던 것처럼 힘들어도 열심히 살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화재는 이 고려인 가정의 가장들을 집어삼켰다.

세르게이와 드미트리를 포함해 1년 전 이 물류창고 신축 공사현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모두 38명이 숨졌다. 사망한 노동자들의 나이부터 근무 연수, 심지어 국적까지 차이가 있었지만 같았던 것은 모두 하청업체의 소속이었다는 것이다.

시공사였던 '주식회사 건우'는 공정 별로 모두 16개 업체에 하청을 줬고 이중 8개의 하청업체에서 사망자가 나왔다.

유명을 달리한 38명의 죽음이 더욱 안타까운 것은 '막을 수 있었던 죽음'이라는 데 있다. 불이 난 공사현장에서는 이미 2019년 11월20일과 2020년 4월9일 화재가 발생해 진압된 전례가 있었다. 시공업체인 건우가 담담한 또 다른 공사현장에서는 그해 4월14일 추락사고가 발생해 노동자 1명이 사망해 회사가 공사중지 명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즉, 안전사고가 계속 발생함에 따라 주의가 필요했던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더불어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발주처인 한익스프레스 측이 건우 측에게 공기를 앞당겨 줄 것을 요구해 공사가 무리하게 진행됐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한익스프레스 측은 인허가 변경 등으로 준공일이 미뤄지자 건우 측에 공기단축을 요구했고, 이에 건우는 여러 공정의 장비와 인력이 집중적으로 투입되는 '돌관공사'를 진행했다. 이런 돌관공사로 유증기를 발생시키는 우레탄 뿜칠 작업과 불똥이 튈 수 있는 용접 작업이 같이 병행됐고 결국 화재가 쉽게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이뿐만 아니라 경비용 설비나 기구가 설치되지 않았고, 화재감시자나 경보장치 등도 배치되지 않았다. 화기 작업 허가서도 작성되지 않은 채 작업이 이뤄졌고 화재를 대비한 대피 훈련도 실시되지 않았으며 대피로 자체도 폐쇄돼 있었다.

이렇게 안전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고 공사를 진행해 화재 피해를 키운 원하청 관계자들은 수사를 통해 재판에 넘겨졌고 지난해 12월 1심 재판에서 일부 유죄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유족들은 이들에게 내려진 형벌이 화재로 인한 피해에 비해 너무 가볍다는 입장이다.

특히 발주처인 한익스프레스의 경우 물류센터 관련 테스크포스팀의 팀장 1명만이 기소됐는데 공기 단축 요구를 통해 사고의 원인을 제공했음에도 '금고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400시간 이수'만을 선고하는 것은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주장이다. 유족들은 "발주처인 한익스프레스 측이 책임을 회피하며 피해자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라며 산재 사고 발생 시 발주처의 처벌을 강화하는 법 제정이 필요했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납골당에서 돌아온 세르게이와 드미트리의 가족들은 천안 동남구에 있는 스베트라나의 자택에 모여 망자들을 위한 제사를 지냈다. 제사상에 올라온 음식들은 한국의 다른 집안과는 조금 달랐다. 젓가락 대신 포크가 고인들이 좋아하는 음식 위에 올려졌고, 제사주로는 청주 대신 보드카가 올랐다. 또다시 가족들은 돌아가면서 절을 하고 제사주를 상에 올렸다.

역시나 스베트라나는 가장 마지막에 꿇어 앉는 듯 하며 절을 했다. 이를 바라보던 스베트라나의 조카는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로 "이게 옳지는 않은 거야. 어머니가 먼저 돌아간 자식한테 절을 하는 것이 이게 참 옳지 않은 거야"라고 서툰 한국말로 말했다.

사고 이후 스베트라나 가족이 사연이 알려지면서 여러 곳에서 지원이 이어졌다.
스베트라나는 "내 생각에는 고려인 이유(같은 민족이라는 이유로) 도움을 주는 것으로 생각하오"라며 많은 곳에서 도움을 준 것에 감사한다고 전했다. 그는 이제 자신의 역할을 아들들이 남기고 간 손주들을 챙기는 것이 자신의 몫이라고 했다.


제사상 앞에선 그는 아들들의 영정을 내려보며 "천국에서 아이들을 잘 돌봐 줘라"라고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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