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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유족에게 받은 메일 [김기자의 토요일]

생명존중문화 확산 에세이 우수작
[기자수첩] 유족에게 받은 메일 [김기자의 토요일]
김성호 사회부 기자.

[파이낸셜뉴스] "안녕하세요, 파이낸셜뉴스 김성호 기자님. 아래 기사의 아들입니다. 본 기사가 나온 이후, 저희 가족은 너무나도 힘든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 기사를 내려주시길 간곡히 요청드리고자 메일 드립니다. 또 기사화될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 무서워 메일을 길게 작성하지는 못하겠습니다. 저희 가족 모두 너무나 큰 심리적 압박 상태로 심신이 미약하게 지친 상태이오니 부디 기사를 내려주시기를 간곡히 청합니다."

메일이 왔다. 기사가 나간 지 1주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발신인은 사망자의 아들이었다.

나간 기사는 간단했다. 200자 원고지 한매를 겨우 넘는 단신 기사였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성추행 의혹' 현직 경찰 간부 자택서 숨져

성추행 의혹으로 고소당한 간부급 경찰관이 숨진 채 발견됐다.

21일 서울 OO경찰서는 이날 오전 5시50분께 서울 OO경찰서 소속 A경감이 OO구 OO동 자택에서 숨을 거둔 채 발견됐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경감은 성추행 의혹으로 고소당한 뒤 최근 OO서에서 대기발령 조치를 받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A경감이 극단적 선택을 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원인을 조사 중에 있다.

예상은 했다. 기사를 쓰고 얼마 지나지 않아 OO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유족이 부담감을 느낀다며 기사를 내려줄 수 있느냔 내용이었다. 기사에 문제가 있느냐 물으니 그건 아니라 했다. 다만 유족이 불편을 호소한다고 했다.

흔한 일은 아니어서 고민이 됐다. 하지만 고치지 않았다. 이유는 이랬다. 피해자 고소가 있었고 경찰에선 대기발령이 이뤄졌단 걸 부인하지 않았다. 의혹이 분명했다. 더구나 경찰의 성범죄 문제가 거듭 벌어지던 시점이었다. 기사엔 반영하지 않았지만 OO대교 자살기도자 수백명을 구한 의인으로 특진까지 한 인물이었다. OO경찰서 A경감이 아닌 다른 누구였대도 고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 됐다고 생각했다.

확신은 없었다, 사람이 죽었고 재판까지 가서 확정판결을 받은 시점도 아니었으므로. 다만 ‘다른 누구였대도 이렇게 보도했을 것’이란 마음이었다. 그래서 기사를 쓰기로 했다.

그렇게 낸 기사가 원고지 한매를 조금 넘는 위 내용이다. 딴엔 자극적인 내용이나 불필요한 정보를 담지 않으려 신경을 썼다. 신원을 특정할 요소도 넣지 않았고 사진도 자극적인 일러스트 대신 경찰 로고를 썼다.

그런데도 메일을 받았다. 적잖은 동료 기자들이 유족 요구에 기사를 내렸다고 했다. 끝까지 내리지 않은 건 잘 한 일일까. 답은 끝내 알 수 없을 것이다. 보도할 가치가 유족의 고통보다 큰지에 대한 논의는 하루 종일 고민해도 결론을 낼 수 없으리라.

고민한 기사였다는 건 다행이다. 고민조차 없이 냈다면 얼마나 당혹스러웠을까. 누군가의 죽음을 그저 일거리로 소모한다는 건 슬픈 일이다. 그런 기자가 되고 싶지는 않다.

죽음에 대한 기사를 쓸 때마다 고민을 한다. 가끔은 죽음 자체를 최소한으로 다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디서 어떻게 왜 죽었는지 따위는 적지 말자고, 언제 누가 무엇을 정도로 기사를 끝내자고 마음먹는다. 그저 확신할 수 있는 정보만 엄격하게 다루면 된다고, 그게 윤리적인 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이 자살에 대해 보도하는 걸 꺼리게 한다.

하지만 과연 옳은가. 죽음은 모두가 거쳐 갈 삶의 일부다. 자살은 그 죽음의 한 방식이다. 기사에서 자살을 지우고 최대한 관련 정보를 적지 않는 게 정답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 더 많은 논의를 더 자유롭게 하는 게 언론이 추구할 방향이기에 더욱 그렇다. 자살이라고 예외가 될 수 있을까. 의도적으로 축소해 보도해서 더 많은 논의가 이뤄질 장을 스스로 닫는 건 아닐까.

논의도 연구도 부족하기만 하다. 어떤 나라는 더 상세한 보도를 하지만 더 적은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그 반대의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어쩌면 언론이 시민의 역량을 무시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죽음과 자살에 대한 더 많은 논의가, 더 적극적인 이야기가, 그로부터 나올 더 많은 비판이 많은 사람을 구할 방법일 수 있다. 자살을 자살이라 부르고, 그에 대한 다양한 평가를 적는 게 도리어 그릇된 호기심을 막는 길일 수도 있다.

결정은 소비자가 한다.
언론 소비자가 더 나은 보도를 선택한다. 덜 쓰라는 권고 앞에 기자들이 헤매도록 놔두는 대신, 더 적극적으로 더 나은 보도를 독려하는 게 바람직한 방향이다.

■이 기사는 생명존중문화 확산 에세이 공모전 우수상 수상작입니다.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