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선전선동부, 적극적인 통제시스템
말, 노래, 영화, 공연, 상징 등 주민들 '머릿속' 장악
김정은 후계부터 현재까지 관련 상징조작 주도
소극적 통제시스템 국가보위성·사회안전성은 주민 감시
리두성 선전선동부장으로 활동 확인
【서울=뉴시스】강영진 박수성 기자 = 북한에서 ‘위민헌신’이라는 새로운 선전 어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재작년 백두산에 오른 모습, 지난해 연설하며 눈물짓는 모습, 당 간부들을 모아놓고 근엄한 표정으로 회의하는 모습 등 최고지도자의 다양한 모습을 공개합니다. 이 모든 일을 전담하는 당 부서가 있는데요, <창 넘어 북한>에서는 조직지도부 못지않게 북한 존속에 큰 역할을 하는 선전선동부를 살펴봤습니다.“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과학입니다.”
한때 어린이들이 이 말을 사실로 믿는다면서 학교 교육에 문제가 생긴다는 지적이 있을 정도로 널리 퍼졌던 광고 카피입니다. 장기간 TV에 되풀이 등장한 이 카피를 패러디하는 조어들도 많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어린이는 물론 우리나라 국민 전체의 머릿속에 인이 박일 정도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겁니다.
안녕하십니까. 뉴시스 북한팀 박수성입니다.
오늘은 북한에서 노동당 선전선동부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소개하려 합니다.
3월 5일 방송에서 극단적 권위주의 체제인 북한을 존속시키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조직지도부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선전선동부는 북한 체제를 유지하는 데 있어 조직지도부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서입니다.
한 국가의 주민 통제시스템은 크게 적극적인 의미의 통제시스템과 소극적인 의미의 통제시스템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적극적인 의미의 통제시스템은 주민들이 생활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을 제시하고 그것을 실천하게 교육하며 평가를 통해 실천을 강제하는데 초점이 있습니다. 이에 비해 소극적인 의미의 통제시스템은 주민들의 일탈을 감시해 처벌하는데 초점이 있습니다.
두 가지 통제시스템은 자유주의 국가든 권위주의 국가든 모두 갖추고 있지만, 자유주의 국가에선 최소한으로 운영되는데 비해 권위주의 국가에선 최대한으로 운영되는 점이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권위주의 국가라도 적극적 통제시스템보다는 소극적 통제시스템이 더 발달돼 있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적극적 의미의 통제시스템을 운영하는 데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면에서 너무나 큰 비용이 들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인류 역사에서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극단적인 권위주의 체제입니다. 최고권력자 한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나머지 주민 전체는 최고권력자에게 목숨 바쳐 충성해야 한다는 유일영도체계가 북한 권위주의 체제의 극단성을 잘 보여줍니다.
북한에서 소극적 통제시스템은 인류 역사상 가장 조밀한 주민 감시망을 운영하는 국가보위성과 우리의 경찰과 동사무소를 합한 역할을 하는 사회안전성이 주로 담당합니다.
북한의 소극적 통제시스템이 다른 권위주의 국가들과 비교할 때 크게 발달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북한 체제의 가장 큰 특징은 적극적 주민 통제시스템이 최대로 발달해 있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동당 조직지도부가 적극적 통제시스템을 담당하는 가장 핵심 조직입니다. 조직지도부는 이른바 당생활 지도를 통해 북한 주민들의 생활 전반을 직접적으로 통제합니다.
조직지도부 다음으로 큰 역할을 하는 적극적 통제시스템이 오늘 말씀드릴 선전선동부입니다.
선전선동부는 말로, 노래로, 영화로, 공연으로, 강연으로, 상징으로, 이른바 '사상사업'을 통해 주민들의 '머릿속'을 장악하는 일을 합니다. 사상사업에서 핵심은 북한 특유의 유일영도체계를 주민들이 내면화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김정은이 권력을 승계한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정적을 제거하는 일이었습니다. 고모부 장성택과 추종세력 수백 명을 처형하고 수천 명에서 수만 명에 달하는 연관 세력을 숙청한 겁니다. 정적 제거에 이어 김정은이 가장 먼저 추진한 일이 바로 '사상사업'의 강화입니다.
김정은은 권력승계 2년 만인 2014년 2월 사상일꾼대회를 열었습니다. 대회 연설에서 김정은은 “가장 용의주도하게, 가장 완벽하게 실현하기 위한 사상체계, 지도체계가 바로 당의 유일적령도체계”라고 강조했습니다.
선전선동부가 일하는 방식을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선전선동부 본부 조직은 비서, 부장 아래에 2명의 제1부부장, 그리고 7~8 명의 부부장들로 구성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상사업 전반을 담당하는 지도과와 담당 업무에 따라 종합과, 교양과, 강연과, 출판과, 방송과, 사적과, 문헌편찬과, 선동과, 정치행사과, 대외선전과, 심의과, 선물과 등 기능이 세분화돼 있습니다.
선동선동부는 또 조직지도부와 마찬가지로 노동당의 각급 당위원회에도 선전부가 있는 등 전국 조직입니다.
선전선동부 선전과가 각급 당위원회의 선전부를 통해 유일영도체계를 내면화하는 '사상사업'을 진행합니다. 강연과는 사상사업의 교재를 만들고 직접 강연을 진행합니다. 그밖에 다른 부서들은 이름만 보고도 무슨 일을 담당하는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습니다.
올 들어 북한에선 ‘위민헌신’이라는 새로운 선전 어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위민헌신(爲民獻身)은 '인민을 위해 몸 바쳐 일한다'는 뜻입니다. 북한에서 한자는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제가 써넣은 겁니다.
연초에 공개된 김정은 기록영화 제목이 “위민헌신의 2020년”이었고, 지난 26일에는 1면 전면으로 '위민헌신의 숭고한 세계'라는 정론 형식의 글이 실렸습니다.
지난해까지 '인민대중제일주의'가 김정은의 트레이드마크였습니다. 인민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모든 일을 한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광고 카피의 약발이 떨어졌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아니면 여덟 글자나 되는 어구로는 '침대는 과학'만큼 촌철살인의 효과를 내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노동신문 1면 전면에서 1만 자가 넘는 글로 구구절절이 강조한 것으로 보아 앞으로 상당 기간 '김정은은 위민헌신'이 북한 선전선동부의 대표적 카피 문구가 될 듯합니다.
이렇듯, 새로운 용어의 등장은 북한 체제 특유의 선전선동 방식이 잘 드러나는 예입니다.
또 다른 사례도 살펴보겠습니다.
김정은은 2019년 가을 백마를 타고 백두산에 올랐습니다. 그 장면이 북한 방송과 신문에 몇 날 며칠 동안 대대적으로 보도된 일을 기억하실 겁니다. 당시 노동신문은 '계시'를 받은 특출한 지도자가 탁월한 예지력을 발휘하여 새로운 국가전략을 구상한 것으로 전했습니다.
또 김정은은 그 뒤에 '백두산 대학'이라는 말을 꺼냈습니다. 김일성이 항일독립투쟁을 했다는 백두산 지역을 한 겨울에 답사하면 선대의 혁명정신을 '확실하게' 배울 수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이때부터 1만 명 가까운 남녀노소가 집단적으로 엄동설한에 백두산에 올라야 했습니다.
지난해 10월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서 김정은이 '인민들을 고생시켜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렸고 올 들어선 당대회, 전원회의, 시군당 책임비서 강연회, 세포비서대회 등 노동당 각급 조직의 대규모 회의를 진행하는 동안에는 진지하고 근엄한 표정을 유지했습니다.
이 모든 상징조작은 김정은이 연초 당대회에서 총비서에 오른 것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습니다. 우리 정보당국은 물론 상당수 북한 전문가들이 앞으로 김정은에 대한 우상숭배가 크게 강화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렇게 보면 위민헌신, 백두산, 눈물, 진지한 표정 모두 우상숭배를 뒷받침하는 핵심 요소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흥미로운 에피소드 한 가지를 소개하겠습니다.
김정일 집권 말기인 2009년 ‘발걸음’이라는 노래가 김정일의 후계자를 칭송하는 곡이라고 알려지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2009년 신년공동사설에 “오늘 우리는 당의 혁명위업 수행에서 중대한 역사적 경계선에 서있다”는 새로운 표현이 사용됐습니다.
태영호 국회의원에 따르면 이때까지만 해도 이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고 합니다.
한 달 뒤 조선중앙TV에서 ‘발걸음’이라는 노래가 방송된 뒤부터 북한의 각급 조직에서 이 노래를 배우는 움직임이 시작됐습니다. 4월 김일성 생일까지 북한에서 이 노래를 부를 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됐지요.
그리곤 김일성 생일 축하 불꽃놀이를 대대적으로 벌였고 노동당 내부에선 “대장동지께서 직접 지도하신 축포야회”라는 점이 공식화되면서 김정은이 후계자로 확정됐음을 알렸다는 겁니다.
다음 해인 2010년 1월 8일 김정은 생일에 맞춰 노동신문에 “향도의 당을 위해”라는 제목의 정론이 실렸습니다. 김정은이 후계자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암시하는 내용이었고 이 글을 쓴 동태관 논설위원은 뒤에 '김정일 훈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한 북한 고위 탈북민은 “대다수 주민들은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하는 등 철저한 정보 통제 속에 있기 때문에 최고지도자에 대한 상징조작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북한 노동당 선전선동부는 북한 주민들의 사고와 신념을 조작합니다. 이를 통해 체제 유지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겁니다.
사족입니다.
북한은 1월 박태성을 선전선동비서 겸 부장으로 임명한 것으로 노동신문이 보도했었는데, 지난 12일 리두성이 선전선동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게 새롭게 확인됐습니다.
노동신문의 1월 보도가 잘못된 것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당시 이미 박태성은 비서로, 리두성이 부장으로 임명됐는데 리두성 이름을 빠트렸다는 겁니다.
노동신문이 오보한 건지 아니면 선전선동부장으로 리두성 이름을 알리지 못할 사정이 있었는지는 당장은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아무튼 두 사람 모두 김정은 시대에 새로 발탁된 사람들입니다만 박태성은 주로 조직지도부에서 잔뼈가 굵었고 리두성은 조직지도부와 선전선동부 경험이 모두 많다고 합니다.
선전선동부와 조직지도부 사이에 인적 교류가 활발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선전선동부가 조직지도부 못지않게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창 넘어 북한>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yjkang1@newsis.com, pzcmaria@newsis.com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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