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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팬 톡] 삼성의 소니 대역전극, 그 후

조은효 도쿄특파원
[재팬 톡] 삼성의 소니 대역전극, 그 후
"어떻게 필름을 갈지 않고도 계속 사진을 찍을 수 있어?" 2000년 여름 도쿄, 일본 친구들이 갖고 있던 디지털카메라는 마치 화수분 같았다. '필름 없는 카메라'를 향해 나는 신기함을 넘어 당혹감을 느꼈다. 그로부터 약 1년반에서 2년 후 내게도, 또 내 친구들 손에도 300만화소, 500만화소 디카가 들어왔다. 뒤처짐이 극복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은 셈이다. 2000년대 초반의 이 1년반은 첫 추월을 향한 마지막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삼성전자의 '소니 추격전'이 9분 능선을 넘고 있을 때였다.

일본에서는 한때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삼성에 100개를 주문하면 110개가 온다. 왜냐고 물으면 불량 때문이다." 삼성이 안중에도 없던 소니를 향해, 삼성전자 경영진은 매해 주문을 외듯 맹렬히 소니를 추격했다. "삼성, 5년 내에 소니 추월"(2001년), "삼성, 4년 내 소니 추월"(2002년), "삼성, 3년 내 소니 추월"(2003년).

일본 경제침체기 일자리를 잃은 일본 기술자들을 영입하거나, 주말에 한국으로 데려가 과외수업을 하게 한 뒤 일요일에 돌려보내는 일도 허다했다고 한다. 인재 확보전의 중심엔 고 이건희 회장이 있었다. 도쿄 가스미가세키 빌딩 내 일본삼성 사무실은 이건희 회장의 숙소나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2002년 소니 임원의 보수가 삼성전자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하나의 신호탄이었다. 그해, 마침내 삼성이 시가총액에서 소니를 앞질렀고, 2006년 전 세계 TV시장에서 삼성이 소니를 꺾고 세계 1위에 올랐다. '5년 내 추월' 목표가 정확히 명중한 것이다. 대역전극이었다. "삼성, 대단하네." 2006년 겨울 다시 찾은 도쿄, 사회인이 된 일본인 친구는 만나자마자 엄지손을 치켜세웠다.

일본의 '모노즈쿠리'(제조업)의 자존심인 소니가 삼성에 역전패를 당했다는 사실에 당시 일본의 충격은 대단했다.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던 이데이 노부유키 당시 소니 회장이 급기야 이 회장 측에 "삼성과 소니를 견줘 비교하지 말아달라"고 요청까지 했다.

그 후로 삼성전자와 소니는 다른 길을 걸었다. 소니는 가전을 잃고 10년간 방황을 지속했다. 반도체와 스마트폰을 앞세운 삼성은 파죽지세로 시총에서 이미 일본 1위 도요타를 크게 앞질렀다. 그래서일까, 최근 한국 내에서 일본을 가리켜 '도장과 팩스의 나라'라며 "이제는 한국이 일본경제를 역전할 수 있다"고들 자신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일본경제 추격전인 셈이다. 그러나 이번 추격전은 더욱 거칠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기업들이 반격에 나섰기 때문이다. 히타치와 파나소닉 등은 조단위로 미국, 영국의 IT기업들을 속속 사들이고 있다. '그랬던' 소니도 최근 '다른' 소니로 화려하게 부활에 성공했다. 올 초 요시다 겐이치로 소니 회장은 "창조적인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발돋움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넷플릭스, 페이스북 등 '아메리칸 사업모델 스타일'로 변신하겠다는 것이다.

고 이건희 회장은 10년 전 이런 말을 했다. "지금 삼성을 대표하는 대부분의 사업과 제품은 10년 안에 사라지고, 새 사업과 제품이 자리잡아야 한다.
" 10년 전 발언이나, 향후 10년간 한국경제에 공히 적용되는 판단일 성싶다. 머뭇댈 시간이 없다. 이미 4차 산업혁명을 향한 대전환기는 시작됐고, 일본 기업들은 달리기 시작했다.

ehcho@fnnews.com 조은효 도쿄특파원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