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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백신외교 물꼬 터준 WHO, 중국산 '명분'까지 장착하나[차이나리포트]

정지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5.10 14:59

수정 2021.05.10 14:59

- WHO 긴급 사용 승인으로 걸림돌이던 신뢰도 문제 해결
- 화이자 연간 10억회분 생산 합작회사 중국에 설립
- 中 부족량·자국민 접종은 걸림돌
지난 4월 14일 중국 베이징의 자금성 주변에서 전통 의상을 입은 주민들이 무료로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제공하는 버스 앞을 지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4월 14일 중국 베이징의 자금성 주변에서 전통 의상을 입은 주민들이 무료로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제공하는 버스 앞을 지나고 있다. /사진=뉴시스

【베이징=정지우 특파원】세계보건기구(WHO)가 일부 중국산 백신 사용을 승인하면서 중국 정부의 ‘백신외교’가 국제사회에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WHO의 승인은 효과나 부작용 측면에서도 국제적인 인정을 받았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에 신뢰도 문제에 발목이 잡혀있던 중국산 백신 입장에선 돌파구를 찾은 셈이 된다.

다만 중국 내에도 백신 부족 현상을 겪고 있으며 자국민조차 백신 접종을 꺼리는 사례가 아직 존재한다는 점은 걸림돌이다.

■WHO 승인으로 신뢰도 문제 해결
10일 관영 신화통신과 중국중앙방송(CCTV) 등 중국 매체들은 WHO의 백신 승인 이후 지속적으로 자국 백신의 WHO 승인을 홍보하는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CCTV는 서방 외신을 인용, “중국은 최대 백신 수출국일 뿐만 아니라 많은 국가에서 중국 백신이 유일한 선택이 됐다”고 보도했다. 신화통신은 “글로벌 백신 부족을 해소하고 백신 접근 가능성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중국은 백신이 전 세계 공공재라는 것을 견지하면서 실제 행동으로 개도국이 접근성과 비용 감당 능력을 확보하도록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이 이같이 대대적 홍보전에 나선 것은 저소득국가 중심으로 한정돼 있던 중국산 백신 외교의 물꼬를 WHO가 사실상 터줬기 때문이다.

중국은 그 동안 자국산 백신을 세계 공공재라고 칭하며 각국에 무료 혹은 저가 공급 의지를 수차례 밝혔다. 하지만 정작 백신이 필요한 국가들은 중국산 백신의 효과가 화이자 등 서구권의 백신에 비해 효능이 떨어지고 데이터도 공개되지 않았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신뢰가 부족하다는 취지다.

그러나 WHO가 중국 제약사 시노팜 백신을 승인했기 때문에 향후 백신 공동 구매·배분을 위한 국제 프로젝트인 ‘코백스 퍼실리티’를 통해 세계로 공급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아울러 WHO 승인을 명분으로 타국에게 자국 백신을 접종한 이들의 입국을 허가하는 ‘백신여권’이나 춘먀오(중국의 해외동포 백신 접종계획)를 요구할 가능성도 커졌다.

신화통신은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대학교 콘스탄티누스 교수의 말을 빌려 “WHO 승인은 시노팜 백신의 안전성과 효능, 품질에 대한 인정”이라면서 “‘중국 백신을 전세계 공공재로 만들 것’이라는 중국 지도자의 약속처럼 개발도상국에 중국의 기여도를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중국은 한국과 외교장관 양자회담에서도 백신협력을 강조했었다. 중국 외교부는 지난달 초 푸젠성 샤먼에서 양자회담 후 결과 발표를 통해 “양국은 건강코드 상호인증을 위한 공조를 강화하고 백신 협력을 전개하며 신속통로(패스트트랙) 적용 범위를 확대하기로 했다”면서 “한국이 춘먀오를 지지했다”고 전했다. 한국의 발표에는 없던 내용이다.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를 보면 시진핑 국가주석을 비롯한 고위급들도 연일 백신 외교를 펼치고 있다. 시 주석은 지난 7일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과 통화에서 “중국은 IOC와 백신협력을 강화하고 선수들을 보호해 안전하게 경기에 참가하는 효과적인 장벽을 구축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같은 날 콩고 대통령과 시에라리온 대통령, 지난 6일에는 투르크메니스탄과 쿠바 정상 등에게도 일대일로(육·해상 신실크로드) 공동 건설과 함께 백신을 지원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중국이 다른 국가와 외교회담에서 대부분 포함시키는 사안은 시 주석의 핵심 정책인 일대일로다.

중국 노동절 연휴 기간(1~5일) 주요 관광지에 소비자들이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룬 모습. 차이신 캡쳐
중국 노동절 연휴 기간(1~5일) 주요 관광지에 소비자들이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룬 모습. 차이신 캡쳐

■中 부족량·자국민 접종은 걸림돌
다만 중국 내 자체 접종 프로그램이 시작된 뒤 수출할 만큼 백신 생산량이 충분한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중국은 올해 말까지 50억도스(1도스는 1회 접종분)의 백신을 생산할 수 있다고 하지만 중국 관료들은 자국민 접종을 접종하기에도 충분하지 않다고 토로하고 있다.

중국의 푸싱 의약그룹은 독일 생명공학회사인 바이오엔테크와 백신 생산을 위한 합작회사를 설립, 중국 내 유통을 추진한다. 바이오엔테크는 미국 제약회사 화이자와 메신저 리보핵산 코로나19 백신을 공동 개발했고 핵심 기술을 보유 중이다.

이 회사가 생산한 백신이 중국 내 유통에 들어가면 외국 기술을 사용한 백신의 첫 승인 사례가 된다. 생산 목표치는 연간 10억회분이다. 합작회사 설립이 중국 내 백신 부족을 충당하기 위해서인지, 수출을 위해서인지, 중국산 백신을 세계 공급하기 위한 상호주의 원칙을 고려해서 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중국 내 백신접종도 정부의 기대만큼의 호응은 얻지 못하고 있다. 중국은 올해 1분기까지 백신 접종 횟수가 1억회에 그치자,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기업들에겐 압박을 가하면서 백신 접종률을 높이고 있다.
이 덕분에 지난 7일 현재 본토에서 3억82만회분 이상 백신 접종에 성공했다. 목표는 내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올해 말까지 14억 인구의 70∼80%에게 백신을 맞히는 것이다.


신화통신은 “시노팜 외에 중국 시노백 백신도 이미 WHO 긴급사용 승인 여부 검토의 마지막 단계에 들어갔다”고 덧붙였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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