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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구순의 느린걸음] 생태계 무시하는 넷플릭스 '공짜 망' 요구

이구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5.11 15:25

수정 2021.05.11 15:25

[파이낸셜뉴스] 세계에서 장사가 제일 잘 된다는 A백화점이 "백화점의 역할은 좋은 물건 조달해 소비자가 결제하도록 하는 것 까지이니, 우리는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를 낼 수 없다"고 선언한다. 선언이 안 먹히자 B신용카드 회사를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했다. 좋은 상품 갖춰 놓은 백화점 덕에 신용카드 회사의 매출이 늘었고, 딱히 백화점 영업에 도움 주는 것도 없는 B사에 수수료를 낼 수 없다는 논리다. B회사는 사용자들에게 연회비를 받고 있는데, 백화점에 가맹점 수수료까지 받는 것은 이중으로 돈을 떼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신용카드 회사는 뜨악한다. 신용카드 회사가 없었으면 소비자들이 백화점에 수백만원씩 현금을 싸들고 가 물건을 사야하는데, 이 불편을 줄이기 위해 기껏 신용결제 인프라를 갖춰 놨더니 이제와서 인프라 투자는 알 바 아니라는 백화점 논리가 부당하다고 한다.
결제가 신속히 진행되도록 기술 개발과 인프라 구축이 백화점 영업에 도움이 안된다는 주장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다. 다른 신용카드 회사들에는 수수료를 내면서 B회사에만 가맹점 수수료를 못 내겠다고 우기는 것도 시장 질서를 무시하는 것이라고 맞선다.

다른 백화점들도 난리다. 그간 신용카드 회사가 신속한 결제 인프라를 깔아줘서 결제에 들이는 비용은 걱정하지 않고 영업했는데 A 백화점이 갑자기 그간의 질서를 깨겠다고 나선 것이 마뜩찮다. 소송이 백화점 사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상할 수 없어 좌불안석이다.

이런 일이 OTT 시장에서 벌어졌다. 세계 최대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 넷플릭스가 국내 통신회사를 상대로 통신망 사용료를 낼 수 없다고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무려 1년이나 법정 공방을 벌인 끝에 다음달 법원 판결 날짜가 잡혔다.

[이구순의 느린걸음] 생태계 무시하는 넷플릭스 '공짜 망' 요구
넷플릭스는 한국 통신망에 접속하지 않고, 콘텐츠를 전송만 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 통신사업자에게 지불할 비용이 없다고 법정에서 주장했다고 한다.

접속과 전송이라는 복잡한 기술적 구분까지 들이대 법정에서 승산을 높이겠다는 것인가 싶어 보는 사람으로 불편하다. 복잡한 기술적 원리 보다 한 발 앞선 것이 시장의 기본 질서가 아닌가 싶어서다.

세계적으로 인터넷 시장을 지탱하는 질서가 양면시장의 질서다. 인터넷 시장은 사용자가 매월 내는 사용료와 콘텐츠 사업자가 대량의 통신망 사용에 대한 비용을 양면에서 지불하는 것으로 통신망을 안정적으로 운용하고, 업그레이드 한다. 안정적인 통신망 위에서 콘텐츠 회사도 사용자도 '정보의 바다'를 즐길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인터넷 생태계가 활발하게 돌아가도록 하는 기본 질서다. 어느 날 돌연 질서를 지킬 수 없다고 나서는 독불장군이 나타나면 생태계 전체가 혼란스러워지고, 한쪽에서는 피해자가 생길 수 밖에 없다.
인터넷 생태계에서 가장 큰 혜택을 입으며 성공한 기업 넷플릭스가 인터넷 생태계의 질서를 파괴하는 독불장군을 자처하지 않았으면 한다.

cafe9@fnnews.com 이구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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