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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도시재개발과 도시재생의 줄다리기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5.13 18:01

수정 2021.05.13 18:01

[서초포럼] 도시재개발과 도시재생의 줄다리기
모든 생명체는 탄생과 성장, 그리고 성숙의 시기를 거쳐 죽음을 맞이한다. 도시도 탄생과 성장, 성숙과 쇠퇴의 사이클에서 예외가 아니다. 우리 몸이 고장 나면 병원을 찾아 치료하듯이 도시도 재개발과 재생을 통해서 고장 난 부분을 고치면서 생명을 유지한다. 도시재개발이 외과적 수술을 통해서 도시의 건강을 회복하는 것이라면 도시재생은 체질 개선을 통해서 건강을 회복하는 쪽이다. 노후주거지 주민들은 재개발로 갈 것인지 재생으로 갈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재개발을 하면 부동산의 가치가 크게 올라가지만, 기존의 주거환경과 공동체는 대부분 파괴된다.
재생을 하면 자산가치는 상대적으로 크게 오르지 않지만, 마을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공동체를 보존할 수 있다.

지난 4·7 재보궐선거로 시장이 바뀐 서울시에서는 도시정책의 큰 변화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부동산 민심을 반영하여 신규주택 공급 물량을 대폭 확대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전임시장의 역점사업인 도시재생사업을 담당했던 도시재생실과 지역발전본부를 균형발전본부로 통폐합하고, 주택공급을 담당하는 주택건축본부를 주택정책실로 격상시키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과거 재개발·재건축 시대에서 도시재생의 시대로 바뀌는가 싶더니 다시 재개발·재건축으로 무게중심이 옮겨지고 있다. 과연 재개발과 재생은 양자택일해야 하는 선택지로만 존재하는 것일까? 주민들의 입장에서 돈 안되는 도시재생보다 돈 되는 재개발의 유혹을 떨쳐버리기가 만만치 않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재개발계획이 확정된 서울 노원구의 백사마을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1960년대 말 서울의 도심개발로 청계천과 영등포 등지에서 강제 철거당한 이주민들이 정착한 백사마을은 그린벨트로 묶여 개발이 어려웠던 곳이다. 2008년 그린벨트에서 해제되고 이듬해인 2009년에 주택재개발 정비구역으로 지정되어 주민들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사업시행자로 재개발사업을 추진했다. 보통 그린벨트 해제지역은 과도한 개발을 억제하기 위해서 저층 위주의 1종 일반주거지역으로 지정하는데 백사마을은 임대주택을 일정 비율 확보하는 조건으로 2종 일반주거지역으로 상향시켰다. 재개발사업의 폐단을 극복하고자 전체 부지의 22.6%를 저층 주거지 보전구역으로 지정하여 일반적인 전면철거 재개발과 달리 보존형 개발 방식이 채택되었다. LH가 사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사업시행자 자격을 포기했지만 서울도시주택공사(SH)가 새 사업자로 선정되어 2025년 완공을 목표로 순항 중이다.

백사마을의 주거지 보전 마스터플랜은 2013년부터 10명의 건축가가 참여하여 8년간 고심에 고심을 거듭해 만들어졌다. 그들은 우선 무엇을 보존해야 하는가를 고민했다. 초기 정착 시절 상부상조하며 정부가 나눠준 시멘트 블록으로 집을 지은 이 마을은 집이 좁아 골목이 거실이자 부엌이며 놀이터이자 커피숍의 역할을 했다. 이런 공동체 삶이 녹아 있는 공간을 존중하고 현대식으로 재구성하는 것이 이 작업의 핵심이다.
과거의 골목길과 기존 지형을 일부 보전하여 자연경관을 살리면서 아파트와 일반주택을 적절히 혼합 배치하고, 마을식당과 공방 등 공동이용시설을 통해서 공동체 활성화를 도모하는 사상 초유의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백사마을은 도시재개발에 도시재생을 가미한 절묘한 방식이 최초로 적용되는 지구이다.
줏대 없는 이상과 현실의 타협이라고 비난받을 수는 있겠지만, 지금까지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개발과 보존의 조화를 위한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백사마을에 거는 기대가 크다.

류중석 중앙대 사회기반시스템공학부 도시시스템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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