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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시선] 심판이 사라진 금융권

[강남시선] 심판이 사라진 금융권
1년 이상 지속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일상이 우울하다. 그나마 위안거리는 프로야구다. 잠시나마 프로야구를 시청하면 일상을 잊게 된다. 요즘 프로야구에는 과거와 다른 게 하나 있다. 비디오판정이다. 세이프-아웃, 홈런-파울 등 판정에 비디오가 활용된다. 심판의 판정이 번복되는 일도 왕왕 있다. 공정성 측면에서 나쁘지 않다. 경기가 늘어지는 건 흠이다. 경기에서 비디오판정은 매년 확대되는 추세다. 장기적으론 야구경기 중 스트라이크-볼 판정에 인공지능(AI) 로봇까지 도입할 계획이다.

그러나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일단 심판이 AI로봇이나 비디오라는 '외적 감시자'의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AI로봇의 판정기준에 맞춰 소극적인 판정을 할 게 뻔하다. 만일 판정이 번복되면 심판의 권위는 떨어질 수 있다. 경기 현장에선 AI로봇이 아닌 인간 심판만이 할 수 있는 판정이 있는 것도 간과해선 안된다. 경기 현장은 전적으로 심판에게 맡겨야 하는 이유다.

요즘 금융권 사정도 프로야구와 다르지 않다. 금융시장 중심에서 '심판' 역할을 해야 할 금융위의 존재감이 점점 사라지고 있어서다. 물론 금융위가 심판 역할을 하기 어렵게 만든 원인은 정치권이 제공했다. 여권은 4·7 재보궐선거 참패 이후 포퓰리즘식 법안이나 방안들을 마구 쏟아내고 있다. 금융 현장과 괴리가 있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실제로 지난 4월 이후 여권은 은행 빚 탕감, 신용불량자 사면, 소외계층에 저리 장기대출, 청년층 주택담보인정비율(LTV) 90% 상향 등을 쏟아내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법안이 '은행 빚 탕감법(은행법 개정안)'이다.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사람들에게 대출을 감면해주는 게 골자다. 그 재원은 어떻게 충당할지 의문이다. '경제 대화해'란 이름의 제안도 마찬가지다. 이는 신용불량자의 신용점수를 회복시켜주자는 내용이다. 의도는 이해하지만, 차주의 도덕적 해이와 형평성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이를 지켜보는 금융사들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당혹스럽기만 하다. 여권이 여과 없이 쏟아내는 포퓰리즘적 방안들이 금융위의 정책과 상당부분 상충되기 때문이다.

일련의 금융권 상황은 미국 영화 '룰스 오브 인게이지먼트(교전수칙)'를 떠올리게 한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예멘의 미국대사관 보호에 나선 해병들이 민간인 시위대 속에 숨은 무장세력으로부터 총격을 받는다. 그러나 미 해병대는 '민간인을 숨지게 해서는 안된다'는 교전수칙을 어길 수 없어 대응사격을 망설인다. 현장 해병대 지휘관은 고민 끝에 대응사격을 결정한다. 그 후 해병대 지휘관은 '교전수칙' 위반으로 재판에 회부되지만 무죄 판결을 받는다. 변화무쌍한 현장에서는 교전수칙보다 현장 지휘관의 판단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금융정책도 마찬가지다. 금융을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기 위해 현장과 괴리가 있는 '교전수칙'을 마음대로 양산해선 안된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국가적 위기상황인 점을 감안, 금융위가 현장 상황에 맞게 금융정책을 유연하게 펼 수 있도록 권한과 재량을 보장해줘야 한다. 금융위도 스스로 제 역할을 찾기 위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래야 한국 경제의 심장인 금융시장의 안정과 발전이 보장된다.

hwyang@fnnews.com 양형욱 금융부장·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