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검찰·법원

[사건의재구성]"아내가 자해후 잠적"…블박 지우고 긴 시간 수상한 세차

뉴스1

입력 2021.05.17 06:02

수정 2021.05.17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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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6/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2020.12.6/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서울=뉴스1) 온다예 기자 = 지난해 7월7일 인천 강화군 한 야산에서 일부 백골화가 진행된 40대 여성의 시신이 발견됐다. '피해여성과 일주일간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지인의 실종신고가 경찰에 들어온 지 이틀 만이었다.

경찰은 피해여성의 남편 A씨(51)를 용의자로 지목한 뒤 긴급체포했다. A씨는 '피해자의 목을 발로 밟아 살해했다'며 자백진술했으나 법정에선 '살인하지 않았고 시신을 버린 사실도 없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수사기관은 휴대전화 위치기록과 차량 블랙박스 영상, 관내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 영상을 통해 A씨의 동선을 확인하고 A씨가 지난해 6월27일 아내 B씨를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했다고 봤다.

◇ 1시간 넘게 세차하고 블랙박스 영상 삭제 '수상한 행적'

A씨는 1심 재판 과정에서 '아내가 자해하다가 갑자기 차에서 내려 사라졌다'며 살인·사체은닉 혐의를 부인했다.


공소사실을 직접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목격자 진술이나 범행 장면이 촬영된 CCTV 영상은 없었지만 법원은 '간접증거'만으로도 혐의가 충분히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사건 전후로 A씨가 보인 의심스러운 행적에 주목했다.

사건 당일 A씨와 B씨가 탄 자동차는 인천 강화군의 한 시장을 방문한 뒤 식당 주차장을 거쳐 인근을 수시간 동안 배회했다. A씨가 몰던 차는 다음날 새벽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당일 A씨는 셀프세차장에서 차를 1시간 넘도록 세차하고 전날 찍힌 블랙박스 영상 일부를 삭제했다. A씨는 사건 당일 B씨가 들고다녔던 핸드백을 버리고 B씨의 휴대전화와 지갑 또한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버린 것으로 조사됐다.

차량 내부와 사건 당일 A씨가 신었던 신발에선 B씨의 혈흔이 나왔고 B씨가 사건 당일 소지한 신발과 양산은 각각 집과 차 안에서 발견됐다.

이 사건 1심을 맡은 인천지법 형사합의12부는 "피해자가 사라진 뒤 1주일이 넘도록 실종신고를 하지 않고 주변인에게 행적을 묻지도 않았다"며 "갑자기 사라진 아내를 찾거나 기다리는 남편의 모습이 아니며 피해자의 흔적을 없애려는 등 범행을 저지른 자에게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행동 패턴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 A씨 "아내 자해한 뒤 사라져"…법원 "법정진술 신빙성 없어"

'아내가 자해를 한 뒤 사라졌다'는 A씨의 법정진술을 반박할 만한 객관적인 증거도 있었다. B씨에게는 평소 우울증 등 정신과 치료를 받거나 자해를 해 치료를 받았다는 기록이 없었고 B씨의 지인들도 'B씨가 평소 밝고 활달했다'고 진술했다.

전문부검의 또한 '피해자가 스스로 승용차 유리창 등에 머리를 들이받아 사망에 이르렀다고 볼 수 없다'는 소견을 밝혔다.

A씨는 B씨가 식당 주차장에서 자해하다가 갑자기 차에서 내려 사라졌다고 주장했는데, 식당 주변 CCTV 영상에도 B씨가 차에서 내리는 모습이 확인되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B씨의 목에선 골절상이 발견됐는데 "피고인의 진술대로 피해자의 목을 밟았다면 강한 외력이 작용해 골절이 발생했을 수 있다"는 부검소견이 나왔다.

1심은 "만약 피해자가 자해 충격으로 사망했다면 같이 있던 피고인이 119신고나 심폐소생술을 해야 하는데 전형적인 구호조치를 취하지 않고 오히려 휴대전화와 지갑을 버리고 세차를 하며 피해자 흔적을 없애려 했다"며 "피해자가 자해하다 사망에 이르렀을 가능성은 없다"고 밝혔다.

사체은닉 혐의에 대해선 "피고인이 처음 사체유기 장소로 자백했던 장소와 실제 시신이 발견된 곳과 정확히 일치된다"며 "공소사실을 부인하는 법정 진술은 객관적인 증거에 의해 인정되는 사실과 모순돼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 살인·사체은닉 혐의 '유죄'…1·2심 징역 20년 선고

1심은 A씨가 B씨와 평소 자주 다투며 폭력성향을 드러냈고 피해자에게 애정욕구와 비난적인 태도를 반복적으로 보이며 불안한 심리상태를 나타냈다고 설명했다.

이전에도 B씨를 폭행해 경찰조사를 받은 전력이 있는 A씨는 사건 당일 B씨와 다투다가 순간적인 분노를 다스리지 못해 범행에 이른 것으로 조사됐다.

1심은 A씨의 의심스러운 행적과 진술의 신빙성 여부, 심리상태를 살펴봤을 때 "공소사실은 유죄로 인정할 수 있다"며 A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A씨와 검찰은 항소했지만 2심의 판단도 다르지 않았다.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11-1부는 "원심 양형은 중요 사항을 빠짐없이 고려해 적정하게 결정됐다"며 원심과 같은 징역 20년을 내렸다.

2심은 "죄질이 매우 불량하고 비난 가능성도 크지만 피고인은 범행을 참회하기는커녕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으로 줄곧 부인하고 있다"며 "피해자 유족에게서 용서받지도 못했고 피해회복을 위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고 질타했다.


A씨는 2심에서 'B씨가 뒷좌석 유리창 등에 부딪치는 자해를 했는데 어느 순간 사망했다'고 또 진술을 바꿨으나 2심 또한 A씨의 법정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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