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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매중단된 펀드투자액 선지급하는 은행 ... "고객 피해 최소화" vs "투자자 책임 원칙 훼손"

이용안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5.19 14:28

수정 2021.05.19 14:28

투지 관련 이미지. 사진=뉴스1
투지 관련 이미지. 사진=뉴스1

[파이낸셜뉴스] 사모펀드 사태 이후 은행들이 손실이 확정되지 않은 펀드의 투자원금 일부를 고객에게 돌려주는 것을 두고 금융업계 내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은행들은 이 같은 선택에 대해 고객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명분을 내건 가운데, 일각에서는 은행들이 CEO 징계 수위를 낮추기 위해 무리하게 투자원금을 지급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또 은행의 투자원금 일부 선지급이 '투자자 책임 원칙'을 훼손하는 선례로 남을 수 있다는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은행 “고객 피해 최소화 위해 투자원금 일부 선지급”
19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하나은행은 지난 13일 이사회를 열고 최근 환매중단된 △영국 루프탑 펀드(판매액 258억원) △영국 신재생에너지 펀드(판매액 535억원) △영국 부가가치세 펀드(판매액 570억원) 등 세 가지 펀드에 대해 투자원금의 50%에 해당하는 가지급금을 투자자에게 우선 지급한다고 밝혔다. 하나은행은 자산실사 결과 투자금 회수 시 펀드 원금 손실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 이러한 가지급금 선지급 결정을 내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은행업계에서는 이 같은 투자원금 일부 선지급이 고객 피해 최소화를 위해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주장한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손실이 확정되지 않았는데도 투자원금 일부를 투자자에게 돌려준 이유는 손실이 확실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라며 “일반투자자들이 피해를 보상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법적 비용도 많이 들기에 고객 보호를 위해 투자원금 일부 선지급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투자자들 가운데는 본인의 생활자금을 끌어온 이들도 있어, 하루 빨리 투자원금 일부를 지급하는 게 이들을 돕는 길”이라고 덧붙였다.

■“은행들, 기관·CEO 징계 수위 낮추려 선지급 결정”
반면 금융업계에서는 은행들의 이 같은 결정이 사모펀드 관련 제재심을 앞두고 기관과 CEO의 처벌 수위를 낮추기 위함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제재심을 통해 임원이 중징계에 해당하는 제재를 받을 경우 연임을 포함해 3~5년간 금융권 취업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또 기관의 경우도 제재 수위에 따라 일부 신사업 진출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

실제로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의 경우 제재심 즈음에 금감원의 분쟁조정위원회가 열렸는데, 투자원금 일부 선지급 등 피해 구제 노력을 인정받아 제재 수위가 사전통보 받았을 때보다 감경됐다. 하나은행 역시 올 2·4분기 내 라임펀드, 독일헤리티지펀드와 디스커버리펀드,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 판매 관련 제재심 일정이 잡혀있다.

■“투자자 책임 원칙 훼손 선례로 남을 수 있어”
일각에서는 은행의 이 같은 결정이 투자자 책임 원칙을 훼손하는 선례로 남을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금융투자 상품은 기본적으로 투자자가 손실 위험을 알고 투자를 하는 게 원칙”이라며 “손실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은행이 이처럼 투자원금을 먼저 보상해버리면, 투자자 입장에서는 투자 상품도 손실을 거의 안 볼 수 있다는 인식이 박힐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은행들의 이 같은 결정으로 책임을 덜 져도 된다는 인식이 깔린 특정 금융상품으로 쏠림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며 “금융회사의 건전성도 악화할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king@fnnews.com 이용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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