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의 특급논설] 최저임금 싸움 지긋지긋하다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5.23 17:45

수정 2021.05.23 17:52

지난 18일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 앞에서 열린 '공익위원 유임 규탄! 최저임금 대폭 인상!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최저임금 인상을 촉구하고 있다. 올해는 문재인정부 마지막 해라 노사 대립이 극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사진=뉴시스
지난 18일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 앞에서 열린 '공익위원 유임 규탄! 최저임금 대폭 인상!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최저임금 인상을 촉구하고 있다. 올해는 문재인정부 마지막 해라 노사 대립이 극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사진=뉴시스


해마다 연례행사 되풀이
올해는 文정부 마지막해
충돌은 불을 보듯 뻔해

현 체계에선 갈등 불가피
개편안 20대 국회서 폐기
국회가 해결사로 나서길

[파이낸셜뉴스] 최저임금이 벌써부터 말썽이다. 지긋지긋하다.
최저임금위원회는 매년 7월 중순 이듬해 인상률을 정한다. 이번에도 또 한바탕 홍역을 치를 것 같다. 올해는 문재인정부 마지막 해라 노사 모두 단단히 벼른다. 강성 민주노총은 벌써 회의 불참이다. 최저임금 때문에 우리가 치르는 대가가 너무 크다. 사회 연대를 돈독히 하기는커녕 되레 화합을 해친다. 이 수렁에서 벗어날 방도는 없을까.

◇최저임금 어디까지 왔나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내 최저임금 1만원을 공약했다. 공약 완수를 위해 2017~2018년 내리 큰 폭으로 올렸다. 취임 1년차에 16.4%(1060원), 2년차에 10.9%(820원). 그러자 시장에서 난리가 났다. 자영업자들은 못 살겠다고 아우성을 쳤다. 결국 취임 3년차에 후퇴했다. 인상률 2.87%(240원). 4년차엔 더 낮은 1.5%(130원)로 속도조절됐다. 1.5%는 역대 최저 인상률이다.

박근혜정부에서 최저임금은 연 평균 7.4% 올랐다. 문 정부 4년 간 평균 인상률은 7.7%로 막상막하다. 이럴 거면 왜 그런 법석을 떨었는지 허탈하다. 올해가 관건이다. 전임 박 정부에 뒤지지 않으려면 적어도 6.3%는 올라야 한다. 1만원 공약을 이행하려면 두자릿수(14.7%)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사용자 단체는 동결을 주장한다. 코로나 위기 속에 노·사 전운이 감돈다.

◇왜 이렇게 맨날 싸워야 하나

최저임금법은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해 1988년에 시행됐다. 올해로 33년째다. 고장이 날 때도 됐다. 고용노동부는 "이제까지 최저임금을 결정한 32회 중 표결 없이 노·사·공익 합의에 의해 결정된 경우는 7회에 불과했고, 표결한 25회 중에서도 노사 모두 참석한 경우는 8회에 불과했다"(보도자료 19.1.7)고 말했다.

정부와 최저임금위가 마냥 손을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문 정부 첫 해인 2017년 최저임금위는 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를 가동했다. 전문가 18명이 권고안을 작성했다. 2019년 2월 고용부는 권고안 등을 토대로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안을 내놨다. 핵심은 두 가지다. 위원회를 구간설정위원회와 결정위원회로 이원화하고, 공익위원 추천권을 정부 독점에서 정부와 국회 공유로 바꾼다는 내용이다.

현재 최저임금위는 공익·근로자·사용자위원이 각 9명씩 모두 27명으로 구성된다. 근로자위원은 민노총과 한국노총 몫이다. 사용자위원은 경총, 중기중앙회, 소상공인연합회 등 사용자단체 몫이다. 근로자위원과 사용자위원은 늘 으르렁댄다. 자기 편을 대변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

노사가 덜 싸우라고 짜낸 아이디어가 구간설정위원회다. 구간설정위는 전문가 9명으로 구성한다. 여기서 공정하고 객관적인 지표를 고려해 1차로 최저임금 상·하한선을 정한다. 이어 결정위원회가 바통을 받아 최종 인상률을 확정한다. 결정위원회는 노·사·공익 각 7명씩 총 21명으로 구성한다. 공익 7명 중 3명은 정부, 4명은 국회에 추천권을 준다. 지금은 정부가 공익위원 9명에 대한 추천권을 독점한다. 개편안이 국회에 추천권을 배분한 것은 정부 입김을 견제하자는 뜻이 담겼다.

하지만 개편 작업은 공중에 붕 떴다. 개편안을 반영한 의원 입법은 노사 반발 속에 20대 국회 임기만료와 함께 폐기됐다. 21대 국회에서도 여야 의원들이 앞다퉈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냈다. 하지만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현재로선 제로다.

(자료=최저임금위원회 웹사이트 캡처)
(자료=최저임금위원회 웹사이트 캡처)


◇대안은 없나

올해 최저임금 결정은 현 체계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다. 노사 간 격돌은 불을 보듯 뻔하다. 소상공인·자영업자도 힘들고 비정규직·아르바이트생도 힘들다.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낸 보고서('최저임금 결정방식의 쟁점과 과제'·2018년 9월)에 따르면 최저임금 결정방식은 나라마다 다르다. 국회에 맡기기도 하고(미국, 브라질), 정부가 행사하기도 하고(그리스, 네덜란드), 별도 위원회를 설치하기도 한다(독일, 영국). 한국은 '별도 위원회'에 가깝다.

보고서는 최저임금 결정권을 국회에 이양하는 방안을 대안 중 하나로 제시한다. 고용부 장관이 최저임금안을 국회에 제출하면 해당 상임위(환경노동위)에서 심사, 의결하거나 승인을 받아 확정하는 방식이다. 경총은 "중장기적으로 프랑스, 독일 같이 '산식(formula)에 의한 최저임금 결정' 방식의 도입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위원회가 잘 작동하면 문제될 게 없다. 하지만 한국 경제에서 33년은 긴 세월이다. 기계에 녹이 슬었다. 톱니바퀴도 어긋난다. 여기에 기름칠한다고 쌩쌩 돌아갈 것 같지 않다.

최저임금은 중대한 국가 정책이다.
결정권을 민간 위원회에 맡기고 정부와 국회는 관중석에 앉아 있는 건 옳지 않다. 결국 입법권을 가진 국회가 나서야 한다.
폐기된 정부 개편안을 다시 살리든 아니면 새로운 방식을 찾든 국회가 갈등 해결사로서 제 역할을 더이상 회피하지 않길 바란다.

[곽인찬의 특급논설] 최저임금 싸움 지긋지긋하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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