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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美 경제동맹이 불안한 中, K반도체·배터리에 손내민다 [글로벌 리포트]

파이낸셜뉴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5.23 17:36

수정 2021.05.24 09:30

中 '첨단기술 굴기' 선언했지만
바이든정부 여전히 제재 압박
기술선진국 韓 기업으로 눈돌려
올해만 투자설명회 20여차례
우리기업 입장에선 '고민의 땅'
사드 등 정치적 이슈땐 피해 크고
"기술만 취하고 버린다" 인식도
韓美 경제동맹이 불안한 中, K반도체·배터리에 손내민다 [글로벌 리포트]
【파이낸셜뉴스 베이징=정지우 특파원】 한국의 첨단산업을 향한 미국과 중국 간의 유치경쟁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 LG 등 한국의 4대 그룹으로부터 44조원에 달하는 미국 직접 투자를 약속받으면서 중국 정부의 한국 첨단기업 유치경쟁이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 중국 정부는 이번에 한·미 동맹 간에 기술협력의 성과물이었던 반도체와 배터리, 인공지능, 바이오 등 첨단기술업종을 중심으로 손길을 내밀고 있다.

중국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때부터 미국으로부터 각종 제재를 받아왔고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에도 압박의 강도는 줄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반도체 등 현대 산업에서 없어서는 안될 핵심 품목은 공급 부족에 허덕이고 화웨이, 틱톡, 위챗, DJI 등 대표적 기업들도 블랙리스트에 올라 미국과 거래가 막혔다.

그러나 중국은 굴복대신 '보복'과 '자력갱생'을 외쳤다.
14차 5개년 경제·사회개발계획(2021~2025년)과 2035년 중장기 계획도 이러한 배경에서 나왔다. 앞으론 첨단기술 등에서 더 이상 미국에 의존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 시기까지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 올라설 수 있도록 굴기하겠다는 게 목표다. 다만 반도체, 인공지능 등 첨단 분야의 경우 단기간 투자로는 성과를 낼 수 없는 고도의 기술집약체라는 점은 걸림돌이다. 선지식 없이 스스로 깨우쳐 일어서기가 사실상 어렵다. 중국 정부가 기술 선진국 한국기업들에 유독 관심을 보이는 이유가 이와 무관하지 않는 것으로 해석된다.

■올해만 20여차례 韓기업 유치활동

23일 코트라 중국지역본부와 한국상회, 관영 신화통신 등에 따르면 올해 들어 중국 중앙·지방 정부가 우리 기업들 상대로 설명회를 열거나 투자상담회를 개최한 것은 알려진 것만 20여차례에 달한다.

지난 19일 한국기업 80여곳 중국 법인 대표와 고위급들은 광둥성 후이저우시 정부의 초청을 받아 후이저우 한중산업단지 투자환경 답사를 다녀왔다.

방문지에는 SK이노베이션 배터리셀 공장과 중국 가전제품 제조업체 TCL의 자회사인 화싱광뎬(CSOT) 공장 등도 포함됐다. 광둥성과 후이저우시 정부는 한국기업 관계자들을 상대로 투자 환경을 설명하고 지원 혜택 등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SK이노베이션은 후이저우와 장쑤성 옌청에서 중국 배터리 기업 EVE에너지와 합작 형태로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COST는 TCL이 2009년 삼성전자를 겨냥해 설립한 디스플레이 패널 회사다.

이미 한중산업단지에 둥지를 튼 한국기업 사례를 보여주고 TV 판매 세계 3위인 CSOT를 소개하는 방법의 투자 유인 전략으로 풀이된다. 중국은 액정표시장치(LCD)에 이어 유기발광다이오드(OLED)까지 한국 기술 수준에 근접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후이저우는 지난 2015년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당시 산둥성 옌타이, 옌청과 함께 한중산업단지를 조성키로 합의한 3곳 중 하나다. 한국기업 1000여곳이 입주해 있다.

또 장쑤성 쑤저우 장자강경제기술개발구에는 최근 산진광뎬 회사의 LCD 편광판 생산공장 건설 착공에 들어갔다고 관영 신화통신은 보도했다. 이 공장은 중국 화학소재 업체 산산이 글로벌 편광판 1위 기업인 LG화학과 합작 형식으로 진행된다. 투자액은 70억위안(약 1조2300억원)이다. 이 가운데 1기 프로젝트는 30억위안을 들여 LCD 편광판 생산라인 2개가 깔린 공장을 건설한다.

장자강에 진출한 한국기업은 157곳이다. 총 투자액은 36억5200만달러이며 실제 해외직접투자(FDI)는 11억2000만달러다. 장자강 전체 투자액에서 각각 12.3%, 12.8%의 비중을 차지한다.

■"中반도체 시장 세계적" 韓 유혹

안후이성 츠저우 경제개발구는 올해 1월과 3월 각각 상하이시와 우시에서 한·중 국제협력 반도체 투자유치 설명회를 열었다. 츠저우시 부시장이 현장에 나와 SK하이닉스반도체 등 한·중 기업 대표들과 상담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기관 담당자와 한·중 기업인 100여명이 자리했다.

상하이 설명회 때는 반도체·플랫패널디스플레이 전시회(세미콘 차이나)와 연계했다. 중국 반도체협회 예톈춘 부이사장은 전시회 투자포럼 발표에서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완전한 반도체 산업사슬이자 가장 큰 소비시장이라는 지리적 이점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선웨이궈 상하이 직접회로 산업투자펀드 회장도 "중국은 현재까지 세계 최대의 반도체 시장으로 성장했으며 앞으로도 국가의 강력한 지원 아래 고속성장을 유지할 것"이라고 자랑했다.

중국 반도체협회에 따르면 2020년 중국 반도체 산업 매출은 8911억위안(약 156조26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7.8% 확대됐다. 그러나 중국 반도체의 자체 생산력은 내수 수요의 15.7%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해외에서 들여와야 한다. 미국의 제재 이후 반도체 부족 현상은 더욱 심화됐다. 반도체 설비의 경우 같은 기간 187억3400만달러(약 21조1200억원)로 2019년에 비해 39.3% 늘었다. 다만 같은 기간 61%(160억4600만달러) 성장한 한국에는 미치지 못했다.

코로나19 발원지로 지목된 후베이성 우한에서도 한국기업인들을 초청했다. 후베이성과 우한은 중국 본토 지방성·시 중 한국기업 투자유치에 가장 적극적인 곳으로 꼽힌다.

후베이성 정부는 3월 외국정부와 공공기관, 한국기업 관계자 등 200여명을 우한으로 불러 코로나19 이후 첫 대규모 국제교류 행사를 진행했다. 당시 다수의 업무협약(MOU)이 체결된 것으로 알려졌다. 후베이성 상무청은 4월에도 SK, CJ, LG, 수출입은행 등 한국기업 15곳을 재차 초청했다. 한국기업들의 투자를 이끌어냈는데 성공했는지 여부는 전해지지 않았다.

■기술이 핵심, 대·중소 따지지 않아

중국에서 찾는 한국기업은 널리 알려진 굴지의 대기업뿐만이 아니다. 수도 베이징과 옌청, 저장성 등은 지역 산업단지에 반도체, TV패널, 바이오와 같은 우수 기술을 가진 한국 중소기업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일부 지역에선 기업 외에 개인 기술인력 채용공고도 꾸준히 낸다.

한·중 교류업무를 맡고 있는 중국인 관계자는 "지방 정부의 의뢰를 받아 중국에 입주할 수 있는 한국 반도체 중소기업을 찾고 있다"면서 "한국기업과 기술 유치는 기업보다는 중앙정부 위주로 이뤄지며 대부분 정부에서 공을 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투자유치 활동이 얼마나 성과를 거두고 있는지에 대해선 데이터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한국기업은 중국이라는 초대형 시장의 매력을 인정하면서도 막상 직접적으로 투자하는 것은 꺼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한국기업들은 중국에 진출한 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지원책은 줄어들면서 오히려 견제·압박을 받았고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등 정치적 이슈가 발생했을 때는 함께 피해를 입는 경험도 했다.
중국 소식통은 최근 중국 공산당·정부·관영 매체의 전방위 테슬라 때리기를 거론하며 "온갖 혜택으로 외국 기업들을 유치한 뒤 기술을 습득하면 내치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얘기"라고 말했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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