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구본영 칼럼] 서민 한숨만 키우는 주택정책

구본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5.24 18:00

수정 2021.05.24 18:00

文정부가 모델로 삼았던
베를린 월세 상한제 실패
임대차3법도 바로잡아야
[구본영 칼럼] 서민 한숨만 키우는 주택정책
독일 수도 베를린의 월세상한제 실험이 실패로 끝났다. 베를린시는 지난해 2월 월세를 ㎡당 9유로(약 1만2000원) 수준으로 동결하는 정책을 입법했었다. 그러나 연방헌법재판소가 지난달 15일 무효 판결하면서 14개월 만에 마침표를 찍었다.

독일 16개 주정부 중 베를린시가 유일하게 도입한 이 월세상한제는 문재인정부의 벤치마킹 대상이었다. 하지만 참담한 실패로 막을 내렸다. 소수의 세입자들이 월세 동결의 혜택을 입었지만 더 많은 사람이 되레 피해를 입었다.
월셋집 공급은 반토막 나고 베를린을 떠난 세입자들이 몰려든 인근 지역의 월세는 급증하면서다.

월세상한제는 사민당과 녹색당 그리고 구동독의 사회주의통일당 후신 정당이 구성한 좌파 베를린 연립정부의 작품이었다. 그 결과 토지 국유화를 지향했던 동독 사회주의체제 때의 악몽이 재현됐다니 아이러니다. 집 주인들이 적정 이윤을 기대할 수 없자 임대를 포기하고 신규 건축 유인도 사라져 사회적 약자들의 한숨만 커졌으니….

현 정부 출범 첫해인 2017년 9월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국회 본회의에서 미국 경제학자 헨리 조지를 소환했다. 이후 지대(토지 임대료)는 개인만 소유할 수 없고 사회 전체가 향유해야 한다는, 그의 토지공개념을 수용한 개헌론이 여권에서 거론됐다. 그러자 야권 일각에선 토지 국유화 의도를 의심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후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등 상당수 정권 실세들이 부동산 부자임이 밝혀졌다. 특히 김현미 당시 국토교통부 장관과 추미애 대표(오피스텔 포함)의 다주택 보유도 드러났다. 식자들은 이런 '내로남불'에 혀를 차면서도 가슴을 쓸어내렸다. 적어도 사회주의식 토지 국유화를 밀어붙이진 않을 것이란 안도감과 함께.

문재인정부가 개인이 주택 사용권을 갖되 토지는 국가 소유를 지향한 동독 방식을 따를 의도가 없다면? 당연히 이제 베를린 실험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지난해 여권이 임대차3법을 일방 처리한 이후 전월세 시장의 혼란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최근 서울부동산정보광장의 집계 결과를 보라. 지난해 7월 임대차3법 시행 후 전세 거래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반전세·월세 거래는 그만큼(5.7%포인트) 늘어났다.

전세는 유럽에선 찾아볼 수 없는 우리의 독특한 제도다. 무주택 서민들이 내집 마련에 순기능이 적잖았다. 그러나 임대차3법의 전월세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제가 맞물린 규제가 엇박자를 내면서 전세 물량이 줄어드는 역기능이 두드러졌다.

반전세·월세가 늘어난 이유는 이렇다. 집주인들은 가뜩이나 저금리 기조에 '보유세 폭탄'까지 예상되자 전세를 월세로 전환했을 법하다. 세입자들도 새 임대차법에 따른 전세계약 갱신이 늘어 신규 물량이 귀해지고 전셋값마저 치솟자 울며 겨자 먹기로 월세를 택했다. 결국 엎어 치나 메치나 무주택 서민이 골병이 들긴 매일반이었다.

더욱이 현 정부는 올해 2·4 공급대책 이전에 24번이나 수요억제 위주의 정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현금부자들만 살기 좋아졌을 뿐 1주택자와 무주택자의 고통은 더 커졌다면? 주거약자들의 비위를 맞추려 한 규제가 이들을 더 힘들게 한 베를린의 역설을 확대재생산한 꼴이다. 그렇다면 문재인정부는 독일의 월세상한제 위헌 결정을 정문일침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제라도 빗나간 부동산 정책 전반을 시장원리에 맞게 궤도 수정할 때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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