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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로] 외국계 운용사 철수가 남긴 숙제

김경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5.31 18:48

수정 2021.06.01 09:25

[테헤란로] 외국계 운용사 철수가 남긴 숙제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여의도에서 가장 부러움 받던 곳에 다녔는데, 당장 뭘 해먹고 살아야 할지 갑갑하네요."

최근 만난 전직 외국계 운용사 임원은 회사 철수로 인해 재취업 자리도 마땅치 않다며 이같이 토로했다.

공모펀드 침체로 그간 꽃길을 걸어 온 외국계 운용사들이 최근 몇 년간 한국 시장에서 잇따라 철수하고 있다.

올해 들어서만 블랙록운용이 국내 공모펀드 사업 철수를 결정하고 DGB자산운용에 관련 사업부문을 넘겼고, 프랭클린템플턴운용은 우리자산운용을 상대로 공모펀드를 이관했다. 호주계 대표 운용사인 맥쿼리투자신탁운용도 국내 사모펀드에 한국법인을 매각했다.

앞서 2012년부터 골드만삭스와 JP모간자산운용도 한국시장을 철수하면서 그야말로 외국계 운용사들의 한국 엑소더스를 실감케 한다.

우수한 트렉레코드와 다양한 해외펀드 라인업을 내세우며 2000년대 초반부터 국내 시장에 진출한 외국계 운용사들이 한국시장 진출 20여년 만에 사실상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 셈이다.


운용업계는 잇단 외국계 운용사들의 철수의 주된 원인으로 영업환경 악화와 규제 강화를 꼽고 있다.

운용업계 한 관계자는 "동학개미 여파로 사고팔기가 쉽고 소액으로도 우량주에 분산투자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진, 상장지수펀드(ETF) 붐이 일면서 결국 외국계 운용사의 영업악화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금융당국이 올 3월 금소법 시행에 이어 고난도 금융상품 관련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 등을 발표해 외국계 운용사들이 설 자리가 줄게 됐다"고 토로했다.

돈도 안되는 데다 과도한 규제로 더 이상 한국시장이 영업현장으로서 매력을 잃게 된 것이다.

더욱이 저렴한 보수의 ETF 전성시대가 열리면서 외국계 운용사들의 입지 역시 더욱 좁아지는 악순환을 맞게 됐다.

2008년 금융위기를 겪고도 한국시장에서 오뚝이처럼 버텨오던 외국계 운용사들의 잇단 엑소더스는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정부의 규제 탓도 있겠지만 외국계 운용사들 역시 인력이나 시스템 투자, 투자자들의 니즈와 시대 변화에도 적절히 대처했다면 한국시장 철수라는 초유의 사태는 막지 않았을까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최근 만난 한 운용사 대표는 "외국계 운용사 본사들이 ETF가 돈이 너무 안된다고 ETF시장 진출을 반대해 한국법인들이 고민이 큰 것으로 안다"며 "그 나라에서 돈을 벌려면 그 나라 법을 따라야 하는데 본사 배당에만 급급해 고보수 상품에만 치중한 나머지 이 같은 사태를 초래한 것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이 든다"고 언급했다.

그동안 장기투자와 선진 금융상품의 '첨병'을 자처하며 국내 펀드시장에서 한 획을 그었던 외국계 운용사들이 수난시대를 맞고 있다.


외국계 운용사들의 한국 이탈의 주된 원인은 기본적으로 수익성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아시아 금융허브'를 외치던 정부나 금융당국의 청사진이 공염불이 되지 않으려면 수익추구를 위한 보완이 필요하다.
여기에 한국에 남은 외국계 운용사들도 배당이나 보수가 비싼 상품에만 올인하지 말고 향후 한국적 상황에 맞는 전략과 상품으로 대응해야 한다. kakim@fnnews.com 김경아 증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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