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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차이나]남돕지 않는 中문화, 또 논쟁...쓰러진 노인 두고 구경만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6.02 14:31

수정 2021.06.02 14:31

- 선전시 횡단보도에서 넘어진 노인 두고 오토바이 운전자들 쳐다만 봐
- 중국에선 2006년 난징 펑위 사건 이후 남 돕지 않는 문화 재조명
- 최근엔 훈훈한 미담 기사도 수시로 보도, 쓰러진 노인 부축하고 차량 구조
중국 선전시의 한 횡단보도에서 길을 건너던 노인이 차량 진입 방지 구조물에 걸려 넘어져 있다. 중국 매체 펑파이 캡쳐.
중국 선전시의 한 횡단보도에서 길을 건너던 노인이 차량 진입 방지 구조물에 걸려 넘어져 있다. 중국 매체 펑파이 캡쳐.

【베이징=정지우 특파원】중국에서 횡단보도를 걷는 노인이 쓰러졌지만 모두들 쳐다만 볼 뿐 한동안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모습이 영상에 잡혔다. 중국은 2006년 난징에서 일어난 이른바 ‘펑위’ 사건 이후 곤경에 처한 사람을 구호해줘야 하는지 여부를 놓고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2일 펑파이와 텅쉰망 등 중국 매체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선전시의 한 횡단보도에서 길을 건너던 노인 한명이 차량 진입 방지 구조물에 걸려 갑자기 앞으로 넘어지는 일이 발생했다.

영상을 보면 이 노인은 스스로 일어나지 못한 채 우측으로 몸을 돌려 신호 대기 중인 오토바이 운전자 여러 명에게 손짓을 하거나 팔을 높이 들어 보였다. 도와달라는 의미의 행동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오토바이 운전자들은 물끄러미 쳐다만 볼 뿐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이 가운데 한 명은 아예 오토바이를 돌려 다른 방향으로 운전해 가기도 했다.

중국 선전시의 한 횡단보도에서 길을 건너던 노인이 차량 진입 방지 구조물에 걸려 넘어진 뒤 오토바이 운전자들에게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중국 매체 펑파이 캡쳐.
중국 선전시의 한 횡단보도에서 길을 건너던 노인이 차량 진입 방지 구조물에 걸려 넘어진 뒤 오토바이 운전자들에게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중국 매체 펑파이 캡쳐.

영상에 나온 횡단보도 좌우 도로는 차량 정체 중이었고 노인의 상반신 일부는 도로까지 나온 상황이었다. 결국 운전자 2명이 차를 멈추고 나와 노인을 일으켜 세우기까지 30여초 동안 이 노인을 돕는 손길은 없었다.

노인을 도운 운전자는 “별 생각을 하지 않고 노인에게 큰 문제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떠났다”고 중국 매체에 말했다. 영상은 신호 대기 중이던 차량의 블랙박스에 담긴 것으로 추정됐다. 해당 블랙박스가 도움을 준 운전자 소유인지는 불분명하다.

영상이 공개되면서 네티즌들은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일부는 “모두 나이가 들 것이고 집안에 노인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노인이 쓰러지면 당연히 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부분 네티즌들은 동의하지 않았다. “돕고 싶어도 감당할 자신이 없다”거나 “죄책감이 들더라도 돈까지 잃을 수는 없다”는 의견에 공감을 표시했다. 돕지 않은 오토바이 운전자를 비난하는 댓글도 드물었다.

한 네티즌은 “부축하기 힘든 것이 아니라 지금은 좋은 사람을 하기에는 너무 힘들다”면서 “도움을 준 운전자는 주행기록계가 있어 가능했던 것”이라고 피력했다.

다른 네티즌은 도움을 주려면 증인 몇 명을 미리 찾거나 휴대 전화로 녹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결백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중국 윈난성 자오퉁시에서 길가에 노인이 넘어져 있다. 중국 매체 텅쉰망 캡쳐.
중국 윈난성 자오퉁시에서 길가에 노인이 넘어져 있다. 중국 매체 텅쉰망 캡쳐.

올해 4월 윈난성 자오퉁시에서도 길가에 넘어져 있는 노인의 방치 영상이 소셜미디어에 게시됐다. 한 남성이 노인에게 접근하자, 주변에 있던 여성이 “괜찮다. 너를 위해 녹화할 것”이라고 설득했지만 끝내 이 남성은 노인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

중국에선 쓰러진 노인을 도울 것인지 여부에 대한 논쟁이 십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노인을 넘어 아동, 장애인 등 다른 사회적 약자나 곤경에 처한 이들을 돕지 않는 사진이나 영상도 종종 언론이나 소셜미디어에 소개된다. 여론의 흐름은 유사하다. 돕지 않는다고 해서 비판할 수 없으며 충분히 이해를 한다는 게 주를 이룬다.

이 같은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된 배경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한다. 그해 11월 난징에서 일용직 근무자로 일하던 20대 남성 펑위는 버스에서 내리다가 한 노인이 승강장에 쓰러진 것을 발견하게 된다. 펑위는 노인의 몸을 일으켜 병원으로 데려가고 가족들에게도 연락을 해 치료를 받도록 도왔다.

그러나 펑위는 오히려 가해자로 몰려 법정에 서게 됐다. 이 노인이 “남자에게 부딪혀 굴러 떨어졌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1심 재판부도 노인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잘못을 하지 않았다면 병원으로 데려가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라면서 펑위에게 4만5000위안을 배상하라고 선고했다. 당시 펑위의 한 달 임금은 3000위안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난징 펑위' 사건으로 알려진 2006년 당시 20대 청년인 펑위(오른쪽)과 버스승강장에서 쓰러졌던 노인. 바이두뉴스 캡쳐.
이른바 '난징 펑위' 사건으로 알려진 2006년 당시 20대 청년인 펑위(오른쪽)과 버스승강장에서 쓰러졌던 노인. 바이두뉴스 캡쳐.

사건의 파장은 중국 전체를 휩쓸었다. 이후부턴 중국에선 곤경에 처한 이들을 돕지 않는 것이 ‘당연한 행동’으로 간주됐다. 2011년 10월 광둥성 포산에서 두 살배기 아이가 두 번이나 차에 치였지만 도와주는 이들이 없어 목숨을 잃었다.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다 문제가 발생한 경우 구호자를 처벌하지 않는 이른바 ‘선한 사마리아인법’이 2013년 중국 일부 지역에서 시행에 들어갔지만 중국인의 의식을 크게 바뀌지 않았다.

2018년 간쑤성 칭양시에선 백화점 8층에서 투신을 하려는 19세 소녀에게 빨리 뛰어내릴 것으로 재촉하고 뛰어내리자 환호성까지 지르는 사건이 일어나 중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이 소녀는 담임교사에게 성폭행을 당할 뻔 한 후 심각한 우울증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렸던 것으로 전해졌다.

2019년 11월에는 중국 후난성에서 등교하던 9세 소년이 괴한의 습격을 받아 30여분간 폭행을 당하는데도 제지하는 이가 없었다. 일부는 이 장면을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 영상을 게시하기까지 했다. 남의 일에 간섭하지 않고 그냥 ‘둘러싸고 구경한다’는 뜻을 가진 중국 특유의 ‘웨이관’ 문화도 재조명됐다.

다만 최근 들어선 여러 명이 선뜻 도움에 나섰다는 내용의 훈훈한 미담 기사도 함께 등장하고 있다. 중국 포털사이트 바이두에서 관련 내용을 검색해보면 길가에 쓰러진 노인을 지나던 운전기사가 도왔다거나 물에 빠진 차량을 시민들이 합심해 구조했다는 기사도 지속적으로 올라오고 있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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