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구본영 칼럼] 국정은 예능이 아니다

구본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6.07 18:00

수정 2021.06.07 18:02

내실보다 흥행 좇던 文정부
P4G '능라도 영상' 사고 내
외화내빈 정치론 미래 없어
[구본영 칼럼] 국정은 예능이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TV를 켜면 예능 프로그램이 차고 넘친다. 케이블과 종편·지상파 방송을 망라해서 그렇다. 예전에 시청자들을 모았던 드라마조차 뒷전으로 밀려난 인상이 들 정도다. 시사·교양 프램그램에서조차 탤런트나 가수·개그맨 등 연예인은 물론 법조인과 과학자·교수 등 지식인들까지 경쟁적으로 '예능감'을 뿜어내는 판이다.

'뉴스 쇼'란 말을 보라.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에 걸친 온갖 이벤트와 사건·사고들마저 흥미 본위로 시민들에게 전달된다는 함의다. 이쯤 되면 대한민국이 헌법 제1조1항에 따른 민주공화국인 동시에 '예능공화국'이란 얘기가 우스개로만 들리지 않는다.


정치판인들 예외일까. 온갖 시사 토크쇼에서 뜬 인사들이 정치권을 기웃거리고, 전·현직 의원들은 여기에 얼굴을 내밀지 못해 안달인 분위기다. 진행 중인 국민의힘 대표 후보 TV토론 시청률이 얼마 전 더불어민주당 지도부 경선 때보다 높은 이유가 뭘까. 이준석 후보가 세대교체의 공을 쏘아 올려 재미를 보태 흥행이 된 까닭이다.

문재인정부의 국정마저 예능 프로그램처럼 치러지는 인상을 주고 있다. 며칠 전 끝난 국제행사인 P4G(녹색성장 및 글로벌 목표 2030을 위한 연대) 정상회의가 그 사례다. 개막식 영상에서 서울이 나와야 할 자리에 평양 능라도 위성사진이 등장하면서다. 인터넷으로 전 세계로 중계되는 가운데 벌어진 황당한 사고였다.

그러니 국내외 언론의 관심은 온통 '능라도 영상'에 집중됐다. "P4G의 P가 평양이었느냐" 등 뒷말과 함께.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향상과 해양플라스틱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적 결속 등 기후대응 어젠다를 담은 서울선언문을 뒷전으로 밀어내면서다. 엄청난 국고를 들인 다자 정상회의가 방송사고를 낸 예능 프로가 된 꼴이다.

문 정부의 주된 특징 중 하나가 이벤트성 행사가 잦다는 점이다.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이나 '그린뉴딜'이니 하는 각종 경제비전 선포식이 다 그랬다. 그때마다 탁현민 의전비서관이 연출한 현란한 영상과 레이저쇼는 약방의 감초인 양 곁들여졌다. 행사의 주목도를 높이려는 취지를 탓할 순 없다. 다만 겉포장에 치중하느라 "업적 없는 정부"(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라는 비판을 받고 있으니 문제다.

사실 현 정부 들어 크고 작은 '의전 무리수'가 잇따랐다. 최근 국산전투기 출고식 때 도색까지 한 KF-21(보라매) 1호기가 문 대통령 참석 후 분해작업에 들어가면서 구설을 탔다. 지난 연말 청와대가 주도한 경기 화성시 동탄 임대주택 행사도 마찬가지다. 한 시간여 문 대통령 방문을 위해 전세보증금의 몇 배나 되는 인테리어 비용을 들여 '쇼룸'을 만들었지만, 행사 후 주민들의 불신만 더 커지면서다.

인기가 최우선 잣대인 예능계에선 눈앞의 대중의 기호와 시류에 영합하기 십상이다. 스타로 뜨려면 실력 이전에 화려한 겉모습과 말발로 어필해야 한다. 물론 일상에 지친 소시민들에게 재미와 위로를 선사하는 건 이 업계의 순기능이긴 하다.

그러나 사회의 공동선을 좇아야 할 정치마저 외화내빈으로 흘러선 곤란하다. 국정은 겉은 번지르르하나 내용 없는 부실 예능과는 달라야 한다.
다음 대선을 9개월여 남겨둔 시점이다. 대선 무대가 그저 달콤한 포퓰리즘 공약으로 유권자를 홀리는 예능 경연장이 돼선 안 된다.
민주를 넘어 유능한 공화의 시대를 열기 위해 때로는 국민에게 "피와 땀과 눈물"도 요청하는 '위선 제로' 후보가 나오길 소망한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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