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일반경제

[현장클릭]'붉은 깃발'된 공유킥보드 헬멧

김용훈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6.12 06:00

수정 2021.06.14 15:56

[현장클릭]'붉은 깃발'된 공유킥보드 헬멧
[파이낸셜뉴스] 지난 1865년 영국에 '붉은 깃발법'이 제정됐다면, 2021년 한국엔 '헬멧 착용법'이 있다. 헬멧 착용법은 공유 전동킥보드 등 개인형 이동수단(PM)에 적용하기로 한 바로 그 법이다. 1865년 영국에서 제정돼 1896년까지 약 30년간 시행된 세계 최초의 도로교통법인 영국의 '붉은 깃발법'은 시대착오적 규제의 대표 사례다. 영국은 마차 사업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자동차의 최고속도를 시속 3km(도심)로 제한하고 마차가 붉은 깃발을 꽂고 달리면 자동차는 그 뒤를 따라가도록 하는 붉은 깃발법(적기조례)을 만들었다. 이 탓에 영국은 가장 먼저 자동차 산업을 시작했음에도 독일과 미국에 뒤처지게 됐다.

공유 전동킥보드는 근거리무선통신방법(NFC) 기술을 활용한 혁신적인 이동수단이다.
버스 한 두 정거장 거리를 가기 위해 10여분을 기다려야 하는 불편함을 없앴다. 택시보다 저렴해 경제적이기도 하다. 전기를 동력으로 쓰기 때문에 친환경적이다. 전 세계 각국이 애써 줄이려고 하고 하는 탄소(Co2)배출이 없다. 2017년 9만8000대로 시작했던 공유 전동킥보드가 2019년 19만6000대까지 늘어난 것도 그래서다. 그러나 '헬멧을 착용하지 않으면 이용할 수 없다'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찬물을 끼얹었다. 헬멧 착용법은 대한민국의 벤처·창업 활성화는 물론 친환경·저탄소 경제로의 전환을 저해하는 족쇄가 될 것이다.

실제 법이 시행된 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공유 전동킥보드 사용자 수가 3분의 1 수준까지 급감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지금은 해당 법에 대한 계도기간(6월13일까지)이기 때문에 3분의 1 수준이라도 유지가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오는 14일부터 실제 헬멧 미착용자에게 과태료를 물리게 되면 그나마 남은 사용자도 사라질 게 뻔하다. "페이스북,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이라도 한국에선 성공할 수 없다"는 푸념은 여전히 유효하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의욕적으로 사업을 확장했던 관련 산업 관계자들에게 '공유'가 핵심인 전동킥보드에서 '공유할 수 없는' 헬멧을 쓰라고 강제하는 것은 사업을 접으라고 하는 것과 다름없다.

물론 전동킥보드가 그만큼 위험하다면 당연히 헬멧을 써야한다. 하지만 객관적인 데이터만 두고 봐도 전동킥보드는 굳이 '법'으로 헬멧을 의무화해야 할 수준은 아니다. 자전거와 비교해도, 레저용 자전거는 평균 30~40km/h, 최대 60km/h의 속도를 낼 수 있는 반면 전동킥보드는 지난 2년의 데이터 집계 결과 도심에서 평균 10~15km/h 수준이었다. 대부분의 전동킥보드는 최고속력 20km/h를 적용 중이고 이는 사람이 빨리 달리는 속도와 비슷하다. 최근 나온 공유 전동킥보드는 어린이보호구역 등에선 10km/h이상 달리지 못하도록 막아두기도 했다. 헬멧 미착용에도 처벌규정이 없는 서울시 따릉이, 세종시 어울링 등 지자체 공유자전거보다 안전하다.

정부는 입만 열면 '규제 혁파'를 말한다. 당장 지난 9일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에서도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기업현장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규제혁신를 언급했다. 하지만 공유 전동킥보드 '헬멧 착용법'만 봐도 '한국형 뉴딜'이라고 하는 거창한 슬로건 뒤의 그림자가 얼마나 짙은 지 뚜렷하게 보인다.
국무조정실에 따르면 지난 2년여 동안 규제샌드박스를 통해 총 579건의 규제 개선 건의가 접수됐고 그 중 82%가 넘는 476건이 심의를 통과했다. 적잖은 성과다.
그러나 규제를 없애고 혁신기업을 육성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실제로 효과를 보려면, 다른 한 쪽에선 여전히 규제를 쌓아올리고 있는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fact0514@fnnews.com 김용훈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