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의 특급논설] 쌍용차 안 살리면 누굴 살리나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6.16 19:10

수정 2021.07.01 12:37

쌍용차 노사는 지난 14일 자구안 조인식을 갖고 조속한 경영정상화를 위해 협력을 다짐했다./사진=뉴시스
쌍용차 노사는 지난 14일 자구안 조인식을 갖고 조속한 경영정상화를 위해 협력을 다짐했다./사진=뉴시스


깐깐한 자구책 요구는 당연

노사가 똘똘 뭉쳐 살길 모색
산은이 이런 기업 저버리면
시장에 그릇된 신호줄까 걱정
돈줄 쥔 산은의 지혜를 기대

[파이낸셜뉴스] 쌍용차 뉴스를 볼 때마다 안타깝다. 노사가 똘똘 뭉쳐 애를 쓰는데 살릴 방도는 없을까? 당장은 길이 보이지 않는다. 사겠다는 이는 보이지 않고, 돈줄을 쥔 산업은행은 바늘로 찔러도 피 한방울 안 나오게 생겼다. 정치권도 비교적 조용하다.


 그동안 부실기업을 지원할 때마다 논란이 컸다. 밑 빠진 독에 돈 붓기가 가장 흔한 비판이다. 그래서일까, 정부와 정치권, 금융권이 쌍용차는 일체 외면하기로 작정이라도 한 듯하다. 그런데 왜 하필 쌍용차인가? 노사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간도 쓸개도 다 내놨다. 이걸 모른 체 하면 행여 시장에 그릇된 시그널을 주는 것은 아닐까?

◇ 산은의 강공모드

KDB산업은행이 아주 잘하고 있다. 부실기업을 몰아붙이는 기술이 여간 아니다. 과거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상선(현 HMM), 한국지엠에서 쌓은 노하우를 쌍용차를 상대로 한껏 발휘하는 중이다. 산은은 쌍용차의 주채권은행이다.

1월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이동걸 회장은 "쌍용차가 추가 지원을 받으려면 노조가 단체협상 기한을 3년으로 늘리고, 흑자가 날 때까지 쟁의를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써야 한다"고 말했다. 노조가 각서를 안 쓰면 "단 돈 1원도 지원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매정하리만큼 차갑다.

효과는 컸다. 실제 쌍용차 노조는 이 회장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얼마전 노조는 2년 무급휴직에 경영 정상화 전까지 무파업, 단체협약 주기 3년 연장을 담은 자구안을 수용했다.

이 회장은 한발 더 나아갔다. 그는 14일 기자간담회에서 자구안이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취지로 말했다. "지속가능한 사업계획 없이는 그 누구도 쌍용차를 살릴 수 없다. 투자자가 없으면 만사가 종이조각"이라는 것이다. 요컨대 쌍용차 인수자야 나와야 비로소 산은도 자금 지원을 검토할 수 있다는 얘기다. 쌍용차는 6월말 매각 공고를 낼 예정이다. 누가 임자로 나설지는 오리무중이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지난 14일 온라인 브리핑에서 "지속가능한 사업 계획 없이는 그 누구도 쌍용차를 살릴 수 없다. 투자자가 없으면 만사가 종이조각"이라고 말했다./사진=뉴시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지난 14일 온라인 브리핑에서 "지속가능한 사업 계획 없이는 그 누구도 쌍용차를 살릴 수 없다. 투자자가 없으면 만사가 종이조각"이라고 말했다./사진=뉴시스


◇ 쌍용차의 겸손모드

쌍용차는 주인이 수시로 바뀐 비운의 기업이다. 1980년대 이후 쌍용그룹→대우그룹→상하이차(중국)→마힌드라(인도) 순으로 주인이 교체됐다.

그 중에서도 상하이차는 최악의 악몽이다. 투자는 안 하고 기술만 빼갔기 때문이다. 2009년 초 상하이차는 쌍용차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경영권을 포기했다. 직원 수천명이 정리해고 벼랑에 섰다. 이에 반발하는 옥쇄투쟁은 격렬했다. 77일 간 싸웠지만 결국 회사는 망가졌다. 같은 해 9월 노조는 73%의 찬성으로 민노총에서 탈퇴한 뒤 독립 기업노조로 돌아갔다. 그리고 2010년 인도 마힌드라그룹이 새 주인으로 나타났다.

이후 쌍용차는 줄곧 노사평화를 유지했다. 2015년엔 소형SUV 티볼리 출시로 회사에 웃음꽃이 피었다. 그러나 기후변화에 따른 디젤차 추방 분위기가 찬물을 끼얹었다. 더구나 자금력이 달리는 쌍용차는 현대차·기아 등 경쟁사의 신모델 출시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이 마당에 세계 자동차 시장은 아예 전기차로 무게중심이 옮아갔다. 코로나 팬데믹은 또다른 악재.

결국 마힌드라도 손을 들었다. 작년 12월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달라진 건 노조다. 옥쇄투쟁에 나서긴커녕 회사를 살리겠다고 신발끈을 동여맸다. 현 정일권 위원장은 이번이 위원장만 두번째다. 2007년에도 9대 위원장으로 노조를 이끈 적이 있다. 2019년에 14대 위원장(임기 3년)으로 당선됐다. 쌍용차 노동현장의 산 증인인 셈이다.

지난 2월 노조는 입장문을 통해 "쌍용차 경영 위기에 대해 죄송스러운 마음을 전한다"고 머리를 숙였다. 그러면서 "기간산업 보호를 위해 정부와 채권단은 쌍용차와 부품 협력사에 대한 자금 지원 등 실질적 해법이 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4월 중순 노조는 다시 머리를 숙였다. 법원이 법정관리 개시를 정식으로 결정한 직후다. 정 위원장은 "2009년과 같은 대립적 투쟁을 우려하는 시선이 있겠지만 회사의 회생을 위해 노조도 협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정 위원장 등은 경기도 평택 본사를 출발해 여의도 국회까지 3박4일 간 도보행진을 했다. 탄원서는 여야 양쪽에 전달했다. 정 위원장은 "어떤 기업보다 선진적인 노사 관계를 이루기 위해 노력한 쌍용차를 정부에서 지원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노조는 6월 7~8일 자구안을 놓고 노조원 찬반투표를 실시했다. 그 결과 52.1%의 찬성으로 간신히 동의를 얻었다. 사실 노조로선 할 만큼 했다. 2년 무급휴직을 받아들이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조합원 3273명 중 1681명이 찬성했다. 그러나 본조(평택) 소속 조합원 투표에서는 오히려 반대(1416표)가 찬성(1213표)을 앞질렀다. 정 위원장의 노사평화 노선을 두고 내부 반발이 만만찮다는 뜻이다.

정일권 쌍용차 노조위원장이 14일 평택공장에서 열린 '쌍용자동차 회생을 위한 자구안 조인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자구안은 노조원 52.1%의 찬성으로 가까스로 동의를 얻었다. (사진=쌍용자동차 제공) /사진=뉴시스
정일권 쌍용차 노조위원장이 14일 평택공장에서 열린 '쌍용자동차 회생을 위한 자구안 조인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자구안은 노조원 52.1%의 찬성으로 가까스로 동의를 얻었다. (사진=쌍용자동차 제공) /사진=뉴시스


◇한번 더 기회를 주었으면

국책 산은의 지원금은 사실상 세금이다. 세금을 허투루 쓰지 않겠다는 데 누가 시비를 걸겠는가. 산은은 지금처럼 죽 가야 한다. 틈날 때마다 쌍용차 노사를 다그치는 게 이동걸 회장의 책무다.

다만 한가지 제안한다면, 산은이 쌍용차 인수합병(M&A) 과정에서 선택의 순간이 왔을 때 신용보강자 곧 촉매제 역할을 해달라는 것이다. 산은이 쌍용차를 측면에서 돕겠다는 뜻만 밝혀도 인수자의 범위가 확 넓어질 수 있다. 매각 성공률도 높아진다.

이렇게 제안하는 이유는 행여 쌍용차가 잘못되면 시장에 그릇된 시그널을 줄까봐서다. "봐라, 노조가 머리를 숙여봤자 과연 얻는 게 뭐냐?"는 인식이 퍼지면 난감하다. 종래 구조조정에 격하게 반발해온 국내 노동계 관행에 대면 쌍용차 노조는 순둥이다. 국책은행이 이런 기업을 버리면 다신 부실기업 구조조정에서 노사 평화를 보기 어렵다.

안다. 쌍용차는 누가 인수해도 생존이 만만찮다. 전기차 대전환은 대형 자동차 업체들도 버거워한다. 그럼에도 나는 쌍용차에 한번 더 기회를 주었으면 한다. 구조조정기 노사평화를 유지한 기업은 메달을 받을 자격이 있다. 쌍용차 노사 자구안은 52.1% 찬성을 얻었다.
47.3%은 반대표를 던졌다. 언제 깨질지 몰라 아슬아슬하다.
산은과 이동걸 회장의 지혜에 기대를 건다.

[곽인찬의 특급논설] 쌍용차 안 살리면 누굴 살리나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