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연차가 뭔가요?" 휴식 모르는 병원 노동자 [구멍 뚫린 K의료]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6.18 11:00

수정 2021.06.18 11:33

[구멍 뚫린 K의료, 이대로 괜찮나 6]
2020년 연차사용 하루도 없는 병원有
전국 15개 의료기관 연차사용률 50%↓
보건의료 노동자 충원이 해답, 대책 절실
[파이낸셜뉴스] 일선 의료기관에서 간호사 등 보건의료인력 부족으로 법정 연차를 아예 쓰지 못한 사례가 여럿 발견됐다. 개중에선 공공병원도 있었다.

병원별로 연차휴가 사용률에 큰 폭의 차이가 있었고, 생리휴가 사용률은 평균 10%가 채 되지 않았다.

보건의료 부문의 고질적 인력부족으로 병원 노동자들이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fnDB.
보건의료 부문의 고질적 인력부족으로 병원 노동자들이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fnDB.

고질적 인력부족··· "연차가 뭐에요?"

18일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전국 102개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47일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보건의료 노동자의 연차 사용률이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호남지역 특수목적공공병원 1곳을 포함해 대전지역 사립대병원, 민간 중소병원 등 아예 연차 사용률이 0%인 곳이 확인됐다.

설문에 응답한 이들 병원 소속 보건의료 노동자들은 법정 휴가를 하루도 가지 못했다는 뜻이다.

사립대병원, 국립대병원, 공공병원 중에선 15곳이 연차사용률 50% 이하를 기록했다. 지방의료원과 특수목적공공병원은 특히 상황이 열악했다. 무려 9곳의 병원에서 연차사용률이 절반을 밑돌았다.

국립대병원 중엔 2곳, 사립대병원 중엔 4곳이 연차사용률 50% 미만이었다.

사정이 열악한 민간중소병원은 심각한 수준이다. 전국적으로 분포한 민간중소병원 여러곳이 연차사용률이 턱없이 낮았다.

연차사용률이 낮은 이유는 분명하다. 고질적 인력부족 때문이다. 한 응답자는 “휴가를 사용할 경우 대체인력이 없다”고 말했고 다른 응답자는 “사직자가 많은 부서는 (연차를) 전혀 사용할 수 없다”고 답했다. “인력부족으로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주휴(일요일)나 휴무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거나 “주휴나 잔여휴무를 먼저 사용하도록 하기 때문에 연차휴가 사용률이 저조할 수밖에 없다”고 답한 노동자도 있었다.

병원 특성상 필수인력이 상당수임에도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이직이 잦아 현직자가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상황이 거듭되는 것이다.

보건의료노동자 연차사용실태. 보건의료노조.
보건의료노동자 연차사용실태. 보건의료노조.

"주휴일이라도 쉬면 다행"

다만 모든 병원에서 연차휴가 사용률이 낮은 건 아니었다. 서울의 한 사립대병원은 연차사용률이 91.7%에 이르렀다.

사용하지 못한 연차휴가에 대해 어떠한 보상도 없는 곳도 있었다. 강원도 한 지방의료원이 대표적이다. 충청권 지방의료원 1곳과 영남권 지방의료원 1곳은 각각 10일과 12일치만 제한적으로 보상했다.

연차는커녕 주휴일에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병원도 다수 발견됐다. 대전 한 사립대병원 노동자는 “365일 인력부족으로 법정공휴일을 제대로 쉬지 못한다”고 답답해했고 호남 사립대병원에선 “긴급하게 애경사, 병가, 공가가 발생할 경우 법정공휴일을 보장받지 못해 시간외근무수당으로 지급받는다”는 응답이 나왔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생리휴가 사용률은 바닥을 쳤다. 의료기관 특성상 여성이 80%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생리휴가 사용률이 10% 미만인 곳이 조사대상 102곳 중 46곳에 달했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보건의료노조는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책임지고 있는 병원의 노동자들은 하루 24시간 운영이 불가피한 교대노동, 2급 발암물질인 야간노동, 생명과 직결되는 긴장노동, 아픈 환자와 가족을 상대하는 감정노동, 각종 감염과 방사능·화학물질에 노출되기 쉬운 위험노동, 70여개 직종이 협업하는 인력집약노동, 여성이 80% 이상을 차지하는 여성다수노동을 수행하고 있다”며 “정부는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돌보는 병원의 노동자들이 인력부족으로 휴가·휴일조차 원하는 시기에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채 소진·탈진에 내몰려 이직·탈출하는 현실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