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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21세기 다자주의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6.22 18:45

수정 2021.06.22 18:45

[서초포럼] 21세기 다자주의
지난 1·4분기 중국경제는 18.3% 성장을 보였다. 역대 최고다. 미국도 1·4분기에 6.4%나 성장했다. 세계통화기금(IMF)은 지난 4월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이 6%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1월 전망치에 비해 0.5%포인트 높여 잡은 것이다. 세계 각국은 적극적인 확대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통해 코로나19로 인한 세계경제 위기를 순조롭게 이겨나가는 모양새다.
그러나 경제회복의 이면에는 미·중 패권경쟁과 다자무역 체제의 위기가 도사리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와 다자무역 체제의 위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995년 WTO가 출범할 당시만 해도 세계경제는 관세 인하를 통한 무역자유화와 무역의 빠른 성장 그리고 글로벌가치사슬(GVC) 확산으로 대변되는 세계화의 진전을 만끽했다. 그러나 WTO에서 진행된 유일한 협상 라운드인 도하개발어젠다(DDA)는 2001년 협상이 개시된 이래 20년이 지난 지금 사실상 실패한 라운드로 전락했다. WTO의 전신인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체제에서 8개 협상 라운드 타결을 통해 무역자유화의 진전을 이끌어낸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한편 WTO의 큰 자랑거리라 할 분쟁해결제도는 기능이 정지된 상태다. 상소기구 위원에 대한 미국의 반대로 전원이 공석이기 때문이다. 164개 회원국의 컨센서스 도출과 일괄타결 방식의 의사결정 구조로는 더 이상 WTO가 무역을 관장하는 국제기구로 제 역할을 하기 어렵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물론 WTO 중심으로 다자무역 체제가 회복된다면 세계가 직면한 다양한 글로벌 이슈에 보편적이고 종합적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국제무역 자유화와 원활화, 디지털 무역 등 새로운 규범 정립이 시급한 분야, 기후변화 대응에 따른 환경과 통상의 접점 모색, 분쟁해결 기능 회복 등 국제통상환경을 안정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개방형 경제를 가진 우리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다자무역 체제의 혜택을 많이 받은 나라다. 그만큼 WTO에 대한 기대와 신망도 크고 나름대로 주요 회원국으로서 역할도 충실히 수행해왔다. 그러나 미·중 패권경쟁이 지속되는 가운데 위기에 처한 WTO 중심의 다자무역 체제만 쳐다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욱이 협상이나 합의가 필요하지 않은 기술발전과 디지털 전환은 빠르게 진행되는 반면 국제규범과 제도적 기반 마련은 더딘 상황에서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을 중심으로 중국의 기술굴기와 산업정책에 대한 견제와 압박의 수위가 높아지고, 디커플링이 심화되는 양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WTO를 철저히 배격한 트럼프와 달리 바이든의 미국은 대중국 압박에 WTO도 활용할 계획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우여곡절 끝에 11월 제네바에서 개최될 제12차 WTO 각료회의(MC12)는 미국 중심의 선진국과 중국 및 신흥국 간의 각축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다양한 정책 옵션과 협력 강화는 우리가 21세기를 살아가는 데 필수적이다. 소다자주의(minilateralism)는 보편적이고 포괄적인 다자주의(multilateralism)에 비해 속도와 유연성, 모듈화 등에서 유리하다.
이를 통해 마음이 맞는 나라들과 협력을 강화, 국제통상에 필요한 규범 정립과 미·중 패권경쟁에 공동으로 대응할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경제통상과 외교안보 측면에서 양자 및 다자적 대응에 더해 소다자주의적 접근을 정책범주에 추가할 이유다.
정책 디자인에 전략적 유연성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정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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