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이구순의 느린걸음

[이구순의 느린 걸음] 법·질서 나몰라라, 공짜망 쓰겠다는 넷플릭스

이구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6.22 18:45

수정 2021.06.22 18:45

[이구순의 느린 걸음] 법·질서 나몰라라, 공짜망 쓰겠다는 넷플릭스
까마득한 옛날 얘기지만 25년쯤 전에는 컴퓨터에 전화선을 연결해 겨우 대화방 정도 들어갈 수 있는 PC통신이라는 게 있었다. 14kbps 속도로 한글자 한글자 대화방을 꾸려가는 수준이었다. 동영상은 언감생심, 사진조차 볼 수 없었지만 밤새 PC통신을 했더니 한달 전화요금이 40만원을 넘겼다는 아우성이 나오던 시절이다.

그 시절 대통령으로 취임한 고 김대중 대통령은 초고속정보통신 대중화를 선언했다. 가장 파격적인 것이 월 3만원 정액요금으로 사용자가 인터넷을 돈 걱정 없이 쓰도록 하겠다고 못 박은 것이었다. 초고속인터넷망은 그때 돈으로 구축비만 45조원이 들어간 빚덩이 사업이었다.
가입자 100만에도 못 미치던 시절이라 통신회사들은 3만원 정액요금으로는 타산을 맞출 수 없다고 반발했다. 정보통신부조차도 걱정이 태산이었다.

수많은 걱정에 김대중 대통령은 "대기업들은 시장을 키워 타산을 맞추라"고 했다. 그러면서 만든 초고속인터넷 정책의 핵심은 45조원 통신망 비용을 통신회사와 콘텐츠 사업자의 전용회선 사용료로 분담하도록 한 것이다. 사용자가 요금 부담 없이 인터넷을 사용해 시장을 키우려면 요금이 싸야 한다. 이를 위해 막대한 통신망 비용은 통신회사와 콘텐츠 회사가 함께 부담하라는 것이다. 시장이 커지면 콘텐츠 사업자는 콘텐츠에서 수익을 내고, 통신회사는 가입자를 늘려 타산을 맞춘다. 그 대신 막 사업을 시작한 콘텐츠 스타트업에는 전용선 요금에 할인을 적용한다. 그래야 사용자가 새 콘텐츠 보는 맛에 인터넷을 더 쓰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세계 최고 초고속인터넷 국가를 만든 한국의 통신 질서다. 전국 가구 대비 100%에 달하는 고속인터넷 보급률을 기반으로 한국 콘텐츠는 세계 시장을 주도할 수 있게 됐다.

2020년 한국 통신시장에 25년 된 질서를 무시하겠다는 황소개구리 같은 존재가 나타났다. 넷플릭스다. 대형 콘텐츠 기업이 지급해온 통신망 사용료를 낼 수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통신망은 통신사업을 인가받은 통신회사의 상품이다. 통신망을 이용하는 모든 기업이 비용을 내고 있는데도 넷플릭스는 사용료를 못 내겠단다. 장사하는 기업이 당연히 지켜야 할 상도의도 모르쇠다.

그러더니 돌연 서울중앙지법에 채무부존재 소송을 냈다. 쉬운 말로 통신회사에 낼 돈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법정에서는 한국 전기통신사업법에 존재하지도 않는 접속과 전송이라는 개념 차이를 내놓으며 한국 통신기업에 낼 사용료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한국 법정에서 한국법에 존재하지 않는 논리를 들이댄다. 법정에서조차 한국법을 무시하겠다는 말로 들린다.

사회를 유지하고 있는 질서와 법률을 무시하는 독불장군이 나타나면 사회 전체가 혼란스러워진다.


넷플릭스가 인터넷 시장 질서를 무시하도록 방치하면 결국 저렴한 정액요금으로 인터넷을 마음껏 쓸 수 있도록 하겠다는, 더 많은 신생 콘텐츠 기업이 창업할 수 있도록 시장을 키우겠다는 인터넷 정책의 근간이 흔들리게 된다.

한국에서 연간 4000억원 이상 수익을 낸 넷플릭스가 지급하지 않은 통신망 사용료를 한국 국민과 신생 콘텐츠 기업들이 대신 지급하게 되는 역차별이 생긴다.
법원이 이런 불공정한 결과를 막아줬으면 한다.

cafe9@fnnews.com 이구순 정보미디어부 블록체인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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