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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시선] 벤처 발목잡는 주52시간제

[강남시선] 벤처 발목잡는 주52시간제
벤처는 모험이 필요한 참신한 사업이나 투자 대상을 말한다. 한마디로 첨단 신기술에 승부수를 건다. 그래서 리스크가 크다. 성공하면 대박, 실패하면 쪽박이다. 벤처는 혁신을 먹고 자란다. 특히 시간이 돈이다. 아무리 첨단 기술이라도 누가 먼저 개발하느냐가 관건이다. 이는 마치 보이지 않는 결승점을 향해 안갯속을 끝없이 내달리는 것과 같다.

혁신 스타트업은 아이디어 하나로 세상을 바꿔보겠다고 덤비는 것이다. 개발자들이 연구를 위해 밤을 꼬박 새우는 일은 허다하다. 유명 게임업체 크래프톤의 장병규 창업주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20대 때 2년간 주 100시간씩 일했다. 스타트업에는 그런 사람들이 꽤 있다"고 했다. 이어 "스타트업, 벤처는 하루하루 버티며 혁신하는 곳이다. 시간제한까지 받으면서 혁신하기에는 상황이 열악하다"고도 했다.

게임강자 중국에선 수백명의 연구원이 모바일 게임 개발을 위해 하루 24시간 내내 연구개발에 몰두한다고 한다. 한국에서 이랬다간 불법이다.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은 2399번 실패 끝에 2400번째에 필라멘트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필라멘트는 전류가 흘러도 타지 않고 빛을 내는 것으로 인류사회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만일 에디슨더러 주52시간을 지키라 했다면 인류 발전은 좀 더디지 않았을까.

내달 1일부터 직원 5~49인 사업장에 주52시간제가 적용된다. 총 16개 벤처 관련 단체로 구성된 혁신벤처단체협의회는 지난 22일 성명을 내고 "주52시간제는 빠르게 성장하는 소규모 혁신벤처기업에 장애물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들은 단기간에 집중해 연구 성과를 내야 하는 업계 특성을 감안해 주52시간제 적용을 1년간 유예해 줄 것을 요청했다.

국내 벤처기업 90% 이상이 50인 미만의 소규모 업체다. 근로시간이 줄면 추가 인력을 새로 뽑아야 하는데 자금력이 달리는 중소·벤처기업으로선 버겁다. 여기에 인력난까지 겹치면서 벤처업계는 비명을 지른다. 김수동 아주대 교수는 "혁신기업에 주52시간제를 강제하는 건 개발자 자율성과 창의성을 크게 제약하는 일"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현재 약 20여개 벤처기업에 마케팅 지원 등 인큐베이팅을 해주고 있다.

코로나19는 거의 모든 일상을 비대면으로 바꿨다. 넷플릭스 공동창업자인 마크 랜돌프는 지난해 한 세미나에서 "코로나19로 창업에 엄청난 기회가 왔다"고 했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벤처기업 수는 약 4만개에 달한다. 전년보다 3000개 정도 늘었다. 정부는 업종별 특성을 감안하지 않고 획일적 잣대로 주52시간제를 밀어붙였다. 벤처는 자율과 창의성이 보장될 때 성공신화의 꽃을 피울 수 있다. 플랫폼 강자인 카카오·네이버 등 토종 혁신기업들도 다 그렇게 컸다. 자원이 없는 한국은 기술이 국력이다. 기술 중심에는 벤처가 있다.

문재인정부 들어 제2 벤처붐이 일기 시작했다. 투자와 창업도 늘었다. 그 덕에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 수가 지난 2016년 2개에서 올해 13개로 늘었다. 주식시장에 훈풍이 불면서 코스닥 상장사 중 벤처기업이 시가총액 상위권을 싹쓸이했다.
이렇듯 벤처는 코로나19에 직격탄을 맞은 한국 경제가 회복할 수 있는 희망이자 기회다. 주52시간 강제는 자칫 혁신의 싹을 자르는 일이 될 수 있다. 일하고 싶어하는 기업이 마음놓고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정부가 할 일이다.

haeneni@fnnews.com 정인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