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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세상엔 더 많은 '하우스'가 필요하다고 [김성호의 영화가난다·끝]

[김성호의 영화가난다 43] 미국 FOX, <하우스 M.D.>
[파이낸셜뉴스] 미국드라마 <하우스 M.D.>를 봤다. 데이비스 쇼어와 브라이언 싱어의 의학드라마로, 무려 시즌8편까지 제작된 그 드라마다. 물론 다 보진 못했으나, 생각 날 때마다 한 편씩 찔끔찔끔 챙겨본다. 다음달부터는 백수가 될 예정이니 좀 더 열심히 볼 수 있을 것 같다.

‘김성호의 영화가난다’ 연재는 이번 편이 마지막이다. 돌아보면 좋은 글이 많진 않았으나, 어떤 글은 썩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 열이 없어 망했고, 바빌론과 맞선 예루살렘에선 의인 하나를 찾기 어려웠다고 한다. 43편의 평론 중 누군가에게 어떤 의미를 던진 글이 단 한 편이라도 있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리고 난 그런 글이 몇 편쯤은 있었다고 믿는다.

미드로 평을 쓴 적은 없으나 <하우스>를 갖고 한 편쯤 써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파이낸셜뉴스에서 쓰는 마지막 영화평 꺼리로 이 드라마보다 나은 작품이 떠오르지 않는 탓이다.

우리들의 세상엔 더 많은 '하우스'가 필요하다고 [김성호의 영화가난다·끝]
▲ 하우스 M.D. 포스터 ⓒ 미국 FOX

다리 저는 괴짜 천재, 닥터 그레고리 하우스

<하우스>는 의학드라마다. 진단의학과 교수 그레고리 하우스(휴 로리 분)가 그의 팀과 함께 하는 활약상을 그린다. 도통 무슨 병인지 알 수 없는 환자를 받아 기적처럼 살려내는 게 진단의학과의 업무다. 뉴저지주에 있는 가상의 병원 프린스턴 플레인스보로 대학교 부속 병원이 배경인데, 하우스는 이 병원 최고의 실력자이자 괴짜 의사다.

드라마의 양식은 단순하다. 매회 실려온 환자들을 하우스와 그의 팀이 구한다. 그의 팀이라 하면 하우스를 필두로 에릭 포어맨(오마 엡스 분), 엘리스 캐머런(제니퍼 모리슨 분), 로버트 체이스(제시 스펜서 분)가 팀원들이다. 인상적인 건 하우스가 이들을 필요로 하는 이유다. 팀원들은 물론 이 병원 의사들을 죄다 합쳐도 진단엔 독보적 재능을 발휘하는 하우스에게 3명의 의사는 어째서 필요한가. 드라마를 보는 내내 궁금한 게 바로 그것이다.

물론 이들은 시간이 오래 드는 각종 검사와 분석을 꼼꼼하게 수행하고, 환자를 살피며 각종 잡무까지 열심히 한다. 하지만 하우스는 드라마 내내 이들이 마치 대체 불가능인 것처럼 대한다. 드라마를 보는 이라면 누구나 그 이유가 궁금할 수밖에 없다.

우리들의 세상엔 더 많은 '하우스'가 필요하다고 [김성호의 영화가난다·끝]
▲ 하우스 M.D. 스틸컷 ⓒ 미국 FOX

하우스가 서로 다른 팀원들을 두는 이유

드라마는 시즌3에 이르러 그 이유를 내보인다. 어느 에피소드였던가, 하우스가 병원장 리사 커디(리사 에델스테인 분)와 긴 시간 비행을 하는 편이다. 비행기 안에서 환자가 발생한다. 유사한 증세를 보이는 이들이 거듭 발생하며 기내엔 공포가 감돈다. 의사로서 하우스는 질병은 진단하고 감염을 차단하는 업무를 맡는다.

이때 하우스가 보인 태도는 놀랍다. 하우스는 무작위로 세 명의 승객을 지목한다. 12살짜리 꼬마아이, 까칠한 여자, 영어를 잘 못하는 외국인이다. 하우스는 아이에겐 자신이 하는 모든 말에 동의하라고 말한다. 까칠한 여자에겐 자신의 모든 말에 반박하라고 한다. 그리고 남은 한 명에겐 윤리적 문제를 거듭 제기하라고 한다.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지만 하우스는 그들을 제 팀원처럼 대하며 반박하고 싸운다.

이 장면은 하우스에게 그의 팀이 왜 필요했는지를 보인다. 천재 하우스에겐 제 밖에서 찬성과 반대, 윤리적 문제를 적극적으로 말하는 이들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의 선택이 옳다고 말해주는 이로부터 자신감 부여를, 아니라고 말하는 이로부턴 합리적 의심을, 윤리적 문제를 제기하는 이로부턴 의료영역을 넘어선 가치판단을 거듭해 요구한 것이다.

찬성하고 반대하고 틀을 깨는 질문을 하는 이들로부터 하우스 스스로 반박하고 토론하며 끝내 더 나은 답을 찾아갔던 것이다. 그것이 하우스에게 그의 팀원들이 필요한 이유다.

우리들의 세상엔 더 많은 '하우스'가 필요하다고 [김성호의 영화가난다·끝]
▲ 하우스 M.D. 스틸컷 ⓒ 미국 FOX

커디는 어째서 하우스를 지지하나

하우스와 병원장 커디의 관계도 흥미롭다. 커디는 병원 내 다른 이들과 갈등을 빚고, 심지어는 환자들도 불친절하고 무례하게 대하기 일쑤인 하우스를 감싼다. 하우스는 병원을 홍보하는 행사에 나서지도 않을 뿐더러 돈이 되는 진료를 하거나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열심이지도 않다. 그럼에도 커디는 하우스를 감싼다. 무조건적으로 감싸고 도는 건 아니지만 그의 모든 행동은 하우스를 의사로서 지켜내기 위한 것이다.

이유는 분명하다. 하우스가 사람을 살리기 때문이다. 병원의 다른 누구보다 더 많은 환자를 살려내기 때문이다. 그의 진단법이 많은 분석과 첨단장비를 필요로 하고, 그래서 많은 비용이 드는 게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그는 환자를 살린다. 환자를 살리는 것, 그것이 병원이 더 부유해지고 더 명성을 얻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커디 원장은 흔들림 없이 믿는다. 그래서 그 역시 좋은 의사다.

커디 원장이라고 병원이 부강해지는 걸 좋아하지 않겠나. 거듭 하우스에게 많은 환자를 보라고 하고, 병원이 비용부담을 알리며, 각종 어려움을 호소하는 그는 하우스가 환자를 살리려는 결정적 순간에서만큼은 다른 무엇보다 하우스의 판단을 우선한다. 그건 그가 경영자이기 이전에 좋은 의사이기 때문이다. 경영을 이해하는 의사 말이다.

우리들의 세상엔 더 많은 '하우스'가 필요하다고 [김성호의 영화가난다·끝]
이국종 아주대학교의료원 외상연구소장이 외상센터를 이끌며 겪었던 고충은 잘 알려져 있다. 의료개혁을 논의할 때마다 자본에 종속된 의료환경의 체질개선 필요성이 언급되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fnDB.

결코 타협해선 안 되는 정신이 있다고

의학드라마를 보며 나는 내가 속한 곳을 생각했다. 한 조직이 더 훌륭해지기 위해선 더 다양한 구성원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상기했다. 하우스가 포어맨과 캐머런, 체이스를 곁에 두고 꾸준히 자신을 독려했듯이, 언론사와 편집국도 더 다양한 색깔의 동료들과 끊임없이 의견을 나누고 부닥쳐야 하는 게 아닌지를 떠올렸다. 하우스가 제 동료들과 싸워 내린 결정이 언제나 하우스 홀로 내리는 판단보다 낫기 때문이다.

언론은 또한 저널리즘의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커디가 온갖 위협에도 하우스를 지키듯, 병원엔 환자를 살리는 것 이상의 가치가 없음을 인정하듯이, 언론도 시민을 향한 저널리즘을 최상의 가치로 추구해야 한다. 때로는 이익과 저널리즘이 상충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저널리즘을 알지 못하는 뛰어난 경영자보단 저널리즘을 이해하는 조금 못한 이가 낫다는 데 뜻을 모아야 한다.

어디 병원과 언론뿐일까. 사회적 가치를 지켜야할 많은 기관들이, 갈수록 획일화되는 가치관과 이윤극대화를 위한 방안 앞에서 유사한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래도 좋은가. 하우스 같은 의사가 거의 멸종된 현실 속에서, <하우스>가 진정으로 던지고 싶었던 질문은 바로 이것이었을 테다.

우리들의 세상엔 더 많은 '하우스'가 필요하다고 [김성호의 영화가난다·끝]
▲ 하우스 M.D. 포스터 ⓒ 미국 FOX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영화가난다'는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