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장사의 신, 농부가 되다… "전 재산 걸 만큼 행복한 일하세요" [인터뷰]

김도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6.28 18:36

수정 2021.06.28 19:26

이현삼 전 ‘해피콜’ 회장
홈쇼핑 1시간 판매 최다 기네스 기록
2016년 회사 매각 후 제2의 인생
"가족과 먹는 한끼의 소중함 깨달아"
최근 ‘농부하는 중입니다’ 에세이 내
이현삼 해피콜 전 회장이 터를 잡은 공작산에서 장작을 패고 있다. 공작산은 산의 모습이 공작새 같다 하여 이름 붙었다. 이 회장은 공작산에서 농부로서 두번째 인생을 시작하고, 틈틈이 세상에 없는 천연비누도 만들고 있다. 디자인하우스 제공
이현삼 해피콜 전 회장이 터를 잡은 공작산에서 장작을 패고 있다. 공작산은 산의 모습이 공작새 같다 하여 이름 붙었다. 이 회장은 공작산에서 농부로서 두번째 인생을 시작하고, 틈틈이 세상에 없는 천연비누도 만들고 있다.
디자인하우스 제공
"나는 '누가 더 행복하게 사느냐' 내기를 하는 과정이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전 재산을 걸고 내기를 해도 괜찮을 만큼 행복해야 한다."

양면 프라이팬으로 홈쇼핑 기네스북 신화를 써낸 이현삼 전 '해피콜' 회장의 좌우명은 '행복'이다.

그가 1999년 설립한 해피콜은 행복을 부른다는 의미와 홈쇼핑 시장에서 행복한 주문 전화를 걸어달라는 중의적인 뜻이다. 여기에 더해 농부로서 인생 2막을 시작한 그에게 해피콜은 '행복을 걸고(happy, call!)' 인생의 내기를 한다는 뜻으로도 들린다.

2016년 해피콜의 매각가는 1800억원. 그와 누가 더 행복한가 내기를 하려면 판돈이 두둑하거나, 배포가 커야할 듯싶다.

■인생 1막은 무일푼 자수성가 사업자

지천명과 이순의 한가운데 있는 그는 성공가도를 달리던 과거의 시간을 '불행으로의 비행'이라고 회고했다. 가난했던 소년 시절 '비행기를 타는 것'이 소원이었지만 사업의 성공만을 바라보며 달리느라 가족과 건강까지 팽개쳐둔 탓이다.

최근 펴낸 에세이집 '농부 하는 중입니다'를 통해 빈틈없이 행복한 두 번째 인생을 소개하는 이현삼 전 회장. 이 전 회장의 성공 인생 1막은 무일푼 자수성가한 사업가로 요약된다. 그는 경상남도 거창군 외진 산골에서 자랐다. 가난을 벗어나고 싶었던 그는 스물다섯 무일푼으로 상경했다. 장사를 배우기 위해 '무데뽀'로 남대문시장을 찾았다. 남대문 지하상가의 토스트 팬 가게에서 사업 아이디어를 얻었다. 신설동 짱구 사장님을 만나 장사의 스승인 민씨 아저씨도 우연히 만난다.

그는 장사를 시작하게 된 과정을 "우연의 징검다리를 하나씩 건너 운명으로 가는 길에 접어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연은 아무에게나 찾아가지 않는다.

"성공에서 압도적으로 중요한 건 운이다. 그런데 사람들 생각과 달리 운은 언제 어느 곳에나 있다. 물론 그렇다고 아무나 운을 잡는 건 아니다. 준비된 사람만 그 운을 잡을 수 있다."

그는 그의 책에서 '해피콜 성공의 7법칙'을 제시한다. 첫째, 세상에 없는 제품을 만들어라. 둘째, 소비자에게 꼭 필요한 제품이어야 한다. 셋째, 최고의 품질을 만들어라. 넷째, 제품 개발은 쉼 없이 미리미리 준비해라. 다섯째, 최고의 디자인과 최고의 디자이너를 찾아라. 여섯째,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잘 팔아야 한다. 일곱째, 마지막 5%까지 최선을 다해라.

토스트 팬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그는 주방용품 회사 해피콜을 설립하고 연기 없이 생선구이를 만들 수 있는 양면 팬으로 전례 없는 히트를 기록한다. 양면팬은 홈쇼핑 방송 1시간 동안 가장 많이 팔린 제품으로 한국 기네스북에도 올랐다.

홈쇼핑 성공신화 뒤에 가려진 그의 실패담은 이후의 더 큰 성공을 위한 거름이 됐다. 매년 300%씩 성장했던 회사는 서서히 추락해 갔다. 형제처럼 믿고 자금 관리를 맡긴 지인이 회사 자금을 개인용으로 사용하고, 세금 문제도 터졌다. 설상가상으로 직원들이 파업하며 생산라인이 멈추고, 국세청 고발과 검찰 조사가 2년 가까이 이어졌다.

재기의 발판은 '다이아몬드 팬'에서 시작됐다. 다이아몬드 팬의 아이디어도 외국에서 본 우연한 사진 한 장이 계기였다. 프라이팬 위에서 달걀이 미끄러지는 사진이었다. 3년의 연구를 거쳐 세상에 나온 다이아몬드 팬은 2008년부터 3년 연속 매출 1위를 지켰다. 2009년 매출 900억원, 2010년 1000억원, 2011년 1200억원 매출을 기록했다.

■수면제 달고 살며 행복에 대해 고민

성공을 위한 비행이 이어졌지만 그는 행복을 느끼지 못했다. 어릴 적 소원이던 비행기를 타도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바쁘게 보냈다. 그러는 사이 몸은 망가져만 갔다.

수면제와 신경안정제를 달고 살았다. 2016년 대형기업들이 회사 인수를 타진해 왔다. 이스트브릿지&골드만삭스에 1800억원을 받고 회사를 매각했다. 더 높은 인수가와 연봉 100억원을 제시한 곳도 있었지만 당시 그는 "살기 위해 무조건 일을 그만두고 싶었다"고 회고했다.

일을 그만두자 공허함이 찾아왔다. 이후 그는 몸이 아플 때마다 찾아가던 강원도의 공작산에 들어가 농부가 되기로 결심했다. 몸이 힘들 때면 찾아가던 공작산의 심마니와의 인연 덕택이었다. 첫 만남에 이 전 회장의 몰골을 보고 산삼 한 뿌리를 건넨 그 심마니를 이 전 회장은 10년간 3~6개월에 한 번씩 찾았다. 심마니는 3년 전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가족이 공작산의 집과 땅을 이 전 회장에게 맡기면서 인생 2막이 시작됐다.

그의 책 가장 처음 에세이의 제목은 '무밥을 먹는 시간'이다.
겨울 무밥을 먹는 행복감을 맛깔나게 표현했다. "무밥을 크게 한 숟갈 떠서 잘 익은 총각김치를 얹어 먹는데, 그까짓 품위 몇 알 밥상에 흘린들 무슨 대수겠는가"라는 문장을 읽으며 작가 김훈이 먹던 '라면'과 '김밥'이 생각났다.


가족과 함께 먹는 한 끼의 행복함. 장사의 신이 하늘의 뜻을 깨닫고 5년 뒤 내린 '인생론'이다.

hwlee@fnnews.com 이환주 김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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