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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팬 톡] '자민당의 나라', 힘의 원천은

조은효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6.29 18:12

수정 2021.06.29 18:12

[재팬 톡] '자민당의 나라', 힘의 원천은
일본에서의 짧은 생활을 돌이켜보건대 이곳에서는 여론이니, 민심이니 그런 게 그리 큰 변수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무슨 짓을 해도 집권 가능한 '자민당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지난 24일 이 자민당의 나라에 '니시무라의 난'이 일어났다. 성공하지 못한 봉기는 대개는 '난'이라고 부른다. "나루히토 일왕이 올림픽 개최가 코로나19 감염 확산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일왕가를 담당하는 궁내청의 니시무라 야스히코 장관이 기자회견에서 폭탄 발언을 한 것이다.
발언이 일본 정부와 사전협의 없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일본 정가에서는 '니시무라의 난'이라 칭했다. 경찰 출신으로 유능한 데다 조직에 충성심이 강하기로 소문난 그였기에 스가 내각이 받은 '배신의 충격'이 컸다고 한다.

귀를 의심한, 현장의 기자들이 다시 물었다. "일왕의 뜻인가." 니시무라 장관은 자신의 "배찰(拜察,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의중을 살핀다는 뜻)"이라고 답했다. "내가 일왕의 생각을 살펴보니 이렇다"라고 단서를 붙인 것이다. 일개 장관이 일왕과 조율되지 않은 발언을 내놓을 순 없다. 일본 헌법상 정치에 개입할 수 없는 나루히토 일왕의 입장을 감안, '기술적'으로 돌려 말했을 뿐이다. 스가 요시히데 총리는 물론 각료들의 반응은 무시다. "장관 그 자신 개인의 생각일 뿐"이라고 일축한 것이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이 "일왕이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직접 사과하면 해결될 일"(2019년)이라고 발언한 것을 가지고, '불경죄' '일왕 모독죄'로 몰아갔던 자민당이 이번엔 그들이 그토록 존숭한다는 일왕의 메시지를 싹 무시해 버린 것이다.

자유당과 민주당이 통합해 출범한 '1955년 체제' 이후 65년간 자민당은 61년간 정권을 잡았다. 정권을 비자민, 민주당에 내준 것은 불과 두 번 뿐, 총 4년1개월 정도였다. 일본 정치를 가리켜 양당제라 하지 않고 '1.5당제'라고 부르는 이유다.

자민당은 때론 과감했다. 얼굴로 내세운 총리가 인기가 떨어져 의석수를 잃게 될 판에는 그와 정반대 캐릭터를 내세워 국민에게 마치 정권교체가 이뤄진 양 착각을 선사했다. 복지 확대, 큰 정부론 등 진보적 가치도 대거 흡수했다. 정책만 봐서는 이게 보수당인지, 진보당인지 분간이 잘 가지 않는다.

자민당 핵심 파벌들은 관방장관 시절 지지율이 고작 2%에 불과했던 스가 요시히데를 총리로 옹립했다. 2%는 곧바로 74%(2020년 9월 조사)로 치솟았다. 자민당의 나라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후쿠시마 원전 내 방사성 오염수 해양방류에 반대 목소리가 있어도, 강행이다. 자민당 정권엔 아무런 타격이 없기 때문이다. 인도 델타형 변이 코로나 확산에 대한 공포가 커지는데도, 올림픽을 유치한 '아베 유산'만 계승·완수하면 된다는 계산 밖에는 보이지 않는 것도 자민당의 나라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취약한 야당, 미약한 여론이 자민당의 나라가 되는 데 일조했음은 물론이다.
최근 올림픽 개최를 반대하는 측이 '도쿄도청 포위 시위'를 열었으나, 현장엔 500명(주최측 추산)밖에 모이지 않았다. 행동하지 않는 여론, 뒷북치는 야당에 자민당이 무서워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
그것이 그토록 그들이 존숭한다는 일왕의 메시지마저 무시하고, 돌진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인 것이다.

ehcho@fnnews.com 조은효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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