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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리포트] 국제 법인세 개혁, 선진국-신흥시장 '동상이몽'

박종원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7.10 00:30

수정 2021.07.10 00:29

지난달 5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의 랭카스터 영빈관에 모인 주요 7개국(G7) 재무장관들.로이터뉴스1
지난달 5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의 랭카스터 영빈관에 모인 주요 7개국(G7) 재무장관들.로이터뉴스1


[파이낸셜뉴스] 이달 세계 각국은 약 100년 동안 이어졌던 전통적인 조세 규범을 흔들어 디지털 경제에 맞는 새로운 법인세 징수 원칙을 마련했다. 그러나 일부 선진국과 신흥시장들은 합의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세금을 가져가야 한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오는 2023년부터 새 규범 도입을 도입하는 각국은 올해 10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결론이 나기 전까지 최대한 유리한 조건으로 세수를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물밑 협상을 벌일 예정이다.

■'공동 과세'로 방향 전환
유엔의 전신인 국제연맹 회원국들은 지난 1928년에 처음으로 이중과세방지 협약안을 마련해 국제적인 조세 규범의 기초를 닦았다. 이후 유엔과 경제개발협력기구(OECD)는 법인세를 낮춰서 투자를 촉진하고 다국적 기업들 세금을 중복해서 내지 않으면서 조세 주권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세제를 개선해 왔다. 하지만 이러한 추세는 구글을 비롯한 IT 대기업들이 사업장 없이 국경을 넘나들며 매출을 올린 뒤 세율이 낮은 나라에 본사를 두고 매출을 이전해 법인세를 절약하는 이른바 '조세회피'에 나서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특히 경제가 통합된 유럽연합(EU) 국가들 가운데 프랑스 같은 일부 회원국은 미국 IT 기업들이 매출은 자국에서 올리면서 유럽 본사를 아일랜드같이 세율이 낮은 국가에 두고 법인세를 본사 소재지에 내면서 공개적으로 반발했다. 프랑스는 당장 2019년부터 자국 내 특정 규모 이상의 IT 기업에게 '디지털세'라는 추가 세금을 받기로 했고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도 비슷한 제도를 시행했다.

당시 미국은 주요 미 IT 기업들이 디지털세의 표적이 되자 보복관세를 물리겠다고 위협했다. 유럽 각국과 미국은 일단 지난해와 올해 합의를 통해 디지털세 시행과 보복을 유예하고 OECD 등 국제기구 차원의 합의를 기다리기로 했다.

우선 주요 7개국(G7) 재무장관들은 지난달 모임에서 최저 법인세율을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OECD는 지난 1일(현지시간) 발표에서 130개 회원국이 G7의 결정을 인용해 2가지 조치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첫 번째는 회원국 모두가 최소 15%의 법인세율을 유지해 기업들이 더 낮은 세율을 찾아 조세를 회피하지 못하게 막는 것이었다. 두 번째 조치는 다국적 기업들이 특정 지역에서 기준을 초과하는 이익을 내면 해당 금액의 20~30%에 달하는 액수에 대해 본사 위치에 상관없이 매출 발생 지역에서 세금을 내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합의를 두고 세계 각국이 지난 100년 가까이 추구했던 조세 원칙에서 벗어나 공동 과세와 법인세 인하 경쟁 차단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아들였다고 평가했다.

■세금이 더 필요한 EU
EU는 디지털세 논쟁이 한창이던 지난 2018년에 EU 차원의 디지털세 법안을 제안했다. 해당 법안은 유럽의회의 지지를 받으며 순항했고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3월 발표에서 OECD 차원의 디지털세 해법이 나오더라도 EU의 디지털세 법안은 그대로 추진한다고 밝혔다.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 EU 경쟁담당 집행위원은 OECD 합의 다음날 인터뷰에서 전날 합의를 환영하지만 기존 EU의 과세안을 밀어붙이겠다고 말했다. 전날 OECD 회원국들은 매출 발생 지역에서 세금을 강제하는 과세권 조정 원칙을 도입하며 개별 국가가 디지털세 같은 추가 세금을 물려서는 안 된다고 합의했다.

그러나 베스타게르는 EU의 디지털세가 OECD 합의보다 "훨씬 광범위한 목표를 지니고 있으며 단순한 세금이 아니라 원칙을 정하는 것"이라고 항변했다. 그는 약 100개 다국적 기업을 겨냥하는 OECD 합의안과 달리 EU의 디지털세는 "훨씬 많은 기업을 포함한다"고 지적했다. 발디스 돔브로브스키스 EU 교역 담당 집행위원도 6일 발표에서 EU의 계획이 "OECD 합의와 어긋나지 않는다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EU를 달래기 위해 최저 법인세율을 제안했던 미국은 EU가 국제 합의에도 독자 행동을 강행하자 EU 압박에 나섰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EU가 무리수를 두는 이유가 결국 세수 확보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EU는 지난해 7월 코로나19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역대 최대규모인 7500억유로(약 1020조원)를 투입해 경제회복기금을 만들기로 했다. EU는 당시 무역 상품에 탄소 배출 비용을 감안해 추가 관세를 물리는 탄소 국경세와 디지털세로 걷은 세금을 새로 걷어 재원을 충당하려 했다. EU 입장에서는 OECD 합의에 따라 디지털세를 포기하면 막대한 빚더미에 앉게 되는 셈이다.

■수정 요구하는 신흥시장
그동안 저렴한 세금을 바탕으로 외국 자본을 유치하고 자국 기업에 혜택을 제공했던 신흥시장 국가들은 이번 합의에 고칠 것이 많다는 반응을 보였다. 신흥시장을 주도하는 중국의 경우 25%의 법인세율을 유지하고 있으며 일부 첨단 기술 기업에만 15%에 못 미치는 세율을 적용한다. 지난 2019년 중국 인민대 연구에 따르면 외자 기업이 부담하는 법인세율의 중간값은 17.27%로 최저 법인세율(15%)보다 높다. 베이징 중앙재경대 차이창 재정세무학원장은 8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를 통해 "최저 법인세율은 받아 들일만 한 수준이며 중국의 조세회피 방지 노력에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평했다. SCMP는 과세권 조정의 경우 중국이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IT 수출국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일방적인 디지털세를 제거한다는 차원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중국 전문가들도 이번 합의가 신흥시장의 성장에 부정적일 수 있다고 본다. 자유무역지대 설치를 추진 중인 중국 하이난성은 특정 기업들에게 15% 미만의 법인세율을 적용할 예정이었으나 이번 합의로 계획을 바꿔야 한다. 차이는 "특정 경제특구나 산업에만 5% 정도 세율을 조정할 재량권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EU와 마찬가지로 디지털세 도입을 추진했던 인도는 이번 합의로 과세가 무산되자 아예 법인세를 더 올려야 한다는 의견이다.
인도 이코노믹타임스는 4일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인도가 뜻이 맞는 신흥시장 국가들을 모아 최저 법인세율 인상을 요구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앞서 아르헨티나의 마르틴 구즈만 재무장관 역시 15%가 너무 낮다고 성토했다.
이들 국가는 세계 각국이 매출 발생지에서 세금을 걷기로 합의한 만큼, IT 서비스 사용인구가 많은 신흥시장에서 다국적 기업에 부과하는 법인세를 높이면 외자 유치에서 손해 보는 만큼의 세수를 보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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