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조성관 작가 =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
이것은 '줄리어스 시저'로 알려진 인물의 본명이다. 그로 인해 우리는 보통 '줄리어스'가 개인명으로 알기 쉽다. 고대 로마 시민의 이름은 '개인명·씨족명·가명'으로 이뤄졌다. 그러니 줄리어스는 개인명이 아닌 씨족명이다.
율리우스의 씨족명은 라틴어로 유피테르(Jupiter). 영어로 '주피터'로 알려진 로마신화 최고의 신이다.
율리우스는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며 다양한 이름을 탄생시켰다. 먼저 남자 이름. 줄리어스, 줄리안, 질리안(이상 영어), 쥘리엥(프랑스), 줄리오(이탈리아), 훌리오(스페인), 율리어스(독일), 유리(러시아)···. 여성 이름에서는 줄리아, 줄리엣, 줄리, 훌리아, 율리아 등이 가지치기로 나왔다.
여기서는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아닌 영어 발음 '줄리어스 시저'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샐러드가 '시저 샐러드'다. 샐러드를 고를 수 있는 식당이라면 나는 언제나 시저 샐러드를 선택한다. 로메인 상추의 아삭거리는 식감과 싸락눈처럼 뿌려진 파마산 치즈가 어우러진 산뜻하고 깔끔한 맛이 식욕을 돋운다. 시저 샐러드에는 로메인 상추, 정육면체의 빵조각 크루톤, 레몬주스, 올리브 오일, 안초비, 디종 머스타드, 파마산 치즈, 검은 후추가 들어간다.
시저 샐러드는 언제 어디서 기원했나. 멕시코에 정착한 이탈리아 이민자인 요리사 시저 카르디니(Caesar Cardini)가 1920년대에 개발한 샐러드다. 카르디니는 멕시코에서 오너 셰프 레스토랑을 열며 식당 이름을 '시저'라고 이름 붙였다. '시저'라는 이름에 대한 자긍심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이름에 대한 긍지는 여기서 머물지 않았다. 카르디니는 대표 샐러드를 개발하면서 이 샐러드에도 '시저'를 붙였다. '시저 샐러드'는 딸 로사 카르디니에 의해 계승됐다.
셋 중 한 명이 이 수술로 태어난다
이 세상 모든 산모는 자연분만 아니면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는다. 우리나라의 경우 제왕절개 비율이 35~40%에 이른다고 한다. 미국의 경우는 이보다 조금 낮은 32%. 가끔 보는 TV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 생활'(시즌2)에 제왕절개 이야기가 나왔다. 의사는 아이와 산모가 위험하니 당장 제왕절개를 해야 한다고 설득하는데, 남편과 시어머니는 자연분만을 고집하며 대립하는 장면이다.
제왕절개(帝王切開)는 산모가 쌍둥이를 임신했거나 아이가 거꾸로 들어서 자연분만으로 출산이 불가능할 경우 선택하는 수술이다. 산모의 배꼽 아래 아랫배를 갈라 아이를 꺼내는 것이 제왕절개다. 산부인과 전문 용어로는 'C-section'이다. C는 Caesarean의 줄임말이다.
산모의 아랫배를 절개해 아이를 꺼내는 수술은 그 역사가 인류의 역사만큼 장구하다. 기원전부터 유럽, 중국, 인도, 페르시아 등 모든 문명권에서 행해졌다. 산모의 배를 가르는 수술은 대부분 죽어가는 산모를 대상으로 시행되었다. 비록 산모는 살릴 수 없지만 아이라도 살려보자는 차차선의 선택이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도 제왕절개에 대한 기록이 보인다. 뤼홍은 아들만 여섯 명을 두었는데, 여섯 명을 모두 배를 절개해 낳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모든 문명권에서 시행되어온 아이를 꺼내는 수술에 '시저'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이 지점에서 한 인물이 등장한다. 로마 시대의 '플리니 디 엘더'다. 플리니는 저술가이자 자연철학자이자 해군 사령관을 역임한 인물. 물론 로마 시대에도 이런 수술은 빈번하게 행해졌다.
플리니가 이 수술을 '시저'라고 이름 붙였다. 이로 인해 한동안 시저가 이 수술로 태어난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그럴듯하게 퍼지기도 했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시저의 어머니가 40대 중반까지 살았다는 점이 그 증거다. 로마 시대에도 죽어가는 산모나 막 숨이 끊어진 산모의 배를 절개하고 아이를 꺼냈기 때문이다.
로마에서 이 수술을 '시저 수술'이라고 부르자 유럽 각국에서 이 용어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동시에 독일 같은 나라에서는 emperor' cut(황제의 수술)이라는 용어를 병행해 사용했다.
일본은 개국을 결정하면서 영국과 독일을 놓고 저울질하다가 후발 주자로 강대국 대열에 진입한 독일을 벤치마킹하기로 한다. 열차를 비롯해 거의 모든 것을 독일에서 들여왔고 의학용어도 독일 것을 그대로 수용했다. 엠페로 컷을 한자어로 '제왕절개'라고 번역했다. 일본을 통해 서양 근대의학을 받아들인 한국은 제왕절개라는 용어 역시 그대로 수입했다.
아! 시저스 팰리스 호텔
미국을 여행한다면 어느 도시를 가장 가고 싶은가. 영순위는 단연 뉴욕이다. 그다음부터는 개인 취향에 따라 제각각으로 갈라질 것이다. 음악 애호가라면 재즈의 고향 뉴올리언스나 블루스의 고향 멤피스를 꼽을 수도 있겠다. 도박과 쇼를 즐기려 한다면 라스베이거스를 가보려 할 것이다.
라스베이거스에서 가장 큰 호텔은 단연 MGM호텔이다. 너무 커서 자칫 길을 잃기 쉽다. 도박 도시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전혀 라스베이거스 같지 않은 호텔이 시저스 팰리스다. 벨라지오 호텔과 미라지 호텔 중간쯤에 있다.
시저스 팰리스 호텔이 문을 연 것은 1966년. 이 호텔이 한국인에게 처음으로 각인된 것은 1970년대 후반께. 세계적으로 프로복싱의 인기가 절정에 이를 때였다. 무하마드 알리, 조지 포먼, 로베르트 듀란, 슈가 레이 레너드, 윌프레드 고메스, 살바도르 산체스 같은 이름만으로 가슴을 뛰게 하는 프로복싱의 전설들이 시저즈 팰리스 야외 특설링에 섰다.
외교관과 상사원을 제외하고 여권을 발급받기도 어려운 시절 한국인들은 텔레비전 중계를 통해 라스베이거스에 특이한 이름의 호텔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안녕하십니까? 고국에 계신 국민 여러분, 여기는 라스베이거스 시저스 팰리스 특설링입니다. 지금부터 WBA···"
한국인에게 시저스 팰리스 특설링은 아픈 상처를 남긴 곳이기도 하다. 그날은 1982년 11월 13일. 나 역시 텔레비전으로 WBA라이트급 타이틀 매치 중계방송을 보았다. 동양라이트급 챔피언 김득구는 세계 챔피언 맨시니와 맞붙었다. 그러나 스물일곱 김득구는 맨시니의 펀치를 맞고 쓰러져 영원히 일어나지 못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프로복싱 세계타이틀 매치 경기가 15회에서 12회로 줄어들었다.
시저스 팰리스는 세계적 아티스트들의 공연장으로도 유명하다. 메인 공연장의 이름이 '콜로세움'이다. 생각해보라. 어느 누가 콜로세움 무대에 서고 싶지 않겠는가. 프랭크 시내트라, 토니 베넷, 엘라 피츠제랄드, 주디 갈란드, 로드 스튜어트, 셀린 디옹, 엘튼 존, 다이애나 로스,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머라이어 캐리, 티나 터너···.
오래전 나는 LA에서 지인과 함께 자동차를 한 대 빌려 라스베이거스를 여행한 적이 있다. 숙소는 방값이 저렴한 MGM호텔로 잡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시저스 팰리스였다. 입구에서부터 로비까지 거대한 동상과 열주(列柱)의 사열을 받으며 들어가는 데 꼭 고대 로마로 시간여행을 온 것 같았다. 나는 시저스 팰리스 호텔 1층 도박장에서 '상쾌하게' 털렸다.
호텔 입구 초입에서 오가는 사람들을 지그시 내려다보는 인물은 로마제국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 시저다. 아우구스투스의 의붓아버지가 줄리어스 시저다. BC 44년 브루투스에 의해 살해된 줄리어스는 앞서 후계자로 양아들인 옥타비우스 시저를 지명했다.
후계자 옥타비우스는 부친의 유지를 충실히 받든다. 로마 원수정(元首政)을 제도화해 로마제국의 초창기를 다진 인물로 평가된다. 몇 년 후 원로원은 옥타비우스에게 '존엄한 사람'이라는 뜻의 아우구스투스라는 이름을 부여한다.
아우구스투스 시저는 황제로 41년간 재위하면서 이집트를 비롯해 지중해에 면한 아프리카 지역까지 영토를 넓혔다. 상비군 설치, 조세 제도 개혁, 도로 연결망 확충···.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격언은 이때부터 나왔다. 200년 이상 대규모 전쟁이 없는 '팍스 로마나'(로마제국으로 인한 평화) 시대를 연 인물이 아우구스투스다.
팔월의 오거스트(August)는 아우구스투스 시저에서, 칠월의 줄라이(July)는 줄리어스 시저에서 각각 유래했다. 기독교 문명권에서 '7월 사랑'은 각별하다. 미국인은 7월4일 독립기념일에 모든 게 맞춰져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줄리어스 시저의 어록은 지금도 여전히 회자된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브루투스 너마저'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겁쟁이는 죽음을 여러 번 맞이하나 용감한 사람은 단 한 번 죽음을 맛본다'···. 대부분이 '줄리어스 시저'를 쓴 셰익스피어 덕분이긴 하지만.
2060년 전 인물 줄리어스 시저는 생각보다 훨씬 우리 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그의 극적인 죽음을 다룬 이야기는 책, 연극, 영화, 드라마로 끝없이 재생산된다. 아 참, 샌드위치 중에서 치킨 시저랩도 맛있다. 줄리어스가 태어난 칠월이 지금 영글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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