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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밤 제주 수박밭 덮친 멧돼지 공포…"소리쳐도 꿈쩍 안해"

뉴스1

입력 2021.07.15 14:27

수정 2021.07.15 14:27

제주시 아라동 한 수박밭에 출몰한 멧돼지(강씨 제공)© 뉴스1
제주시 아라동 한 수박밭에 출몰한 멧돼지(강씨 제공)© 뉴스1


멧돼지 피해를 입은 수박밭(강씨 제공)© 뉴스1
멧돼지 피해를 입은 수박밭(강씨 제공)© 뉴스1


한라산서 포착된 멧돼지. (사진제공=제주도) © News1
한라산서 포착된 멧돼지. (사진제공=제주도) © News1

(제주=뉴스1) 고동명 기자 = 지난 8일 저녁 9시 30분 제주시 아라동에 있는 강모씨(54)의 수박밭.

달빛이 없으면 앞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둑어둑해졌을 즈음 수박밭에 검은 물체가 나타났다.

승용차 안에서 '잠복근무'를 하고 있던 강씨 앞에 최근 애를 먹였던 수박도둑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 정체는 바로 야생 멧돼지였다.

당장이라도 차에서 내려 내쫓고 싶었지만 강씨의 머릿속에 멧돼지가 사람을 공격해 다치게했다는 뉴스가 스쳐갔다. 차 안에 있어도 불안할만큼 멧돼지는 크기가 제법 돼보였다.



강씨는 차 안에서 소리를 지르고 자동차 경적을 "빵빵' 울려댔지만 멧돼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다급해진 강씨는 119에 신고했고 출동한 구조대가 사이렌을 번쩍거리며 굉음을 내서야 멧돼지는 자리를 떠났다.

아라동에서 1만7000㎡의 규모의 수박밭을 재배하는 강씨가 처음 멧돼지 피해를 입은 건 지난 4일쯤이다.

땅이 파헤쳐지고 수박이 쪼개져 나뒹구는 밭을 발견한 강씨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누군가의 못된 장난일까? 취객의 행패일까? 아니면...?

피해가 이어지던 어느날 비온 뒤 땅바닥에 선명하게 발자국이 찍히고 나서야 범인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강씨는 "수박밭이 산간 깊숙한 곳도 아니고 대도로변에 위치해 있어 처음에는 멧돼지라는 게 믿기지 않아 해가 떨어질때까지 기다려 직접 현장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곧바로 행정당국에 신고했지만 멧돼지 퇴치는 강씨의 생각처럼 흘러가지 않았다.

강씨는 "주민센터와 제주시, 심지어 경찰에까지 도움을 요청했지만 서로 핑퐁게임만해서 시간만 흘러갔다"며 "신고하고 일주일 지난 14일에야 제주시의 의뢰를 받은 야생생물관리 협회 소속 엽사들이 찾아왔다. 그 사이 수박밭은 매일 매일 쑥대밭이 됐다"고 토로했다.

◇"멧돼지 출몰 시간되니 총기 반납"

강씨가 촬영한 사진과 주변 상황을 살핀 엽사들은 해당 멧돼지가 다른 지역에서도 문제를 일으켜 수개월째 쫓고 있는 '그놈'임을 직감했다.

워낙 눈치가 빠르고 재빨라 난다긴다하는 엽사들도 매번 놓쳤던터라 모두들 이번만큼은 꼭 잡겠다고 별렀다.

그런데 엽사들은 오후 8시30분쯤 되자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총기 관리 규정에 따라 경찰관서에 반납해야해서다.

강씨는 "엽사들이야 규정이 그러니 이해하지만 멧돼지가 출몰하는 시간에는 정작 포획을 할수 없으니 무슨 소용인가"라며"사전에 허가를 얻으면 총기 사용 시간을 연장할 수는 있지만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이 걸린다"고 전했다.

강씨는 "단순히 개인이 재산피해를 입고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멧돼지는 인명피해를 입힐 수 있는만큼 행정당국이 좀더 적극적으로 신속하게 나서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한편 제주에 서식하는 멧돼지는 2017년 기준 170마리 수준이었으나 번식 속도가 빠르고 포획수를 고려하면 현재는 더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토종 제주 멧돼지는 1900년대에 멸종됐고 지금 출몰하는 멧돼지들은 2000년대 농가에서 가축용으로 사육되다 탈출하거나 방사된 개체들로 추정된다.

2012년에는 포획된 멧돼지의 DNA를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 야생멧돼지와는 다른 중국에서 들어온 가축용 멧돼지로 밝혀지기도 했다.

강씨처럼 농작물을 중심으로 멧돼지 피해 신고도 매해 꾸준히 발생해 유해야생동물로 지정됐고 2016년 10월에는 서귀포시 도로에서 산책하던 50대 남성이 멧돼지 습격을 받아 다리를 다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올해에만 제주에서 멧돼지 234마리가 포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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