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선

[강남시선] "이제 청년이 스승이 될 수 있다"

정순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7.15 19:06

수정 2021.07.15 19:46

[강남시선] "이제 청년이 스승이 될 수 있다"

지난 2019년 8월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모든 직원에게 책을 한 권씩 돌렸다. 당시 주목받기 시작한 임홍택(임씨는 82년생이다)의 베스트셀러 '90년생이 온다'다. 우리 사회의 새로운 주류로 급부상하고 있는 1990년대생, 즉 MZ세대의 출현을 알린 책이다. 문 대통령은 책에 동봉한 카드에 이렇게 적었다. "새로운 세대를 알아야 미래를 준비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그들의 고민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경험한 젊은 시절, 그러나 지금 우리는 20대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올 1월에는 이런 책도 선물했다. 행정안전부가 지난해 말 펴낸 '90년생 공무원이 왔다'다. 이 책의 저자는 정부혁신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500여명의 공무원이 모인 범정부 네트워크 '정부혁신 어벤져스'. 이 중 57명의 공무원이 이 책의 집필에 참여했다. 이번에도 문 대통령은 책을 나눠주면서 추천의 글을 동봉했다. "깨어 움직이려는 마음이 문화를 바꿉니다. 새로운 세대가 하는 솔직한 말에 귀 기울이고 고개를 끄덕이는 편인가요? 국민과의 소통, 공무원들 간의 세대 간 소통부터 시작해볼까요? 유쾌, 흔쾌, 함께 감동을 만들어 나갑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문 대통령의 노력은 결과적으로 헛수고가 되고 말았다. 2030세대가, 혹은 요즘 유행하는 말로 MZ세대가 새로운 세력으로 떠오를 것이라는 낌새를 미리 알아차렸지만, 그들과의 소통엔 실패한 셈이 돼서다. 지난 4월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 받아쥔 처참한 성적표가 이를 증명한다. 당시 20대의 66.9%, 특히 20대 남성의 77.8%가 여당 후보에게 표를 주지 않았다. 30대의 61.9%도 다른 당을 찍었다.

누구 말마따나 해일(쓰나미)은 갑자기 오지 않는다. 언제나 전조가 있게 마련이다. 대형사고가 발생하기 전 그와 관련한 징후들이 반드시 나타난다는 '하인리히의 법칙'은 이런 사실을 이론화한 것이다. 평창올림픽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을 구성할 때, 이른바 인국공(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가 터졌을 때, 결정적으로 조국 사태로 전국이 들끓었을 때 20대 젊은이들이 버럭 화를 낸 이유를 면밀히 따져봐야 했다. 문 대통령이 추천한 두 권의 책 한 귀퉁이에는 분명 이에 대한 해답이 있었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의 주요 인사들은 애써 이들의 의견을 외면했다. 4·7 재보궐선거 직전 여론조사에서 20대의 반란이 충분히 감지됐는데도 여당 후보는 "20대는 40~50대보다 역사적 경험치가 낮다"고 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문 대통령이 일독을 권하며 선물한 책을 안 읽었거나 적어도 오독한 셈이다.

공자는 논어 술이편에서 '삼인행 필유아사언(三人行 必有我師焉)'이라고 했다. '세 사람이 함께 길을 가다보면 거기에는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그 가운데 나보다 나은 사람의 좋은 점을 골라 그것을 따르고, 나보다 못한 사람의 좋지 않은 점을 골라 그것을 바로잡으라"고 했다. 한데 현 정권은 20대가 나의 스승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눈치다.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마거릿 미드는 반세기 전 청년이 미래를 선도하는 사회가 곧 도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세기 미국 사회를 탐구하면서 과거의 경험에 집착하는 기성세대보다 그로부터 자유로운 청년들에게 미래가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그는 "이제 청년이 스승이 될 수 있다"고 선언했다.
"젊은 것들이 뭘 알아"라며 짜증만 내고 있을 때가 아니다.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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