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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산업정책의 부활과 기술동맹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7.20 18:50

수정 2021.07.20 18:50

[서초포럼] 산업정책의 부활과 기술동맹
"일본에서는 누가 미국의 실리콘밸리에 견학하러 오는지 아십니까?"

몇 년 전 국제회의에서 만난 미국 버클리대학교의 교수가 내게 한 질문이다. 당시 구글을 비롯한 첨단업체가 모여 있는 실리콘밸리는 세계적으로 가장 뜨거운 관심의 대상이었고, 세계 각국에서 방문객들이 줄을 서던 때다. 그는 일본에서는 경제산업성 소속 공무원들이 실리콘밸리를 찾아온다면서 요즘 어느 나라가 첨단기술이 집약된 곳에 공무원을 보내느냐고 되물었던 기억이 난다. 산업발전과 시장 기능 확대로 인해 산업정책의 유효성이 떨어져 대부분의 선진국이 산업정책을 폐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산업정책의 명맥을 유지하는 일본의 제도와 정책이 낙후됐음을 꼬집은 것이다.

그러나 최근 세계적으로 산업정책이 다시 부활할 조짐을 보인다. 그 전면에 미국이 있다.
지난 6월 발표한 바이든 정부의 공급망 100일 보고서는 미국 산업정책의 회귀를 알리는 신호탄이다. 자유시장경제의 대명사인 미국이 용도 폐기했던 산업정책 카드를 빼든 이유는 트럼프 정부의 무역전쟁을 넘어 기술 패권경쟁으로 확전되는 가운데 중국의 국가자본주의에 대응할 방안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중국의 보조금과 국영기업, 기술탈취 및 지재권 문제는 트럼프 정부가 불공정무역행위로 간주한 대표적 이슈였으나 미·중 양자 간 무역협상으로 해결하지 못했다. 단지 중국이 2000억달러어치 미국산 제품을 더 수입하기로 한 1단계 합의를 도출하는 데 그쳤을 뿐이다. 그렇다고 다자무역체제를 활용해 이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세계무역기구(WTO)의 기능이 약해졌을 뿐 아니라 중국의 영향력이 너무 커졌다. 미국을 위시해 주요 선진국은 중국 정부의 보조금과 국영기업이 불공정 경쟁을 유발하고, 과잉생산 문제와 시장교란 행위의 주요 원인이라고 비난하지만 중국은 WTO 규정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대립할 뿐이다. 심판의 역할을 수행할 주체가 마땅치 않은 현실이 세계경제에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을 더하고 있다.

이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미국의 선택은 산업정책 부활과 디커플링 추진으로 압축할 수 있다. 급속한 기술발전과 갈수록 고도화되는 기술이 경제는 물론 안보에까지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 때문에 미국은 기술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고, 자국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한편 글로벌 공급망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편으로 민주주의 기술동맹을 구축하는 데 정부가 나서겠다는 것이다. 일례로 인텔이 반도체 제조공장 설립을 결정한 이면에는 미국 정부의 지원책이 있다.

공급망 100일 보고서가 주요 산업기술과 안보 관련 장비와 부품에 핵심 역할을 하는 반도체, 배터리, 희토류, 의약품 등 4대 품목의 공급망을 조사한 결정적 이유는 글로벌 공급망의 중심에 중국이 있기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전후로 중국은 세계 1위 수출국이 됐고, 전 세계 대부분 국가의 가장 큰 교역상대국으로 부상했다. '메이드인 차이나 없이 살아보기'라는 책이 나올 정도로 중국산 제품 없이는 생활 자체가 어려워진 것이다. 그런데 중국과 대결 모드에 있는 미국 입장에서 군사안보 시설과 장비의 일부가 중국산에 의존해야 한다면 불안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중국을 배제한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하는 데 동맹국의 협력을 강력하게 촉구하는 것이다.


유럽과 일본도 최근 디지털 전환 로드맵과 첨단 반도체의 국내 생산체제를 정비하기로 했다. 세계적으로 산업과 기술 관련 경쟁과 협력의 새 장이 펼쳐지고 있다.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을 높이고, 국가경제의 근간을 다지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정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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