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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팬 톡] 日기업가들의 거침없는 정권 비판

조은효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7.27 18:50

수정 2021.07.27 18:50

[재팬 톡] 日기업가들의 거침없는 정권 비판
사실 일본에 대해 전부터 '이런' 이미지가 있었다. 기업과 국민이 정부에 무척 협조적인, 그래서 비판이 잘 유통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시각이 일견 '낡은 이미지'일 수 있겠다 싶은 사건들이 최근 일본 재계에서 잇따라 벌어졌다. 일본 기업 오너들이 공개적으로 정권에 비판을 날리고 있는 것이다. 매우 거침없다.

패션 브랜드 유니클로를 거느린 패스트리테일링의 야나이 다다시 회장은 약 1년반 전 이런 말을 했다.
"아베노믹스가 성공했다고? '주가'라는 것은 나랏돈을 풀면 어떻게든 부양할 수 있는데, 그것 말고 성공한 게 더 있나?" "기업과 개인들이 할 말을 확실히 하지 않으면 일본은 망하고 말 것이다." 말기라고는 하나, 아베 정권이 시퍼렇게 살아있을 때였다. 갓 취임한 스가 요시히데 총리가 야심작으로 삼은 여행비용 지원정책에 대해서도 "나랏돈은 어려운 사람을 돕기 위해 써야 하지, 용도가 잘못됐다"고 공개적으로 꼬집었다.

도요타의 도요다 아키오 사장은 지난 2월 모리 요시로 당시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 회장의 여성 멸시 발언 직후 "도요타가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알리기 위해 침묵해선 안 된다"며 회장직에서 물러날 것을 압박했다. 소프트뱅크그룹 손정의(손마사요시) 회장도 수차례 일본의 낡은 시스템을 비판했다. 일본 최대 온라인 상거래 기업인 라쿠텐의 미키타니 히로시 회장은 가장 수위가 높다. "도쿄올림픽 개최는 자살행위"라고 폭탄발언을 했다. 국민이 민주주의를 쟁취한 한국에서조차 기업가들 입에서 도저히 나올 법하지 않은 돌직구가 연이어 터지고 있는 것이다.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의 "한국의 기업은 이류, 행정은 삼류, 정치는 사류"(1995년)라는 발언 후 현재까지 이를 뛰어넘는 한국 기업가의 쓴소리는 아직 못 들은 것 같다.

과거 일본 재계에서도 드문드문 정권 비판적 발언이 나온 적이 있으나 이렇게 노골적으로 비판이 떼를 지어 나온 것은 최근 2년여간 두드러진 현상이다. 특히 이들 4명의 기업가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모두 오너 기업인이며, 국내시장뿐만 아니라 해외시장 비중이 높아 "글로벌 눈높이에 맞추려는 시각이 강하다"는 것이다. 3인이 미국 유학 경험이 있다. 야나이 회장만 유학 경험이 없는데, 과거 10여년 전 야나이 회장을 만났던 한 인사는 "업 자체가 글로벌 비즈니스이다 보니 유학은 안했어도 협상, 회의를 자유롭게 진행할 정도의 영어실력을 갖추고 있었다"고 기억했다.

다른 하나는 세금납부, 회계처리 투명화다. "털어봐야 나올 게 없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기업을 옭아매는 그런 시스템은 과거에 비해 약화됐다. 떳떳하니까 오너가 책임지고 저런 말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이들이 선봉에 서면서 급기야 게이단렌(일본경제단체연합회) 등 전통의 일본 재계 3단체가 올림픽 개막식에 불참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정권이 어떻게 생각하든 안중에도 없다. 정권의 말이 잘 먹히지 않는, 리더십의 한계에 봉착한 것이다.
스가 총리의 경제교사인 다케나카 헤이조 전 총무상이 재계를 향해 "여론의 분위기에 편승한 기회주의적 행태"라고 비판을 했지만, 이를 거드는 사람은 별로 없다. 변화의 시대다.
기업의 위기감이 커질수록 변화하지 않으려는 정치를 향한 이들의 돌직구는 당분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ehcho@fnnews.com 조은효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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