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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인찬의 특급논설] 홍남기를 위한 변명

책임 떠넘기는 정부는 미워도
집값 하락 경고엔 귀 기울여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부동산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에서 "지금은 추격매수보다 향후 시장상황, 유동성 상황, 객관적 지표, 다수 전문가 의견 등에 귀 기울이며 진중하게 결정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사진=뉴스1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부동산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에서 "지금은 추격매수보다 향후 시장상황, 유동성 상황, 객관적 지표, 다수 전문가 의견 등에 귀 기울이며 진중하게 결정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사진=뉴스1


[파이낸셜뉴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샌드백 신세가 됐다. 나라살림을 책임진 경제팀장이 이렇게 얻어맞는 건 처음 본다. 역시 부동산이 문제다. 홍 부총리는 28일 대국민담화에서 두가지를 말했다. 먼저 집값이 떨어질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부동산 시장 안정은 정부 혼자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며 "공유지의 비극을 막으려면 우리 모두가 공동체를 위해 지혜를 모아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언론과 야당, 시민단체는 일제히 홍 부총리를 때렸다. 부동산 실정의 책임을 국민한테 떠넘겼다며 목청을 높였다. 누구 때문에 집값이 올랐는데 이제와서 국민한테 책임을 미루냐는 거다. 윤희숙 의원(국민의힘)은 페이스북에 '국민들이 무책임해 이 사단을 만들었단 말인가'라는 글을 올렸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폭등한 집값 책임회피, 투기조장 홍남기 부총리 쫓아내라'는 성명서를 냈다.

정부는 입이 두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취임 100일 회견에서 "더 강력한 (부동산) 대책도 주머니 속에 많이 넣어두고 있다"고 했다. 2019년 11월 '국민과의 대화'에선 "부동산만큼은 자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엔 당시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다주택자 보유 물건을 30대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다)'로 받아줘 안타깝다"고 말했다. 하지만 집값은 대통령과 장관의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줄기차게 올랐다. 집값 상승률만 보면 과거 어떤 정부도 문 정부를 흉내내지 못한다.

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무신불립(無信不立)이다. 믿음이 없으니 정부가 무슨 말을 해도 씨알이 먹히지 않는다. 정부는 이솝우화 속 양치기 소년이 됐다. "늑대야" 소리치지만 이제 마을 사람들은 소년을 믿지 않는다. 거짓말을 밥 먹듯이 했기 때문이다.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니다. 만에 하나 정말로 늑대가 오면 어쩔 텐가. 신뢰 회복이 급하다. 홍 부총리의 말이 시장에서 먹히려면 임대차법을 손보는 등 성의 있는 조치가 먼저 있어야 한다. 실책을 인정한다면서 정책은 그대로 두면 누가 그런 정부를 믿고 따르겠는가. 신뢰 상실의 책임은 전적으로 정부에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홍 부총리의 집값 하락 경고에 귀를 기울일 것을 제안한다. 국민한테 책임을 떠넘기지 말라고 혼내는 것과 집값 하락 경고를 귀담아듣는 것은 별개다.

한국은행은 지난 6월 국회에 제출한 금융안정보고서에서 "부동산 가격을 중심으로 자산가격의 빠른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는 점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면서 "부동산 등 일부 자산은 상당히 고평가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주열 총재는 지난 15일 기자간담회에서 "주택가격은 상당히 높은 수준, 고평가돼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급기야 한은은 최근 집값이 실물경기와 물가상승에 미치는 영향은 값이 오를 때보다 내릴 때 더 크다는 보고서까지 냈다. 홍 부총리의 경고와 일맥상통한다. 한은은 양치기 소년이 아니다. 정부가 밉다고 한은과 이 총재의 말까지 흘려 듣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다.

정말 집값이 떨어질까. 누가 알겠는가. 다만 두가지 사례가 참고는 된다. 2000년대 초중반 오랜 저금리 기조에 힘입어 미국 경제가 펄펄 끓었다. 당시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증시·부동산 등 자산시장의 '비이성적 과열'에 경고음을 보냈지만 시장은 흘려들었다. 그러다 2008년 금융위기가 터졌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에 묶인 집값은 역대급 폭락을 기록했다.

경실련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값(82㎡·25평 기준)은 노무현정부 때 94% 오른 뒤 이명박정부(2008~2013년) 들어 13% 떨어졌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한국 경제가 휘청한 시기다. 이는 부동산 불패 신화에도 예외가 있음을 보여준다. 홍 부총리는 담화에서 "과거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서울 아파트 등 주택가격이 마이너스 9~18%의 큰 폭의 가격조정을 받은 바 있다"고 말했다.

한은 이주열 총재는 연내 금리인상을 강하게 시사했다. 미 연준이 테이퍼링(자산매입 감소)에 이어 금리 정상화 수순을 밟는 것은 시간문제다. 제로금리를 영원히 가져갈 순 없기 때문이다. 금리가 오르면 빚을 내 집을 사는 게 아무래도 부담스럽다.


집값 하락을 예언하는 둠세이어(Doom Sayer)가 되고 싶다거나 홍 부총리를 두둔하려는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다. 다만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는 격언은 잊지 않았으면 한다. 유비무환. 미리 대비하면 어떤 위기도 능히 대처할 수 있다. 그러니 부동산 정책은 미워도 경고는 무시하지 말자.

[곽인찬의 특급논설] 홍남기를 위한 변명


paulk@fnnews.com 곽인찬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