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중대재해 판단할 법조계 "면책범위 모호, 수정 불가피"

이환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8.04 18:27

수정 2021.08.04 18:27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도 허술
"적정이라는 말로 뭉뚱그려
명확한 판단 불가능한 불능법"
법 시행후 위헌소송 가능성 커
내년 1월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을 두고 법조계에서 벌써부터 대혼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산업현장에서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업주나 경영자를 처벌하게 되는데 그 기준이 '적절한 안전조치'를 했는지 등으로 기준이 불명확해서다. 유죄를 피하기 위한 '면책범위'와 '유죄범위'조차 명확하지 않다. 법조계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출발부터 '죄형법정주의'나 '명확성 원칙'을 위반할 소지가 있다고 지적한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중대재해처벌법은 7월 12일부터 8월 23일까지 입법예고를 거쳐 내년 1월 27일부터 50인 이상 사업장에서 시행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업현장에서 사망사고 등이 발생하면 사업주나 경영책임자 및 법인을 강력하게 처벌하는 법이다.
직원 사망 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 법인에는 50억원 이하 벌금이 부과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제정 초기 단계부터 기존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복규제로 인한 과잉처벌 이슈가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높은 산재사고 사망률, 기업들의 안전조치 미이행 관행, 노동계의 요구 등이 작용해 졸속 입법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특히 2020년 3월 38명이 사망한 인천 냉동물류창고 사고가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문제는 입법예고 중인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에서조차 처벌 범위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행령은 '적정인력 배치' '적정예산 편성' 등을 사업주의 의무로 규정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시행령이 모호해 기업주나 사업주 입장에서는 안전조치 위반을 피하기 위한 '면책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사고 예방을 위한 적정하지 않은 예산의 규모가 얼마인지 알 수 없다"며 "법을 처음 제정할 당시부터 해당 기준을 명확히 하는 것이 불가능한 '원시적 불능' 상태"였다고 말했다. 문기섭 법무법인 세종 고문은 "법 자체가 모호해 산재 발생 후 검찰의 고발과 법원의 판결 등을 통해 판례를 쌓고, 법률을 수정하고 보완하는 과정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결국 기업 입장에서는 내년 1월 중대재해법 시행에 앞서 필요 이상으로 비용을 투입하거나 안전조치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대기업은 안전·보건 비용 투자를 감당할 수 있지만 50인을 겨우 넘는 중소형 기업은 이마저도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 7월 14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따른 산업군별 혼란상황과 관련, 입장을 표명했다. 가령 조선업의 경우 열사병 환자가 매년 발생하는데 기준이 불명확해 매년 대표가 처벌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경총 관계자는 "현재 개별 기업과 업종 협회별로 기업들의 의견을 취합해 입법 예고기간 종료 전인 8월 셋째 주 정부에 공동건의서를 제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중대재해법 시행시점이 법률에 내년 1월 27일로 정해져 있어 추가로 시행을 유예하거나, 기업에 따라 단계적으로 시행하는 방안도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


박 교수는 "중대재해법이 급하게 만들어지면서 해당 법의 적용과 문제점이 사법부로 떠밀려진 상황"이라며 "법 시행 이후 기업들이 위헌소송(헌법소원)을 제기하거나 법원에서 위헌법률심사를 요청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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