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회화와 조각 경계에 서다… 최수앙 '언폴드'展[이 전시]

박지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8.05 18:59

수정 2021.08.05 18:59

최수앙 '손'(2021년) 학고재갤러리 제공
최수앙 '손'(2021년) 학고재갤러리 제공

"조각가의 태도로 회화의 재료를 다뤘다. 회화와 조각, 그 경계를 짓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전시장을 들어서자마자 정면에 손과 팔 뼈 모형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최수앙의 작품 '손'이다. 중고생 시절 학교 과학실에서 본 것 같은 모습인데 세심하게 들여다보면 구조가 다름을 눈치챌 수 있다. 형상은 갖췄으나 기능하지 못하는 팔 뼈다.
전시장 깊숙이 들어가면 해골에 오색 빛의 근육만 입은 인체 표본과 같은 조각들이 다양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가운데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향해 반응하고 있는 모습이다.

최수앙 작가는 오랜 시간 인체를 소재로 작업해왔다. 르네상스 시대의 온전한 인체의 형상 너머 그가 만들어낸 인체 조각 안에는 심리가 들어있었다. 인체의 한 부분이 과장돼 크게 드러나기도 했고 사라져버리기도 했으며 머리와 팔, 다리가 뭉게진 형상을 선보이기도 했다. 머리 위에서 나뭇가지가 뻗어나가고 입술 혹은 귀만 남은 두상, 손의 형태만 모아놓기도 하는 등 독특한 극사실주의 작품들을 선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에 남아 있었던 것은 표피, 살 덩어리였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는 작품들을 내놨다. 그가 이번에 집중한 것은 피부 안 인간의 근육과 뼈, 이른바 내면의 구성 요소다. 이러한 변화의 계기는 2018년 여름 양쪽 팔 수술을 하면서부터였다. 오랫동안 작업을 하면서 양손에 과부하가 왔기 때문이다. 최수앙은 "당시 외과수술로 1년 넘게 활동을 중단했는데 수술로 인해 물리적으로 손이 묶이면서 습관적이었던 것들을 못하게 됐고 오히려 열린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하며 수없이 살펴봤던 '에코르셰'에 다시 주목하기 시작했다. 에코르셰는 피부가 없는 상태로 근육이 노출돼 있는 인체나 동물의 그림이나 모형을 말한다. 이 안에서 최수앙은 뼈와 근육의 움직임과 형태만으로도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발견했다.이번 전시에는 새로운 인체 조각 외에도 다양한 회화 작품들도 공개됐다. 아름다운 색감을 뽐내는 수채 연작 '프래그먼츠'의 모티브 역시 근육과 뼈다. 최수앙은 "작업을 위해 해부학 자료 속 신체의 일부분들을 보다가 각각의 부분들을 떼내어 재조합하고 다 다른 색을 입혀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전시장 중간에 서 있는 회화 조각들도 눈에 띈다. 뼈와 근육을 일일이 해체한 최수앙은 이제 형태의 본질인 도형의 세계로 다시 들어갔다.
오일을 먹여 반투명하게 만든 종이의 양면에 사각과 삼각, 반원 등 도형을 그려냈는데 양쪽을 번갈아 보면 뒷면의 모습이 앞면으로 비치고 교차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최수앙은 "나는 조각가이기 때문에 입체를 상상하는 경우가 많다"며 "신체 구성 요소가 몸을 만드는 것처럼 각각의 면이 입방체를 만드는 전개도에 대해 생각하게 됐는데 사실 이 전개도로 실제 무언가 온전한 입방체가 만들어지지 않을 수 있다.
그저 몸을 움직여 바라보며 작품의 모습을 상상하길 바랐다"고 말했다. 전시는 29일까지 학고재 갤러리.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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