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이 전시] 현남 '무지개의 밑동에 굴을 파다'展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8.09 15:45

수정 2021.08.09 15:45

10월 3일까지 아뜰리에 에르메스
현남 개인전 '무지개의 밑동에 굴을 파다' 전시 전경 /사진=아뜰리에 에르메스
현남 개인전 '무지개의 밑동에 굴을 파다' 전시 전경 /사진=아뜰리에 에르메스
미래 시대의 바벨탑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까. 마치 일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에 등장할 것 같은 탑의 조각들이 전시장에 펼쳐졌다. 대폭발이 일어난 후 모든 것이 파괴된 곳에 남은 폐허와 같은 성과 탑들의 형상 같다. 물감이 녹아 흘러 굳어버린듯한 외양은 이것이 조각인가 의심을 불러 일으킨다. 하지만 조각적 요소는 내부에 있다. 아기자기한 기포와 구멍 속에 또 다른 미니어처 세계가 구현됐다.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뒤집어진 세계다.

현남 '아토그(고딕)' (2021년) /사진=아뜰리에 에르메스
현남 '아토그(고딕)' (2021년) /사진=아뜰리에 에르메스
1990년생 MZ세대 조각가 현남은 겉을 깎아내는 것이 아닌 안을 파내는 방식으로 그만의 세계를 만들어냈다. 밖에서 깎아 다듬어가는 조각의 기존 문법을 정반대로 뒤집은 것이다. 소재 역시 대리석과 돌이 아닌 싸구려 부자재다.

한편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작가는 도시 건축의 표피와 피하조직을 구성하는 재료에 대해서도 관심이 높았다. "수직적인 도시의 구조물에 관심이 많았다"고 밝힌 현남 작가는 현실 속에서도 도시를 다니며 수직적인 형태의 구조물들을 포착하는 작업도 병행해왔다. 도시의 곳곳을 다니며 그가 찾아낸 이 시대의 첨탑은 교회의 십자가와 휴대폰 무선 통신을 위한 기지국 안테나들이었는데 이를 바탕으로 그만의 첨탑을 만들었다.

현남 '아토그(전파자)' (2021년) /사진=아뜰리에 에르메스
현남 '아토그(전파자)' (2021년) /사진=아뜰리에 에르메스
현남은 현대 건축에서 가장 저렴한 부자재 중 하나인 폴리스티렌 '아이소핑크'를 굳히고 그 안을 다양한 도구로 파내는 채굴 작업을 한 뒤 안에 시멘트, 에폭시를 부어넣는 방식의 주물 작업을 진행해왔다. 작업을 진행하는 내내 작가는 자신이 만들고 있는 작품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지만 실제 내부에서 어떤 화학작용이 이뤄지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작품들의 모습은 때론 예상치 못한 흘러내림과 기포를 갖게 됐다. 위에서 파이고 캐스팅된 조각들은 완성되었을 때 거꾸로 뒤집어져 세워진다.

작가는 이 '뒤집어짐'에 주목했다.
20세기 초 러시아의 작가 말레비치가 만든 건축 모형 연작 '아키텍톤 고타'와 자연에서 채취된 수석의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현남은 말레비치의 순백의 매끈한 입방체 이미지를 네거티브하게 뒤집은 어두운 미래도시의 첨탑과 고층 건물들을 통해 모든 것이 가능한 신기루같은 디지털 세상과 뒤섞인 현대의 새로운 풍경과 자연을 표현해냈다. 그가 꿈꾸는 뒤집어진 세상은 숨기려 하면 드러나고 드러내고자 하면 숨겨지는 세상이다.
그곳에서 절망속에 빠진 우리는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전시는 10월 3일까지 아뜰리에 에르메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