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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아름다운 존재" 간호사의 기도가 내 삶을 바꿨다 [Guideposts]

정순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8.10 18:50

수정 2021.08.10 18:50

가정폭력 피해 위탁가정 ‘은총의 천사들’
리사 카사레스
결혼 직후 시작된 남편의 폭력
심하게 다쳐 찾아간 병원에서
밤새도록 응급실 지켰던 간호사
"당신은 아름답고 용감해요"
그 말에 용기 얻어 위탁가정 시작
14년 후 지역단체 행사에서
연사로 참석했다 우연히 다시 만나
모두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었을까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 마데라에서 매맞는 아이들을 위한 위탁가정을 운영하고 있는 리사 카사레스(가운데)는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던 가정폭력 피해자다. 카사레스는 '은총의 천사들'이라는 이름의 위탁가정에서 100명이 넘는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아이들을 친가정과 재결합시켜주거나 아이들에게 영구 가정을 찾아주는 것이 그녀가 하는 일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 마데라에서 매맞는 아이들을 위한 위탁가정을 운영하고 있는 리사 카사레스(가운데)는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던 가정폭력 피해자다. 카사레스는 '은총의 천사들'이라는 이름의 위탁가정에서 100명이 넘는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아이들을 친가정과 재결합시켜주거나 아이들에게 영구 가정을 찾아주는 것이 그녀가 하는 일이다.
'은총의 천사들(Angels of Grace)'. 2000년에 내가 설립한 위탁가정 에이전시의 이름이다.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2014년, 지역 로터리클럽에서 우리 기관에 관심을 보여 나를 연사로 초청했다. 살짝 긴장되었지만 우리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았다.

'은총의 천사들'은 위험한 환경에 놓인 아이들을 안전하고 양육환경이 좋은 곳과 연결해 주는 일을 하고 있다. 형제자매가 함께 살 수 있도록 하고, 아이들을 친가정과 재결합시키거나 아이들에게 영구가정을 제공하는 일이 우리 기관의 최우선 과제다.

경찰관의 순서가 끝나면 내 차례였다. 내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리는 동안 내 기억은 수년 전의 어느 날 밤으로 돌아갔다. 그날 밤, 필사적으로 안전한 장소를 찾던 사람은 바로 나였다. 나는 분주하게 움직이는 시립병원의 응급실에 홀로 앉아 있었다. 몸이 욱신거렸다.

갈비뼈가 부러져 숨쉬기가 힘들었다. 입술이 터져 입에서는 피 맛이 났다. 얼굴은 붓고 멍이 들었다. 내 모습을 언뜻 보니 손자국이 눈에 띄었다. 남편의 것이었다.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한 장본인.

응급실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술집에서 시비가 붙어 다친 제복 차림의 해군 두 명. 자전거를 타고 가다 차에 치인 아이. 천식 발작. 가슴 통증. 약물 과다복용. 의료진은 한계에 다다랐다. 특히 동시에 여러 명의 환자를 돌보고 있는 한 간호사가 눈에 띄었다. 그녀는 환자 한 명 한 명의 상태를 확인하고 그들을 안심시켰다.

"안녕하세요. 성함이 리사 맞나요? 저는 제나라고 해요. 괜찮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최대한 빨리 다시 올게요."

그녀가 나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분은 굉장히 똑똑하고 유능하며 강인한 사람 같아.'

나는 생각했다. 나는 그중에 하나도 갖추고 있지 않았다. 절대 그렇게 될 수 없을 것이다. 나에게도 나를 의지하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네 살 된 아들과 두 살 된 딸. 그리고 뱃속에 하나. 혼자서 어떻게 이 아이들을 돌보지?

그랬던 내가 지금 로터리클럽에 앉아 있다니,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경찰관은 어린 시절부터 간직한 꿈을 이루고 봉사의 삶을 살아가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유년 시절부터 나에게 꿈꾸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그저 부모님과 교회가 계획한 길을 충실히 따랐다. 그분들은 모두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말했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 결혼했다. 모두가 내가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기를 간절히 바랐다. 결혼하자마자 남편의 손찌검이 시작되었다. 결혼 생활을 잘해 나가는 것은 나의 의무였다. 그렇게 가르침을 받았다. 그게 하나님의 뜻이었다.

나는 참고 견뎠다. 가족을 위해, 하나님을 위해. 내가 셋째를 가졌을 때, 친구 하나가 폭력적인 남편의 손에 죽는 사건이 발생했다. 친구의 아이들은 졸지에 엄마를 잃었다. 나는 내 아이들의 손을 잡고 친구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이게 하나님께서 친구에게 원하셨던 것일 리가 없다. 자애로운 하나님께서 나에게 원하셨던 것일 리도 없다.'

나는 생각했다.

남편이 다시 나를 공격하자 그길로 아이들을 데리고 목욕가운 차림으로 집을 나왔다. 새벽 3시,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텅 빈 거리에서 공중전화를 찾아 한 여성쉼터에 전화를 걸었다.

그들은 나를 병원으로 보냈고, 그동안 내 아이들을 돌봐주었다. 그렇게 해서 응급실에 앉아 거기 있는 환자들을 전부 돌보고 있는 제나를 보게 된 것이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흘러 안전한 지역 로터리클럽에 앉아 연단에 설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지금도 그 당시 내가 얼마나 공포에 떨었는지 기억이 난다. 나는 집을 나오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래에 직면하는 일은 그보다 훨씬 더 불가능한 일처럼 보였다.

제나는 밤새도록 내 상태를 확인했다. 다른 환자들은 하나둘 응급실을 떠났다. 결국 나는 병실로 옮겨졌다. 병실에 자리를 잡고 나자 제나가 나를 찾아왔다.

"괜찮으신지 보려고 왔어요."

그녀가 말했다. 제나는 자신의 두 손으로 내 얼굴을 감싸고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마치 중요한 말을 하려는 것 같았다.

"당신은 아름다워요. 똑똑하고 용감해요. 이건 단지 잠시 스쳐가는 시련일 뿐이에요. 저희가 당신을 건너편으로 데려다줄게요."

그녀가 말했다.

나도 그 모든 것을 갖춘 사람이 되어야 했다. 내 아이들과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나는 제나가 아니었다. 나는 강인하지도 용감하지도 않았다. 엉겁결에 그녀의 손을 잡았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나는 이렇게 속삭였다. 제나는 주저하지 않았다.

"주여, 리사를 돌봐주시옵소서. 당신의 천사들을 보내 그녀를 보살피게 하소서. 당신의 팔로 그녀를 감싸 주시고 그녀를 보호하소서. 그녀에게 지혜와 통찰력을 주시옵고, 그녀가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인지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제나의 기도를 떠올리고 있을 때 경찰관의 연설이 끝났다. 긴장감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기운이 났고 기대감이 차올랐다. 그날 밤 제나가 나를 위해 기도해 주었을 때처럼. 그 어떤 일에도 맞설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결국 나를 보살펴 주는 천사들이 있으니까.

메모지를 순서대로 정리한 다음 로터리클럽 청중 앞에 섰다. 그리고 '은총의 천사들'이 하는 일을 설명했다. 내가 어떻게 하루 24시간 상시대기 중인지, 나를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아이들을 데려올 준비가 얼마나 철저하게 되어 있는지.

"처음 만나는 모든 아이에게 제가 맨 처음 하는 말은 이겁니다. 그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얼마나 안전한 곳에 있는지. 그리고 이것은 잠시 스쳐가는 시련일 뿐이라는 것을 확신시키고, 우리가 그들을 건너편으로 데려가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나는 내가 만난 아이들, 우리가 만들어 낸 가족들, 곧 있을 기금 마련 연례행사에 대해 이야기했다. 청중은 우리가 하는 일에 열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몇몇은 연설이 끝난 뒤 나를 찾아와 질문을 하기도 했다. 그중 낯익은 여성의 얼굴이 보였다. 하지만 누군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았다.

"선생님 직전에 연설했던 경찰관이 제 남편이에요. 그래서 저도 오늘 여기 오게 되었는데, 선생님의 기금 마련 행사에 어떤 식으로든 돕고 싶어요."

그녀가 말했다. 어디선가 들어 본 목소리였다. 생각이 났다. 내 인생에서 가장 무서웠던 밤, 분주한 응급실에서 들었던 바로 그 목소리였다.

"선생님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내가 물었다.

"제나 파머예요."

"혹시 간호사로 일하신 적 있으세요?"

"네. 오래된 시립병원에서 트라우마 전문 간호사로 일했어요."

"제나, 혹시 응급실에 왔던 조그만 멕시코인 여자 기억하세요? 남편한테 심하게 맞고 왔던…."

"그녀를 위해 기도도 했지요. 그러니까, 선생님을 위해서요!"

그녀가 말했다. 여태껏 나는 친절한 말로 미래에 맞설 수 있는 용기를 준 간호사를 내게 보내 주신 것에 대해 하나님께 늘 감사드렸다. 그 말은 수백 명의 아이들에게 내가 전한 말이기도 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천사들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그녀에게 직접 확인시켜 주기 위해 우리 두 사람을 다시 만나게 하셨다.

'가이드포스트(Guideposts)'는 1945년 노먼 빈센트 필 박사에 의해 미국에서 창간된 교양잡지로, 한국판은 1965년 국내 최초 영한대역 잡지로 발간되어 현재까지 오랜 시간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오고 있습니다.
가이드포스트는 실패와 좌절을 딛고 다시 일어선 사람들, 어려움 속에서 꿈을 키워가며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들의 감동과 희망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런 감동의 이야기를 많은 분들의 후원을 통해 군부대, 경찰, 교정시설, 복지시설, 대안학교 등 각계의 소외된 계층에 전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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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가이드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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