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차관칼럼

[차관칼럼] 공무원 채용, 시험전문기관 필요하다

정상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8.15 18:12

수정 2021.08.15 18:12

[차관칼럼] 공무원 채용, 시험전문기관 필요하다
'시절인연 시절그림'이라는 미술 에세이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모든 꽃과 나무를 주어진 화분에 심을 수는 없다. 그럴 때는 과감한 행동이 필요하다. 기존의 것만 고집하지 않고 새 화분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민정기 화가의 '유몽유도원'처럼 옛 명화를 현대적 미감으로 재해석한 작품을 '화분의 분갈이'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인사혁신처는 '우수 인재의 공정하고 투명한 선발'이라는 꽃을 피우기 위해 공개 경쟁채용과 경력 경쟁채용이라는 두 종류의 화분을 만들어 쓰고 있다.
화분에 심은 꽃이 활짝 피고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잘 키워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중요한 점은 꽃과 나무의 생장속도가 갈수록 빨라져 지금의 화분으로는 실한 열매를 맺기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래학자 피터 디아만디스는 수확가속 법칙이 일상화되어 2030년에는 교육, 엔터테인먼트, 헬스케어 등과 같은 다양한 분야에서 지금의 시스템이 남아있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채용도 마찬가지다. 주요 대상인 밀레니얼세대는 이미 상상과 소통의 가상세계인 메타버스에 살고 있다.

공정성에 대한 눈높이도 빠르게 높아지고 있고,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며 비대면 시험 또한 민간 중심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처럼 변화된 환경에서는 채용혁신이라는 과감한 행동이 필요하다. 채용혁신은 시대를 관통하는 '채용철학'을 현 시대 채용제도에 담아낸다는 점에서 화분의 분갈이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채용혁신은 채용방식 전환에서부터 시작된다. 대규모 인원이 1년에 한 번 같은 날짜에 한자리에 모여 시험을 보는 방식이 계속 유효할 것인지 고민이 필요한 시기다. 산업 성장기에는 일단 채용한 뒤 교육해 다양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범용 인재'로 양성했다면 지금은 필요한 시점에 즉시 투입 가능한 열정과 다양한 경험을 쌓은 '준비된 인재'가 필요하다.

현재 각 부처에서는 경력채용 방식으로 전문인력을 채용하고 있다. 하지만 기관장이 바뀔 때마다 담당자가 교체되어 채용 전문성을 쌓을 기회가 부족하고, 심지어 최근 지자체에서 시행한 일부 시험에서는 합격자가 뒤바뀌는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필자는 채용시험을 전담하는 시험 전문기관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시험 전문기관은 기차와 승객이 만나는 플랫폼처럼 수요자와 공급자 간 자유로운 만남의 장을 만들어 그 만남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한다. 각 기관 주도로 채용시험을 실시해 기관별 수요에 부합하는 맞춤형 채용을 활성화하되, 시험 전문기관에서는 이를 통합적으로 지원하고 관리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시험운영의 공정성과 투명성은 물론이고, 전문성과 책임성 또한 담보될 수 있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논의되는 사항은 아니다. 이미 미국은 인사관리처(OPM)에서 온라인 인재평가 플랫폼을 운영하며, 캐나다는 인사위원회(PSC) 산하 시험연구소(PPC)를 두어 부처 채용시험을 지원하고 있다.


신규 공무원은 향후 20년 이상의 미래를 이끌어 갈 인재다. 우리나라 미래가 달려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공개경쟁채용, 경력경쟁채용이라는 두 개의 화분에서 각각 꽃이 피어나기를 지켜볼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공무원 채용의 공정성과 전문성이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에서 국가와 지방 그리고 공공기관을 모두 심을 수 있는 새로운 화분인 시험 전문기관으로 분갈이를 할 때가 됐다.

김우호 인사혁신처장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