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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영 칼럼] 5년 내내 탈원전 신기루 좇기

구본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8.16 18:20

수정 2021.08.16 19:51

비과학적 정책에 집착하면
에너지 안보도 탄소중립도
다 놓치는 건 불보듯 뻔해
[구본영 칼럼] 5년 내내 탈원전 신기루 좇기
올여름 전력 성수기를 온 국민이 힘겹게 넘기고 있다. 폭염 속에 예비전력은 줄곧 간당간당했다. 안정적 전력공급 기준인 예비전력 10GW를 밑도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그래서 정부도 일찌감치 공공기관에 에어컨 사용 자제령을 내렸다. 산업체에 전력 피크타임에 전기 사용을 줄여달라고 요청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이런 고육책도 블랙아웃(대정전) 우려를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던 모양이다.
정부와 한전 등 전력당국도 이를 모를 리 없다. 오죽하면 탄소중립이란 국정목표 달성을 위해 가동 중단했던 석탄발전소들을 다시 돌렸겠나. 그것도 모자라 신월성 1호기(1GW) 등 원전 3기를 서둘러 가동했으니….

비상 사이렌은 지난달 중순부터 울렸다. 전력예비율이 안전권인 10% 선을 수시로 위협받으면서다. 심지어 서울의 코로나19 선별진료소가 폭염·폭우로 문을 닫기도 했다. 짧은 장마 후 무더위가 찾아온 7월 하순부터 우려는 더 커졌다.

그런데도 여권은 "전력 수급에 아무런 문제가 없고 만약의 사태 대비책도 있다"(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정책위 수석부의장)고 했다. 특히 "탈원전 정책과 엮어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공격하는 소재로 사용한다"고 언론을 탓했다. 하지만 정부는 당시 전국 13개 청사에 전력 소비절약 공문을 보냈다. 적폐 취급하던 원전도 차례로 재가동했다.

이는 정부의 전력수요 예측부터 엉터리였다는 얘기다. 지난 연말 발표한 9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에서 올여름 최대 전력수요를 90GW로 전망했지만, 7개월 만에 94GW로 수정했으니 말이다. 탈원전을 서두르느라 전력수요를 낮춰 잡은 '통계 마사지'의 후유증을 톡톡히 치른 꼴이다.

더욱이 엄청난 보조금을 쥐여주며 진흥한 신재생에너지가 별무효과란 사실이 뼈아프다. 태양광과 풍력 등이 결정적 시기에 제구실을 못하면서다. 이는 문재인정부의 탈원전정책이 애초 신기루 좇기였음을 뜻한다. 월성1호기 경제성 평가를 조작하면서까지 집착했지만 탈원전에 따른 전력공백을 메울 대안은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호기롭게 내건 문 정부의 탈원전 깃발이 너덜너덜해진 지금, 이솝우화 한 토막이 떠오른다. 그리스의 한 5종경기 선수가 "원정 갔던 로도스섬에서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고 뻥을 치자, 옆 사람이 "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뛰어보라"던 장면 말이다. 현장에서 입증할 수 없는 약속이나 정책은 한낱 백일몽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비현실적 탈원전 정책을 계속 밀어붙인다면? 에너지 안보도, 탄소중립도 다 놓칠 게 뻔하다.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해 대통령 직속 탄소중립위원회가 낸 보고서에서 불길한 그림자가 어른댄다. '에너지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협의회'(에교협)는 11일 탄중위의 3가지 시나리오 모두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했다.

에교협의 판단 근거를 일일이 소개할 필요도 없다. 모자라는 전력을 중국과 러시아에서 확보한다는 발상 자체가 탄소중립 로드맵의 공허함을 웅변하고 있어서다.
탈원전한다며 중국의 원전 전기를 수입한다니 이런 아이러니가 어딨나. 탄소중립을 이룬다며 러시아 화력발전에 기대려는 것도 황당하다. 두 나라 전기를 끌어오려면 해저 케이블이나 북한을 경유한 송전망을 깔아야 한다.
에너지 안보를 포기한 채 떡 줄 사람은 꿈도 꾸지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격이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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