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정치

탈레반과 거리 두기 고민하는 서방 세계 '일단 대화'

박종원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8.18 11:36

수정 2021.08.18 11:36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이 17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AP뉴시스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이 17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AP뉴시스


[파이낸셜뉴스] 지난 20년 동안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지원했던 서방 국가들이 아프간을 점령한 탈레반과 새로운 관계 설정을 위해 고심하고 있다. 이미 아프간 상황에 극도로 피로감을 느꼈던 각국은 일단 탈레반이 상식적으로 행동한다면 대화하겠다는 뜻을 내비쳤으며 탈레반 역시 일단 겉으로는 국제 기준에 맞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도이체벨레(DW) 방송에 따르면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의 호세프 보렐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는 17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열고 "탈레반이 전쟁에서 이겼고 우리는 그들과 대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삐 쥐면서 대화
보렐은 "우리는 경계를 유지하면서 아프간에 실존하는 권력 기관들과 협상하겠지만 이는 탈레반을 아프간 정부로 정식 인정한다는 뜻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현지 여성과 소녀들을 보호하는 등 모든 것을 위해 탈레반과 대화해야 한다"며 연락을 유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보렐은 "우리는 조건부로 아프간에 대한 지원을 계속하고 인권 보호를 위해 우리가 가진 영향력을 활용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인도적인 지원은 계속하겠지만 아프간 개발원조 자금은 끊겠다며 탈레반이 이를 얻으려면 유엔 결의에 따라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미국 역시 조심스럽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전보좌관은 17일 브리핑에서 탈레반을 정부로 인정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말했다. 그는 "이는 궁극적으로 탈레반이 전 세계에 그들이 어떤 세력이고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 것인지 보여주는 방향에 달렸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아프간 카불에서 미국인 철수를 위해 탈레반과 대화하고 있다며 탈레반쪽에서 공항까지 안전한 통행을 보장했다고 말했다. 프랭크 매캔지 미군 중부사령관은 같은날 발표에서 탈레반 고위급 인사들과 만나 미국인 철수를 방해하면 공격한다고 경고했다고 전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17일 소식통을 인용해 미 재무부가 미 은행에 예치중인 아프간 정부 자금을 동결했다고 보도했다.

미 백악관과 영국 총리실은 같은날 성명을 내고 주요7개국(G7) 정상들이 다음주 아프간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화상으로 정상회의를 개최한다고 발표했다. G7 국가 중 하나인 캐나다의 쥐스탱 트뤼도 총리는 탈레반을 향해 "정당하게 선출된 민주 정부를 무력으로 대체한 공인 테러 단체"라고 비난했다. 이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셰이크 타밈 빈하마드 알타니 카타르 국왕은 아프간의 평화로운 권력 이양을 촉구하는 공동 성명을 내놨다.

■겉으로는 온건한 탈레반
이슬람 원리주의를 추종하는 탈레반은 일단 표면적으로 개방적인 정부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17일 아프간 카불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아프간 전쟁이 끝났다고 말했다. 그는 사면령이 선포된 만큼 이전 정부나 외국 군대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복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탈레반은 이슬람법의 틀 안에서 여성의 권리를 존중할 것"이라면서 여성의 취업과 교육도 허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과거 탈레반은 이슬람 종교법을 적용해 여성들의 사회활동을 억제했으며 외출할 때는 여성에게 전신을 가리는 복장인 부르카 착용을 강요했다. 다른 아랍 사회에서는 일반적으로 얼굴과 머리카락만 가리는 히잡을 사용한다.

카타르의 탈레반 정치국 대변인 수하일 샤힌은 17일 인터뷰에서 "부르카만이 히잡은 아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히잡이 있다"고 밝혀 부르카를 강요하지 않겠다고 시사했다. 탈레반은 기자들이 이슬람 가치를 지키는 한에서 민간 언론 활동을 허용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탈레반의 약속이 지킬 지 확신할 수 없다.
미 폭스뉴스는 이날 보도에서 탈레반이 이번주 들어 여학생의 학교 복귀를 촉구했으나 아프간 북부 타하르주 타로칸에서 부르카를 입지 않고 등교하던 여학생이 대낮에 시내 한복판에서 살해당했다고 전했다. 폭스는 아프간 관계자들을 인용해 탈레반이 카불을 차지한 이후 곳곳에 검문소를 세워 공항으로 탈출하려는 시민들을 막고 때린다고 전했다.
관계자는 탈레반이 카불 점령 이후 무단으로 가택을 수색하면서 아프간 정부 부역자를 색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