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노주석 칼럼] '워게임' 한미 연합훈련 단상

노주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8.18 18:30

수정 2021.08.18 18:30

아프간 패전에 월남 오버랩
45년 전 판문점 도끼 만행
과연 北은 얼마나 달라졌나
[노주석 칼럼] '워게임' 한미 연합훈련 단상
내 군 경력에서 가장 빛나는 날은 한미연합 팀스피리트 훈련 참가였다. 졸병이어서 뭐가 뭔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채 고참 꽁무니만 따라다녔지만 북한 지도자를 납치하거나 참수하는 임무를 수행한 우리 부대와 동료들이 자랑스러웠다. 늘 뿌듯했다. 지금도 군대 꿈을 꾸면 단골로 등장할 정도다.

기자 시절, 매년 8월이면 을지포커스렌즈 연습에 정부 출입부처가 일사불란하게 대비하는 걸 취재했다. 정부기관과 지자체까지 참여해 실시하던 준비태세 연습이었다.
흐물흐물하던 공무원들이 군기가 바짝 든 모습으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든든했다. 그때도 이념과잉 시대였고, 불필요한 이념의 광기에 질렸지만 연습과 대비라는 명분에 기꺼이 동의했다.

한미연합훈련은 1954년 포커스렌즈 연습을 처음으로 포커스 레티나, 프리덤 볼트, 팀스피리트, 연합전시증원, 독수리연습, 키리졸브, 을지프리덤가디언 등 다양한 명칭으로 이어졌다. 2018년 1차 북·미 정상회담 때 중지 및 유예 방안이 나온 이후 지리멸렬하다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기 일보 직전이다.

한미연합훈련 하반기 본훈련이 지난 16일 시작해 오는 26일까지 진행된다. 꼭 필요한 부대의 지휘관과 참모만 참가해 전시 부대 지휘절차를 익히는 '워게임'이다. 실기동훈련 없이 컴퓨터 시뮬레이션 방식의 실내 지휘소 연습으로 대체됐다. 북한의 핵무기 사용을 가정한 훈련은 단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안다.

한미연합훈련이 소멸해간다. 한미 동맹의 소멸을 보는 듯하다. 국내정치에 휘둘리고 있다. 국제정치에서도 중국과 러시아의 보호막이 어른거린다. 북은 통신선 복원이라는 미끼와 위협적인 말 몇 마디를 던져 극도의 남남 갈등과 한미 갈등을 조장하는 데 성공했다.

19세기 프로이센의 군사전략가 클라우제비츠는 '전쟁론'에서 막후 협상을 통해 국가 이익을 추구하는 것도 전쟁이라고 역설했다. 적국과의 막후 협상은 비군사적 전쟁행위의 일종이다. 우리는 한미연합훈련 축소·중단·취소와 미군 철수라는 불가역적 협상을 벌이는 셈이다. 비대칭 핵보유국 북한의 궁극적 목표는 미군 철수이기 때문이다.

클라우제비츠는 또 "어떤 전쟁이든 국내정치의 연장이고, 또 다른 수단"이라고 설파했다. 전쟁이 일어나게 하는 것은 정치이므로 군사적 관점을 정치적 관점에 종속시켜야 한다는 얘기다. 군사가 정치의 수단이라는 본령에서 벗어나면 전쟁이 발발할 수 있다. 한마디로 한미 훈련은 미국엔 군사이지만, 한국엔 정치다. 한미 훈련 축소와 미군 철수는 미국엔 군사옵션에 불과하지만, 한국엔 치명적 안보위기를 초래한다는 걸 알아야 한다.

탈레반 무장세력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철수선언을 틈타 전쟁 20년 만에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대통령궁에 탈레반 기를 꽂았다. 탈레반의 재집권을 지켜본 많은 사람들은 1975년 월맹의 사이공 접수와 월남 패망을 떠올렸다. 1973년 월맹과 평화협정을 맺은 미군은 '그때도' 철군했다.
125만 대군을 거느린 월남 정부군은 불과 2년 만에 무너졌다. 한미연합훈련 축소가 미군 철수로 이어질까 염려스럽다.
지금으로부터 45년 전인 1976년 8월 18일은 '판문점 도끼 만행사건'이 일어난 날이다. 과연 북한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joo@fnnews.com 노주석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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