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경찰청,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붙잡아 국내 송환
■ 공소시효 끝난 줄 알고 인터뷰…“1999년 사건 실체 드러날까”
[제주=좌승훈 기자] 22년 전 제주에서 발생한 변호사 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가 캄보디아에서 붙잡혀 국내로 송환됐다. 제주경찰청은 20일 살인교사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된 김모(55)씨가 지난 18일 캄보디아에서 국내로 송환돼 조사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김씨가 경찰 조사에서 그동안 감춰왔던 진실을 말할 것인지, 또 이번 수사를 통해 사건의 실체가 드러날지 주목되고 있다.
지난 18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에서 코로나19 검사를 받은 김씨는 같은 날 오후 제주국제공항에서 음성 판정을 받았으며, 제주경찰청으로 압송됐다. 다만, 경찰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김씨를 격리한 상태에서 조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은 19일 오후 10시쯤 김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제주지방법원은 21일 오전 11시부터 김씨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벌일 예정이다.
김씨는 1999년 11월5일 제주시 삼도2동 제주북초등학교 인근 삼거리에 세워진 승용차에서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된 이 모(당시 45세) 변호사 살해를 교사한 혐의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해 서울지검과 부산지검 검사를 거쳐 1992년 고향 제주로 내려와 변호사 사무실을 연 이 변호사는 당시 예리한 흉기로 가슴과 배를 찔리고 왼쪽 팔꿈치 부분도 흉기에 관통당한 채 숨져 있었다.
이미 2014년 공소시효가 지난 상태이지만, 공소시효 만료 이전에 해외에 도피 중이던 사건 용의자가 붙잡히면서 사건의 실체가 드러날 지 관심을 끌고 있다.
당시 부검 결과, 직접적인 사인은 심장 관통에 의한 과다출혈이었다. 예리한 흉기에 여섯 차례나 찔린 상태였다. 왼쪽 팔꿈치 관통상은 방어하는 과정에서 흉기에 찔렸을 가능성이 크다는 소견이 나왔다. 명백한 타살이었다. 하지만 2014년 11월 4일 공소시효가 만료되면서 6000여 쪽에 달하는 방대한 사건기록을 남긴 채 영구미제 사건으로 남는 듯 했다.
하지만 사건 발생 21년 만인 지난해 ‘이 변호사 살인을 교사했다’라고 주장하는 인물이 등장하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제주지역 조직폭력배인 유탁파의 전 행동대원이었던 김씨는 지난해 6월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와 인터뷰에서 사건 당시 조직 두목인 백모 씨(2008년 사망)로부터 범행을 지시받고 동갑내기 손모 씨(2014년 사망)를 시켜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스스로를 교사범이라 칭하는 인물이 등장하자, 제주경찰청 미제사건 전담팀은 즉시 재수사에 돌입했다. 영구 미제로 남게 된 지 약 6년 만이다.
경찰은 김씨의 해외 출입국 기록을 바탕으로 올해 4월부터 국제형사경찰기구(ICPO)의 적색수배를 활용한 국제 공조수사에 나섰다.
경찰 조사 결과, 김씨는 사건 이후 수십 차례에 걸쳐 국내와 해외를 오간 것으로 드러났다.
수사는 지난 6월 김씨의 행적이 캄보디아에서 포착되자, 급물살을 탔다. 체포 당시 김씨는 프놈펜으로 차량 이동 중 현지 경찰관에 불법체류자로 적발됐다.
결국 지난 5일 김씨에 대한 캄보디아 정부의 강제추방 결정이 내려지면서 본격 송환 절차에 들어갔다. 캄보디아 주재관과 협의를 거쳐 직접 현지로 간 경찰이 김씨를 국내로 강제 송환했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캄보디아에는 카지노 도박을 위해 갔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김씨의 신병은 확보됐지만, 김씨가 방송에 모습을 드러내 밝힌 내용이 사실인지, 사실이라면 왜 당시 이 변호사를 살해하라는 지시가 있었는지, 경찰이 추정하는 대로 김씨가 실제 살인을 저지른 것인지에 대한 의문점이 남는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가 사건 공소시효 만료 8개월 이전인 2014년 3월 해외로 도피했기 때문에 그 시점부터 공소시효가 중단됐고, 살인범으로 처벌이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관련 혐의 공소시효 만료 시점인 2014년 11월4일 자정 이전 수십여회에 이르는 해외 방문 이력을 토대로 수사를 진행함으로써,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내용의 일명 '태완이법'의 적용 대상자로 파악하고 있다.
‘태완이법’은 1999년 5월 대구에서 발생한 김태완(당시 6세) 군 황산 테러 사건을 계기로 발의돼 시행된 법안이다. 살인죄를 저질러 법정 최고형이 사형인 경우, 기존 25년으로 돼 있던 공소시효를 폐지한 법안이다. 법안은 사형에 해당하는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하고, 아직 공소시효가 만료되지 않은 범죄에 대해서도 이를 적용토록 했다.
jpen21@fnnews.com 좌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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